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생을 짊어진 당신의 이름
박준 시인의 시집 『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를 읽고 (「문학동네」 2012년)
시가 좋아서,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무작정 가입했다. ‘북적북적’ 동아리 이름까지 어찌나 마음에 쏙~~ 들던지……. 즐거움을 맛보려면 30%는 하기 어려운 일을 감당해야 한다고 했던가, 그저 손 놓고 앉아 해박하고 찬찬하고 쿨~한 교수님의 해설을 듣고 시집의 내막을 밝혀 들으면 금상첨화겠다 생각했었다.
가벼워서 추켜든 박준 시인의 시집 『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는 결코 내용까지 가볍지는 않았다. 시의 이면을 생각하며 읽으려는 습성 때문에 시가 하려는 말을 찾을 수 없어서 당혹스럽기도 하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다. 무언가 후회스럽고 안타까운 체념들이 안개처럼 퍼져 있는 느낌이다. ‘미인’이 시인의 죽은 누이라는 사실을 알고 읽어서인지 내 맘이 벌써, 울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첫 시집에는 가족 이야기가 많이 담긴다는 강의 내용처럼 어머니가 나오고 무서운 아버지도 나온다. 제목에서도 내용에서도 별이 여러 차례 나와서 나를 안심시켰다. 별이 나오는 배경이 좋았다. 왠지 별의 일은 알 것도 같았다. 역시나, 박준 시인님도 밤하늘을 좋아하시나 지레짐작해 본다. 별처럼 달도 자주 등장해서 위로의 말을 더해 준다.
스스로 일기나, 메모를 잘하는 사람임이 짐작되었다. 무언가를 적었다고 표현하는 부분에서 화자는 ‘쓰는 사람’임을 자랑스러워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 밖의 상황을 짐작하며 읽는 독서나 시인과 화자가 동일인이라는 생각을 지양해야 함에도 고쳐지질 않았다. 무언가를 들고나왔다는 부분에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철없던 어린시절 이야기 같은 것은 시에 쓰고 싶지 않기에…….
<꽃의 계단>을 읽을 때, 시골에서 살다가 광주로 고등학교를 가면서 자취했을 때가 생각났다. 자췻집마다 연탄을 보관하는 창고가 따로 있었다. 창고에 한 달간 쓸 연탄을 채우는 날에는 그 연탄들이 곳간의 양식이라도 되는 듯 충만했다. 연탄도 꽃이 될 수 있는 지점이었다.
무거운 세상을 살아내야만 하는 사람이 죽을 수는 없어서 세상이 미는 대로 그냥 체념하며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가도 견디는 몸부림으로 세상과 맞닥뜨리며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의 시집으로 읽혔다. 왠지 가련한 청년에서 힘내서 살아내라고 기도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