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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번 천재음악가 모차르트 파헤치기 제 1탄은 잘 보셨나요-? 미리 알려드린 것 처럼 천재음악가 모차르트 파헤치기 제 2탄을 가지고 찾아왔답니다. 이번 포스팅은 모차르트라는 인물을 탐구해보고 싶었어요. 개인적으로 천재음악가라는 사실이 너무 강하게 뇌리에 박혀있어서 모차르트라는 인물의 인생이라던지, 사연들을 한번 알고 싶었거든요! 자, 이제 저와 모차르트라는 인물에 대해서 하나씩 알아볼까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27 ~ 1791.12.5)

오스트리아의 서양 고전 음악 작곡가

 

 

 

 

 

 

- 모차르트의 일생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라트는 신성 로마 제국의 로마 가톨릭 교회 대주교의 관할 구역이었던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나요. 이곳은 지금의 오스트리아랍니다. 궁정음악가인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와 어머니 안나 마리아 페르틀 모차르트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유일하게 함께 살아남은 형제로는 누나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가 있었다고 해요. 모차르트는 태어난 다음 날 로마 카톨릭 교회인 성 루퍼트 대성당에서 '요하네스 크리소스 토무스 볼프강구스 테오필루스 모차르트'라는 세례명을 받았답니다. 헥헥- 세례명이 참 기네요;ㅁ; 하지만 이 긴 세례명에서 각각의 뜻이 있답니다.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는 콘스탄티노플 교회에서 활동한 교부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 대주교에서 가져왔고, '테오필루스'는 루가 복음서에 나오는 이름인데 하늘의 은총을 받은 자라는 뜻이래요. 모차르트가 설던 당시에 아마데우스, 고틀리브, 아마데 등으로 번역되었다고 해요. 아버지 레오폴트는 출판업자인 요한 야콥 로테르에게 모차르트의 출생을 알리는 편지에서 아이의 이름은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 볼프강, 고들리브요라는 글을 남겼다고 해요. 볼프강은 세번째 이름을 좋아했고 아마데우스라는 이름도 좋아했답니다. 저도, 아마데우스라는 이름이 참 좋아요:)

 

 

 

 

 

어렸을적의 모차르트

 

 

 

 

 

 

- 모차르트의 재능

모차르트는 어렸을 때부터 재능을 보였다고 해요. 이는 아버지와도 무관하지 않는데, 아버지 레오폴트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 교육자 중 한사람으로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궁정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었다고 해요. 레오폴트는 볼프강의 누나 난넬을 어린 나이에서부터 가르켰고 볼프강은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해요. 세 살 때부터 볼프강은 누나를 보고 건반을 다루고 연주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해요. 레오폴트는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보면서 작곡을 그만 두고는 볼프강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쳤다고해요- 난네를의 뮤직북에 씌여진 레오폴트의 기록에서는 어린 볼프강은 네 살때 여러 곡을 배웠고 나날이 음악적 능력은 발달해서 다섯 살 때 이미 작곡을 했다고 해요.

 

 

 

 

- 모차르트의 여행

아버지 레오폴트는 어린 볼프강을 데리고 연주를 다녔는데 볼프강은 눈을 가리거나 손을 뒤로 뻗어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었는데 그가 본 적이 없었던 어려운 악절을 가지고도 즉흥 연주를 할 수 있었다고 해요. 한번은 볼프강에게 병이 난 적이 있었는데 레오폴트는 아들의 몸을 걱정하기 보다는 수입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기도 했다는 슬픈 이야기도 있더라구요.

1762년 뭔헨을 시작으로 3년 반동안 아버지를 따라 빈, 뭔헨, 맨하임, 파리, 런던, 헤이그, 파리, 취리히, 잘츠부르크, 도나우에슁겐, 뭔핸으로 연주 여행을 다녔다고 해요. 특히 모차르트는 이탈리아에서 그리고리오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를 한 번 듣고 기억만으로 전부 써내려갔는데 이 미제레레라는 곡은 이탈리아에서 중요시하는 곡으로 악보조차 공개되지 않을 정도로 귀중한 작품이었는데 모차르트는 단지 듣는 것만으로도 악보의 음색을 기억해냈다는 거에요- 1977년에는 어머니와 함께 뭔헨, 만하임, 파리로 갔는데 파리에서 어머니를 여의고 맙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음악가들과 교류했는데 1764-5년 런던에서 만난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해요. 모차르트는 바흐로부터 처음으로 교향곡을 작곡하는 법을 배웠고 이것을 토대로 사후까지 수많은 걸작의 교향곡을 남길 수 있었답니다.

 

 

- 베토벤과의 만남

빈에서 생활하던 1787년에 베토벤을 만났던 모차르트, 베토벤이 자신이 만든 즉흥곡을 하여금 다른 작품을 소화해내자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교육비를 거절하면서까지 베토벤을 교육시켰다고 해요. 베토벤이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이유로 갑자기 빈을 떠나게 되면서 이 두 천재는 이별하게 되는데 이것이 마지막이었답니다.

 

 

 

 

 

피아노를 치는 청년기 모차르트

 

 

 

- 모차르트의 죽음

모차르트의 죽음과 원인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어요. 낭만적인 주장으로는 모차르트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그의 모습과 작품 또한 다가오는 죽음과 함께 쇠퇴하였다는 이야기가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은 모차르트의 마지막 해가 그에게 성공적이었지며 그의 죽음이 갑작스러웠다고 주장해요. 기록에는 모차르트가 "무수히 난 좁쌀만한 발열"로 죽었다고 하는데 현대 의학으로는 이 문구만을 보고는 알 수 없다고 해요. 사인에 대한 추측으로는 선모충병, 중독, 류머티스열, 식중독등이 있는데 당시 환자의 피를 뽑았던 의술도 모차르트의 죽음을 앞당겼다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해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1791년 12월 5일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아내 콘스탄체는 모차르트가 완성하지 못했던 레퀴엠을 여저 제자들에게 맡겼으나 완성시키지 못하다가 프란츠 크사버 쥐스마이어라는 사람이 완성시켰다고 해요.

 

 

 

가운데 볼프강, 왼쪽에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 왼쪽에 레오폴트 모차르트, 벽에 죽은 어머니의 초상화

 

 

 

- 모차르트 죽음의 대한 진실

모차르트가 가난과 무관심 속에서 죽었다는 이야기와는 달리 모차르트에게는 수입이 있었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작곡 위촉을 받았다고 해요. 말년에 돈을 꿔 달라고 쓴 편지가 있지만 이것은 가난해서가 아니라 번 돈보다 더 많은 소비를 했기 때문이라고(...) 심지어 모차르트가 입은 옷은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이상이었다고해요! 모차르트는 빈 외곽의 성 마르크스 묘지에 묻혔는데, 여러 사람과 함께 묻힌 것은 사실이나 이 것은 빈 중산층 장례풍습이었다고 해요. 심지어 화려한 장례가 금지되었는데 묘비까지 있었다고 해요. 전설에 따르면 장례식 날 비가 오고 천둥이 쳤다는 데 진실은 구름한 점 없는 맑은 날이었다고 해요. 우리가 현재 모차르트의 무덤의 위치를 알 수 없는 것은 성 마르크스 묘지가 더 많은 묘지를 수용하기 위해 이장을 거듭하였기 때문이지 아무렇게나 묻었기 때문은 아니라고 해요.

 

 

 

 

 

(왼) 모차르트의 첫사랑 알로이지아 베버, (오) 모차르트의 부인 콘스탄체

 

 

 

 

- 모차르트의 죽음 뒤 부인 콘스탄체 모차르트의 삶

콘스탄체 모차르트 는 남편이 죽은 뒤에 추모 음악회와 미 발표 작품의 출판으로 경제적으로 성공하였다고 해요;ㅁ; 1809년 그녀는 덴마크 출신 외교관이었던 게오르크 니콜라우스 폰 니센과 재혼을 했고 그들은 덴마크로 이주했지만 다시 잘츠부르크로 돌아와 여생을 마감했답니다. 콘스탄체와 새 남편은 모차르트에 대한 전기를 남겼어요-

 

 

 

 

 

 

 

 

 모차르트에 대한 조사를 하다보니, 제가 은근히 잘못알고 있었던 사실이 꽤 많아서 놀랐어요. 그 만큼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천재음악가 모차르트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이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겠죠? 많은 천재들이 비운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모차르트는 그러지 않아서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에는 그의 일생을 탐구하고 인물에 대해 알아보았으니 다음번 천재음악가 모차르트 파헤치기는 어떤 내용으로 다시 와야할지 살짝 고민이 되는 걸요

 

 

전, 오늘도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들으면서 기말고사 시험 준비를 해야겠어요- 자, 곧 다시 천재음악가 모차르트 파헤치기로 돌아올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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