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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도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저/정지인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 책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으니 읽기 전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무너졌다

'혼돈'

저자의 아버지는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는 증가하기만 할 뿐,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절대 줄어드는 일은 없다'는 진리를 말하곤 했다. 우리 인생은 결국 모든 것이 정돈되어가는 방향이 아닌, '혼돈'으로 나아가는 긴 여정인 셈이다. 1906년 이 단순한 진리를 거부하고 스스로 힘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한 이가 있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나무'를 밝혀내고자 했던 그는 분류학자였다. 1906년 봄날, 난데없는 지진으로 그가 만들어 놓은 어류표본이 모두 바닥에 내동댕이 쳐 섞여 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수십년에 걸쳐 이뤄놓은 업적이 자연의 힘에 의해 하루 아침에 폐기되어버리는 일을 우리가 어떤 좌절에 비교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기억나는 대로 물고기 표본과 주석 이름표를 찾아내 이번에는 아예 물고기의 몸에 꿰어 넣기 시작했다. 물론 그 노력에도 천 개도 넘는 표본은 결국 자기 이름표를 찾지 못했지만 그의 무모한 듯한 노력은 결국 지구상 어류 어종의 5분의 1의 표본을 완성시키는 성과를 이뤄내게 했다.

 

무모한 듯, 집요한 듯

저자가 스스로 인생이 난파되었다고 생각하게 됐을 즈음, 데이비드의 이야기는 강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무엇이었을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자기 신념에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그의 행동을 이끌었던 것은. 

 

책은 데이비드의 유년시절부터 차근차근 진행된다. 우주를 좋아했고, 땅을 좋아했고, 꽃을 좋아했던 순수한 아이. 책을 다 본 후에 이 장면을 상상해보면 영화 '박하사탕'에서 영호(설경구)가 순임(문소리)를 몰래 훔쳐보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것은 단순히 순수한 시절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의 인생이 아마도 더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그는 우연히 신문에서 '해변에서 강의하는 자연사 수업'이라는 박물학자 루이 아가시의 광고를 보고 지원해 페니키스 섬으로 간다. 아가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성한 사다리' 개념을 가르치며, 생명체에게는 맨 위에 있는 인간을 중심으로 그 위계가 나뉘어 있다고 했다. 데이비드는 페니키스 섬에서 아마도 자신이 평생 추구해야할 업적에 대한 야망에 부풀어 올랐을 것이다. 신의 계획, 생명의 의미를 향한.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저자가 일곱살 때 아버지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인생의 의미를 묻는 딸에게 아버지는 무심하게 '의미는 없다'고, '혼돈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라고 말한다. 그것은 틀린말은 아니었다. 우리는 개미보다 수백배 큰 존재이지만 우주의 차원에서 보자면 똑같이 하찮은 존재이므로 사실 우리 삶에 큰 의미는 없었으니까. 때문에 아버지가 하는 유일한 거짓은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었다. 

 

인생이 무의미해질수록 데이비드의 이야기는 더 빛을 발했다. 무의미한 인생에서 영원히 유의미한 무엇을 남긴다는 것,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믿는다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는 보이지 않는 그 어떤것에 더 집착했고 그것을 밝히려 데이비드의 모든 책들을 읽어나갔다. 그가 발견한 것은 바로 '자기기만'이었다. 실제로 자신의 능력을 실제보다 과신하는 사람은 정확한 인식을 가진 사람에 비해 성공하는 확률이 더 높았다. 그리하여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는 이를 '긍정적 착각'이라는 표현으로 수정하게까지 되었다. 

 

2000년 대 초 앤절라 더크워스는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차이를 연구하여 '그릿(끈질긴 투지)'이라는 개념을 밝혀냈다. 이는 긍정적 피드백이 없이도 장기적인 목표에 뛰어들게 해주는 능력이라고 했다. 데이비드는 이러한 자기기만을 통해 장애물과 비판을 교묘하게 피해갈 수 있었으며, 그의 모든 성공의 베이스에는 이러한 그의 정신력이 큰 작용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느 쪽이든 그 방패는 그에게 효과가 있었다. 그는 아내 수전을 잃고 재빨리 또 다른 아내 제시를 얻었다. 물고기 컬렉션을 잃었지만 규모가 더 큰 컬렉션을 재구축했다. 그리고 점점 더 높은 직책으로 승진했다. 가르치는 일에 대해, 어류학에 대해, 고등교육에 기여한 일에 대해 상들과 메달들이 요란하게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만의 기이한 연금술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졌다. 작은 거짓말들이 동으로, 은으로, 금으로 변했다. 겸손을 유지라하는 수천 년 이어져온 경고는 잊어라. 어쩌면 이것이 신이 없는 세계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지속적으로 오만을 복용하는 것이야말로 실패할 운명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임을 보여주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책을 뒤로 넘기기 전까지는 이 책은 으레 전기의 형식으로 진행된 책이니까 이 말 역시 칭찬의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 읽고 생각해보면 이 문장들은 비판의 말이 아닌가 생각할 여지도 많다. 이 책은 형식이 참 독특하다. 평전 같다가 자기계발서 같다가 또 뒤에 가서는 소설 같기도 해서 이래서 다들 재미있다고 했나 싶었다. 반전은 이 책이 전기의 형태에서 오히려 폭로문의 형태로 바뀌면서이다. 상상치 못했던 전개이기 때문에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본 사람들은 놀라게 될 것이다. 

 

성공이란?

책의 후반부에서는 데이비드의 과오, 제인 스탠퍼드와 관련된 일이나 우생학을 열렬히 지지했던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가 인간으로서는 거의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만들어 놓은 어류도감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었다는 결론까지도 도달하게 된다. 마지마 장의 제목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데에 그 통쾌함이 담겨있다. 결국은 모든 것이 '바른'대로 흘러가는 것이라는 저자의 의지가 담긴 제목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해 생각해 보면, 불굴의 의지로 역경을 이겨낸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가끔 크게 성공했지만 타인에게 귀감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개인적으로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많은 고민이 든다. 저 사람처럼 하는 것이 성공하는 방법인 것은 알겠는데 하지만 그것이 옳은 방법일까에 대한 생각이다. 그것은 성공의 기준을 보이는 성과나 지위에 두느냐, 사람들이 느끼는 존경심이나 경외감에 두느냐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서 외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데 모범적이라고 해서 그를 성공했다고 하지는 않는다. 인생의 가장 큰 딜레마는 바로 어디까지 타협하고 어디까지 소신대로 하느냐의 문제이다. 내가 그런 경우에 생각하는 기준은 딱 한 가지이다. 내가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을 때, '과연 나는 내가 선택한 대로 하라고 아이들에게도 말할 수 있을까'이다. 이렇게 반문해보면 답은 의외로 자명해진다.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다면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더라도 좌절감이 크지 않다. 데이비드의 경우를 보면서 과도한 긍정주의나 자기기만이 결국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조건이 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단순한 역경이나 장애물이 아니라 타인이 됐을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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