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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출간을 할 때부터 반전이 놀랍다고 광고하는 책은 엄청난 자신감을 갖고 있는 작품일 것입니다. 반전이 있다는 것을 말해줘도 독자가 예상을 할 수 없을 것을 확신할 때만 나올 수 있는 카피기 때문이죠. 출판사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독자라는 독자는 다 '반전이 엄청나다'라는 말을 하는 작품이 있다면 왠지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당연하겠죠. 그래서 읽은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책을 읽지 않은 분들이 클릭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글 제목에서 책 제목을 적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읽지 않은 분들은 소설을 다 읽은 후에 보시길 권합니다.  

 

홍학의 자리

정해연 저
엘릭시르 | 2021년 07월

 

45세 선생님 김준후와 18살 제자 채다현은 방과 후 빈 교실에서 성관계를 갖고 선생님이 먼저 나간 후 다시 돌아와 보니 다현이 자살처럼 보이는 형태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자신의 비윤리적 행위가 발각될 경우가 닥칠 후폭풍이 겁이 난 김준후는 다현의 시신을 유기해 호수에 버립니다. 소설은 그가 다현의 시신을 호수에 버리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이 소설의 반전은 어떻게 김준후가 CCTV의 영상에 걸리지 않고 알리바이를 완성했는가가 첫 번째이고, 또 하나는 채다현이 어떻게 스스로 자살하면서 타살당한 것처럼 현장을 꾸몄는가입니다. 전자는 '용의자 X의 헌신'에서 쓰인 방법으로 봐야 할까요. 모든 독자가 당연히 행위를 저질렀을 것이라 생각하는 날짜가 아닌 다른 날에 범행을 저지름으로써 알리바이를 완성합니다. 후자의 반전이 제가 이야기하려는 '반전을 위한 소설'에 부합하는 내용입니다. 

 

반전이 완벽한 소설이나 영화를 만드는 일은 무척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전개를 해야 하는데, 예상 범위라는 것은 우리 상상 이상으로 넓을 것이기 때문이죠. 더구나 이처럼 출판사나 독자가 하나 같이 대단한 반전이라고 말할 정도라면 정말 감쪽같은 트릭이 있어야 가능하겠죠. 하지만 그러한 반전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한 가지는 바로 작가가 정보를 의도적으로 감추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등장인물들이 보고 있는 시선에서 독자도 똑같이 볼 수 있어야지 의도적으로 누락시켜서는 안 됩니다. 영화의 경우를 예를 들면 뻔히 주인공의 옆에 서 있어야 맞는 인물에 대해, 카메라 앵글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못 본 것으로 간주하고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방식입니다. 

 

이 소설의 첫 묘사로 돌아가겠습니다. 

불륜 상대 학생의 이름은 채다현입니다. (남자 이름일 수도 있겠지만 당연히 남자 선생님과 불륜 상대라면 여자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의도적인 트릭입니다.) 그리고 묘사입니다. 

 

'가느다랗고 부드러운 머리칼과 잘록한 허리, 밤을 새워 지분대던 가슴과 길쭉한 다리, 사랑을 나눌 때면 천장을 향해 만족스러운 듯 뻗던 희고 긴 손가락'

 

반전은 바로 이 존재가 여자가 아니고 남자였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상상지도 못한 반전이었다고 하는 이유는 바로 초반부터 의도적으로 여자인 것처럼 한 묘사에 있습니다. 더구나 남성의 동성애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자세가 아닌 마주 보고 여성과 성교하는 듯 표현한 부분도 한몫했습니다. 또 '소리를 내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에 이따금 다현이 그의 큰 어깨에 이를 박았지만' 같은 장면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오해를 하게 만든 부분들입니다. 그의 큰 어깨라는 문구도 작은 여성이라면 가능한 표현이지만, 사실은 다현이 170의 남자로 나오는 장면에서 보자면 선생님이 얼마나 커야 하는 지도 의문입니다. 이런 표현의 유일한 목적은 독자를 헷갈리게 만드는, 다시 말해 반전을 만들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다 이해하고 그런 이름은 남자 이름일 수도 있고, 그런 표현 역시 남자에게도 가능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학생의 성별이 사건 해결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느냐를 봐야 할 것입니다. 학생이 남학생이어서 결정적으로 어떤 문제가 해결되었는가를 보죠. 

 

'그래서 준비해 온 끈으로 자살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책상을 밟고 올라가 끈을 걸고 다시 내려와 책상을 치웠어요. 그리고 늘어진 끈을 걸고 다시 내려와 책상을 치웠어요. 그리고 늘어진 끈을 잡고 힘껏 올라가 중간에 매듭지어놓은 원에 목을 집어넣고 자살한 겁니다.'

'말도 안 돼!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준후는 저항하듯 벌떡 일어섰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강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준후를 똑바로 응시했다. 

'가능합니다. 남학생이니까요.'

 

이 부분이 제일 황당한 것은 독자만 몰랐었지 등장인물들은 전부 채다현이 남자인 것을 알고 있었어야 합니다. '말도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은 준후여서는 안 되고 독자여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심지어 준후와 관계까지 한 사람이 그의 몸을 모를 리가 없고 그 힘을 모를 리가 없는데도 저런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작가는 다현이 힘이 세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몇 가지 사족을 더 붙이죠. 더 웃긴 사실은 170짜리 남자의 시체를 선생님이 들어서 아래로 내리고, 아파트 담벼락을 넘겨서 욕실까지 옮겼다는 것입니다. 독자가 다현이 여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당연히 그렇게 옮길 수 있다면 150미만의 작은 여자아이일때만 겨우 가능하기 때문이죠.

 

결국 이 소설의 반전은 의도적으로 감추고, 여리게 묘사하고, 등장인물이 볼 수 있는 시선을 외면하고 정보를 주지 않아서 생긴 것입니다. 반전이라는 것은 생각지 못 했다고 해서 대단한 것이 아니라, 모든 정보를 줬는데도 사람들이 상상치도 못했다거나 그로 인해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완벽히 풀렸을 때나 가능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방식의 반전은 반전이라기보다는 정보의 부재나 오해를 이용해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뿐입니다. 모두 다 재미있다고 하는 소설인데 이렇게 말을 해놓고 보니 혼자서 너무 진지해진 것도 같지만, 저는 적어도 반전을 표방하는 소설이 좀 더 완벽하게 써지고 그걸로 인정받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전체적으로 흡입력도 있고 재미도 있었지만 엄청난 반전이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 작법이 너무 허술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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