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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가 개봉하기도 전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할 때 즈음 소설로 <박쥐>를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에서 관객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청각, 시각, 후각, 촉각으로 반응할 수 있는 ‘가장 감각적인 영화를 의도’했다는 기사를 떠올리며 소설을 통해 만날 <박쥐>를 상상하여 보았다.


뱀파이어는 오랜 세월 영화나 소설로 만들어져왔기에 낯설지 않은 장르이다.  영화나 소설에서 외로움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존재,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존재로 그려진 영향 때문일까.  뱀파이어에게는 공포를 느끼기 보다는 반해 버릴 것만 같고 보듬어 안아 줘야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뱀파이어가 아무리 멋진 캐릭터로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서양인들에게 뱀파이어는 공포의 대상이다.  우리는 그려진 대로,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미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서양인들은 우리와 다르다.  동양과 서양은 두려움을 느끼는 코드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얀 소복을 입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처녀 귀신이나 하나 뿐인 다리로 펄쩍 펄쩍 뛰면서 ‘내 다리 내놔라’를 외치는 외다리귀신에게서 공포를 느낀다.  이렇듯 공포에 대한 문화가 다르고 뱀파이어에 대한 인식 기준이 다른 환경에서 만들어진 뱀파이어 장르가 우리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궁금했다. 


소설 <박쥐>의 주인공은 ‘뱀파이어’다.  현실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자 생체실험에 육신을 내맡겼다가 흡혈을 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가 된 사제 상현과 상현의 피를 마시고 뱀파이어가 된 태주가 그들이다. 


병자와 병자의 가족들은 상현을 ‘붕대 감은 성자’라 칭한다.  병자들을 낫게 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났던 자.  그리고 그 곳에서 죽음을 이기고 살아 돌아온 자가 바로 상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자들과 병자들의 가족들은 상현이 경험한 기적을 그들도 똑같이 경험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상현에게 가까이 가려고 한다.  라 여사도 그들과 같은 목적으로 상현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상현이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다. 


상현은 라 여사와 강우라는 바위에 깔려 생명 없는 인형처럼 살아가는 태주와 사랑에 빠진다.  상현과 태주는 서로에게서 천국을 본다.  그러나 그들이 동시에 본 천국의 의미는 다르다.  상현에게 천국은 성적쾌락이고, 태주에게 천국은 탈출 그리고 자유다.  상현은 태주를 위해, 두 사람의 사랑을 위해 강우를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강우만 사라지면 행복해지리라 여겼던 상현과 태주는 갈등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그들은 생의 끝으로 내달리게 된다.


소설 <박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상현의 능력을 동경한다.  먼저 병자들과 병자의 가족들이 그러하고, 라 여사가 그러하다.  그리고 상현에게는 아버지와도 같은 노신부가 그러하다.  건강을 회복하길 바라고 앞을 볼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등 원하는 목표를 위해 상현에게 접근하는 그들의 모습은 초라하고 비굴해 보이지만, 그들 모두 나약한 인간이기에 그리고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기에 그들의 행동이 창피하다기 보다는 상현 앞에서 몸을 낮출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는 데에 동정심을 느끼게 된다. 


피를 마셔야만 살 수 있으니 인간의 목숨 따위 신경 쓰지 않겠다는 태주와 피를 마셔야만 살 수 있으나 이성적 존재인 인간이므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으로 피를 마시겠다는 상현, 두 사람의 생각은 생존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라는 관점에서 일직선상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피를 마시길 원하는 욕망은 생존을 위한 욕망과 정확히 일치하기에 그러하다.  그렇기에 도덕적인 관점을 내세워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없는 문제가 되어 버린다. 


소설에서 작가가 상현과 태주를 통해 보여주는 갈등의 문제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직면하게 되는 많은 갈등요소들을 포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요구와 욕구, 기회 등의 문제에 봉착하였을 때 도덕적, 윤리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기준을 무엇으로 정하는가가 바로 인간이 풀어야만 하는 가장 큰 과제가 아닐까 싶다.


사제의 불륜과 살인이라는 금기시되는 소재로 만들어진 이야기이므로 비극으로 끝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의 불행한 결말이 슬프도록 아름다워 보이는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두렵고 불안하고 놀랄만한 인간의 본성을 생생하게 그려낸 소설 <박쥐>를 올 여름에 꼭 읽어 봐야 할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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