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나’라는 존재를 통해 사랑의 시작, 과정, 결말 그리고 또 다른 시작을 다룬 작품이다. 시작은 주인공이 클로이라는 여인과 만나며 시작된다. 두 남녀는 6대의 비행기 중 서로 같은 것을 타서 극악의 확률을 뚫고 만났다는 운명적인 만남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사랑은 시작되어 진행되다가 윌이라는 친구에게 클로이는 떠나고 주인공은 그렇게 실연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주인공은 또 다른 사랑에 빠지게 된다.
줄거리는 정말 두 남녀의 사랑을 다룬 평범한 내용이지만 이 소설은 줄거리보다 그 상황에 대한 주인공의 생각과 묘사가 대단하다. 줄거리만 보면 정말 지루하고 예상되는 흔한 내용이지만 주인공의 생각이 이를 흥미롭게 해준다. 사실 철학적인 내용이 많아 이해하기 어려운 곳도 많았으나 대체로 공감되었고 이 진부한 내용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는 것이 대단했다. 책의 내용 중 ‘사랑에 빠지는 순간, 그 사람은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라는 부분은 정말 잘 표현한 부분인 것 같다. 짝사랑을 경험한 적이 있는 나로선, 다른 누가 뭐라고 하든 그 사람은 나에게 가장 아름다웠고 최고였다. 그렇기에 이 구절은 정말 공감이 되었다. 또한, 흔히 콩깍지가 쓰였다는 말을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는 몰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끝없이 이상화할 수 있다는 표현도 공감되었다. 나에게도 짝사랑의 대상은 마음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존재가 되었고 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클로이가 주인공에게 ‘내가 너에게 약해보여도 될 만큼 나를 사랑해? 모두가 힘을 사랑한다. 하지만 너는 내가 약한 것 때문에 나를 사랑해? 이것이 진짜 시험이다. 너는 내가 잃어버릴 수도 있는 모든 것을 벗어버린 나를 사랑하는가, 내가 영원히 가지고 있을 것들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섣불리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불구가 되어버린다면, 나는 아직도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정말 이 책은 사랑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과 생각을 하게 해준다. 평소라면 생각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이 책은 흔한 남녀의 사랑이야기로 하게 해주며 쉽사리 해답을 내놓기 어렵게 해준다. 진정한 사랑은 뭘까, 나는 저런 물음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 까, 책을 다 읽은 후에도 계속 고민하게 되어 즐거운 경험이었다.
사랑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인생이나 사람살이 등 여러 가지 공감할 내용 또한 많았다. ‘전화기는 전화를 하지 않는 연인의 악마 같은 손에 들어가면 고문 도구가 된다.’ 이 부분은 교수님이 수업시간에도 언급했지만 그 당시에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매우 공감되는 내용이었다. 카톡 메시지를 보내다가 어느 순간 상대가 읽지 않거나 읽고 무시하는 경우에는 정말 고문이 따로 없다. 꼭 상대가 연인이 아니더라도 그렇다. 요즘처럼 수없이 많은 메시지를 보내고 받는 시대에서는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침묵은 저주스러웠다.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것은 상대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매력적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따분한 사람은 나 자신이 되고 만다.’ 이 부분이 가장 공감되고 인상 깊었다.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당혹스러워 했던 상황이고 아직도 힘들어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경험하고 있는 것인데, 나는 말을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지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종종 침묵이 찾아온다. 이럴 때마다 나는 어찌할지 모르고 침묵만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책에서는 상대방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거나 관심 있어 하는 것에 대해 말을 하라고 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내가 원하는 답은 아니더라도 관련된 많은 고민들과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읽으면서 참으로 쉴 틈이 없었던 책이었다. 고민거리가 하나 생겨 그걸 이해하고 해결하면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기고 계속 생각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이 생각해보고 공감했던 책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사랑에 관한 여러 철학적 의견들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가질 법한 고민들도 많이 할 수 있어서 알랭 드 보통이라는 사람이 참 대단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