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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도서] 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저/김인순 역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괴테의 파우스트, 그동안 미루고 미루다 읽었다.  성경의 욥과 비슷한 경우라고 해서 펼쳤더니 첫부분만 비슷하지 전개되는 모습은 차이가 너무나 비교대상이라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다.


파우스트는 법학, 의학, 신학까지 깊게 파고 들었지만 조금도 지혜로워 지지 않았다고 한탄한다.  결국 그는 학문을 알아갈수록 모르는 영역이 점점 커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의 지칠줄 모르는 욕망은 영혼까지도 악마에 팔 정도까지 다다른다.


그런점에서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는 관능에 깊이 취해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마음을 달래 보자고 유혹한다.  고통과 쾌감, 성공과 불만이 어지러이 교차하는 곳으로 사내 대장부는 쉬지 않고 활동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악마의 유혹은 인간을 바쁘게 만들면서 그게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18~19세기나 지금 현재나 바쁜것은 여전하다.


18~19세기는 전기가 없어 낮의 길이가 짧았지만, 현대는 24시간 잠들지 않는 사회다.  어디 그뿐이랴 스마트폰 없는 현대인은 불안 증세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야말로 악마가 점점 활동하기 편안한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24시간 편의점이 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곳이며, 시급은 최저생활도 하기 곤란한 수준이다.  


사람은 가끔 고독할 필요가 있다.  기도이든 명상이든 사색의 시간을 통해 자기안의 자기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속도전인 현대에서 방향을 탐색하는 건 혼자만의 사색을 통해 자신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파우스트는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좇는다(성경의 욥과는 너무 달라 비교하지 않겠다).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간접 살인하고, 주술에 빠지는 등 욕망을 따라 정신은 피폐해져 갔다.  마지막에 선한 본성을 발견하는 순간 악마와의 계약을 이행해야 할 위기에 처하지만, 천사에 의해 구원받는다.  다소 뜬금없는 결말이다.  충실히 인간 욕망의 노예로 살다가 최종적으로 선한 본성을 회복한다는 건 통속적이면서도 기득권층에 면죄부를 부여한 듯한 찜찜한 기분이다.


인간은 어떤 쾌감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변화무쌍한 형상들을 뒤쫓다가 결국은 선한 본성으로 돌아오며 파우스튼 결말을 맺는다.  파우스트는 행복은 욕망을 따라 바쁘게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베푸는 것이 아름다운 것임을 깨닫는다.


정작 현실에선 인간의 방황은 선보다는 그렇지 않은 쪽으로 결말이 많이 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더욱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바쁘게 일하며 사는 것일까?  파우스트의 방황이 그의 삶이 아니라 내 삶이라고 대입해보면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추한 결말을 볼 수 있다.  파우스트 처럼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 것이냐, 한 번쯤 걸음을 멈추고 신이든 자신의 내면이든 조용한 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사회에서 바쁘게만 살다가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지 말고, 때론 홀로 신이든 자신의 내면이든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잡는 시간이 필요하다.  당일 배송, 즉각적인 응답 서비스는 우리 이웃이 그만큼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그 이웃이 처지만 바뀌면 내가 될수도 있다.  갑이면서도 누군가의 을이 되는 우리가 빠름빠름 경쟁보단 한 발 물러서는 방법도 필요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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