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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도서]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저/박병덕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인도 최상위 계급인 바라문 아들로 태어난 싯다르타는 훌륭한 아버지로부터 배우는데 부족함이 없었고, 어머니에게는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싯다르타는 친구 고빈다와 모든 이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며 그 사실이 기쁨의 원천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적어도 그렇다고 생각하면서 성장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는 알 수 없는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로 잰 듯 완벽한 인생, 사랑받는 존재가 느끼는 행복감과 별개로 운명처럼 그의 심장에 움트기 시작했다. 그의 정신이 추구하는 것은 더 완벽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진리에 다가서는 것이었다. 우연히 사문(도를 닦는 탁발승)의 순례를 마주한 싯다르타는 반대하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출가를 하게 된다.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 길 위에서의 생각, 류시화 -

 

아버지는 좋은 환경과 훌륭한 스승 아래서 열반의 길로 들어설 아들의 모습을 기대했지만, 싯다르타는 그런 환경에서 얻는 깨달음이라는 것은 결국 공허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사문들과 함께 수도하면서, 고통에도 초연해지고 배고픔이나 호흡 같은 기본적인 욕구마저도 초월하는 존재가 되어갔다. 급기야 육신을 벗어나 다른 존재가 되기도 하고 윤회의 업보를 벗어나는 단계까지 도달했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항상 그 마지막에 그의 정신은 다시 육체로 돌아오고 말았으며 그것이 결국 한계라고 생각하던 찰나,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인물이 윤회의 수레바퀴를 정지시키고 부처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친구 고빈다는 고타마의 말씀을 다 들은 후에 그의 가르침에 귀의하고자 하지만 싯다르타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해탈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가르침이나 말씀으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것이며, 스스로 경험하고 그 속에서 답을 찾지 못한다면 누구도 알려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나는 장자에서 나오는 '감고질서'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제나라 환공이 대청 위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윤편이 뜰 앞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환공에 물었다.

“감히 여쭙겠습니다. 혹시 읽고 계신 책이 무엇입니까?”

환공이 답하기를 “성인의 말씀이다.”

“성인이 아직 살아계십니까?”

“이미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왕께서 읽는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에 불과합니다.”

환공이 노하여 말했다.

“내가 책을 읽는데 감히 목수 따위가 나를 희롱하는가. 

만약 합당한 대답을 하지 못하면 너를 죽여 버릴 것이다.”

 

윤편이 말했다.

“저는 제 일로 미루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지나치게 깎으면 축이 헐거워지고 덜 깎으면 축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정확한 정도는 손의 감각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느낀 것이기에 이를 다 말로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신은 제 자식에게도 말이나 글로 그것을 깨우쳐줄 수 없고 제 아들도 배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이 칠십의 노인이 되도록 수레바퀴를 깎게 된 것입니다. 옛 사람과 그가 전하고 자하는 생각은 그와 함께 이미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왕께서 읽고 있는 책은 옛 사람의 찌꺼기입니다.”

 

장자  ‘천도’

 

 

싯다르타가 갖은 경험을 다 거치고 뒤에 가서 고타마를 만나 열반에 이르렀다면 이 소설은 그저 그런 소설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를 깨우친건 내부의 목소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가르침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고타마의 말씀을 직접 듣고 후광이 비치는 그의 모습을 영접한 후에도 그의 제자로 들어가지 않고 혼자만의 길을 떠난다. 한 때 우리 사회에서는 스님들께 고민을 말하고 답을 구하는 일이 열풍이 되기도 했다. 그분들의 말씀은 어쩌면 한결 같다. 지금 가지고 있는 욕심을 버리라고. 아이들이 엄마의 맘대로 될 것이라는 욕심, 부인이 남편 뜻대로 함께할 것이라는 욕심, 돈이 나를 따라올 것이라는 욕심을 버리라는 것이다. 들어보면 다 맞는 말이고 내가 왜 그토록 하찮은 것에 집착했을까 생각이 들다가도 현실로 돌아오면 나는 다시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다.

 

물론 그것은 우리가 그들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이유가 첫번째이겠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들이 사실은 남들과 결혼을 하지도 아이를 키워보지도 경쟁을 해보지도 않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내가 속하지 않은 그룹에서의 경쟁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초연하고 이성적이며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가족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경쟁에서 지는 것보다 사람을 잃는 것이 더 큰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깨달아서도 특별한 생각이 있어서도 아니고 그저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남의 일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싯다르타는 어쩌면 공염불이 될 수도 있는 그 모든 가르침을 벗어나기 위해 직접 속세에 뛰어들었다. 그는 모든 것을 가진 채 태어났으면서도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으며, 또 모든 것을 얻어서 자만하다가도 다시 다 버리고 스스로의 깨달음을 이뤄낸 것이다. 그가 깨달음을 얻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열반일 것이다. 이 책은 여기저기 밑줄 그을 곳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고빈다에게 해줬던 말이 유난 여운이 남는다. 

 

'진리란 오직 일면적일 때에만 말로 나타낼 수 있으며, 말이라는 겉껍질로 덮어씌울 수가 있다.' 생각으로써 생각될 수 있고 말로써 말해질 수 있는 것, 그런 것은 모두다 일면적이지....(중략).... 그러나 이 세계 자체, 우리 주위에 있으며 우리 내면에도 현존하는 것 그 자체는 결코 일면적인 것이 아니네. 한 인간이나 한 행위가 전적인 윤회나 전적인 열반인 경우란 결코 없으며, 한 인간이 온통 신성하거나 온통 죄악으로 가득 차 있는 경우란 결코 없네. 그런데도 그렇게 보이는 까닭은 우리가 시간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네. 시간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네. (p.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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