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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뚝

[도서] 엄마의 말뚝

박완서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엄마의 말뚝>은 박완서의 자전적이며 가족사를 그린 연작이다. 그중 핵심심은 제목처럼 '엄마'를 따라 시점이 그려지고 있다.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을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는 연작 소설이다. <엄마의 말뚝>은 3부작의 연작 소설이다. 초기 저자의 송도에서부터 서을 문밖으로의 이사를 한 유년시절을, <엄마의 말뚝 2>는 엄마의 어떤 고통으로 인해 변화되어지는, 변질되어가는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는 또한 노쇠해가는 엄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엄마의 말뚝 3>은 그런 어머니의 삶이 생명이 다해져가는 모습과 딸로서 어머니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을 담은 일상을 그리고 있다. 한 사람이 삶은 나서 자라고 성장하며 변해가다 노쇠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일진대 , 그녀의 어머니의 삶을 어린 그녀의 시선을 통해, 성장한 청소년기의 시선 그리고 장년이 된 딸의 시선을 통해 보여지는 그녀의 어머니의 모습은 왠지 우리 집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일듯하며 따라서 다소 감정이 번잡해질 수 있는 그런 일상을 그려보이고 있다. 또한 그녀의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박완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에 적절한 서사적 리듬과 입체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다채로우면서도 품격 높은" 글들을 보여주고 있다. 현란한 수식어보다 독자가 읽기 편하고 리드미컬하고 이해 빠른게 좋은 글일 것이다. 박완서의 글을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개인의 삶을 촘촘하 그려보이며 사회를 이야기하는 저자의 시선을 느껴볼 수 있다. 

 

"기어코 서울에도 말뚝을 박았구나. 비록 문밖이긴 하지만......"

'말뚝'의 의미를 생각해보니, 한 장소, 분야, 곳에 정착을 한다 내지 오랫동안 머문다는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어머니의 말뚝은 분명 서울 문 안에 정착하는 것이었는데, 왜 지긋지긋해 하던 사대문 밖 산꼭대기 마을 현저동에서 마음의 말뚝을 박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어머니의 '신여성'에 대한 강박보다 왜 사대문 밖에 '말뚝'을 평생 안고 살아왔는지 의아 할 수 밖에 었다. 손자 손녀는 서울에 뿌리를 박길 바라고, 엄마는 말뚝을 박았다. 그것도 서울 문밖에! 

 

엄마에게 '말뚝'은 무엇이었으며, 결국 어머니에게 딸에게로 이어져 온 '말뚝'은 어떤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말에 '딸은 엄마 팔자를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인생이 엄마를 닮는다는 말이다. 결국 저자 박완서는 어머니를 닮았나? 나이들어 은연중에 드러나는 그녀의 모습은 어머니의 모습과 비슷하다 여겨지긴 한다.  어머니의 말뚝-현저동 집은 어머니의 기준점이었다. 사물 판단의 기준점이었고 근거였다! 그러나 매인 말뚝이었고 언젠가 타인에 의해 뽑힐 매인 말뚝이었다. 헤어나오지 못하는 매인 말뚝이었다!

 

저자에겐 어머니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영원한 문밖 의식. 저자만의 매인 말뚝을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고, 자신만의 새로운 말뚝을 만들어 어머니를 답습하고 있었다. "제 아무리 멀리 벗어난 것 같아도 말뚝이 풀어 준 새끼줄의 길이일 것이다." 결국 저자는 어머니의 말뚝을 인식하지 않기로 했다. 자유를 주기로 한다.

 

그럼에도 결국 삶의 순환처럼 엄마의 말뚝은 산소의 임시 비석의 명패 말뚝이 되어 또 다시 새로운 말뚝을 박았다. 언젠가(현재는 이미 이루어진) 저자에게도 비슷한 말뚝에 매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조금씩은 의미가 다른 말뚝일 것이다. 책을 읽는 나의 말뚝을 생각보니, 나름 역시나 헤어나오지 못하는 말뚝이 있었다. 저자처럼, 저자의 엄마처럼 지긋지긋하다고 여기는, 그러나 언젠가 벗어나길 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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