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춤을 보고 때로는 배우며 춤과 가까이에 살고 있지만 정작 춤이란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춤의 세계로 안내하는 친절한 대중 입문서"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책 표지에 등장하는 하얀 바탕에 어울어지는 세 개의 곡선이 사람들이 춤을 추는 부드러운 춤선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마냥 쉽게 읽히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춤을 흥미 위주로 풀어쓴 것이 아니라 춤을 전공한 사람이 춤에 대해서 분야를 나누고, 그 역사를 생각하며 제법 진지하게 적었기 때문입니다. 춤을 추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춤을 추고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개념과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이 책을 통해서 춤을 이해해보고 싶다는 분들에게는 춤에 대한 친절한 입문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에는 중간중간에 QR코드가 나옵니다. 책 속에 춤 추는 모습을 넣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QR코드를 찍어서 춤을 감상하면서 책을 읽으면 좀 더 이해하기도 쉽고 활자를 영상으로 볼 수 있는 나름의 재미가 있습니다. 아래 사진들은 책 속의 QR코드를 찍어서 유튜브 동영상으로 본 것 중 한 장면을 옮겨보았습니다.

이 책은 우선 발레부터 시작합니다. 발레를 하는 무용수의 아름다운 모습과 달리 발끝으로 서는 그 힘든 동작에서 발이 엉망진창으로 상한 모습의 사진이 한 때 유명해지기도 했었는데요. 발레부터 시작하는 것은 춤을 추는 몸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를 살펴보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발레의 기술은 발레가 유행하던 근대 시대, 그 시대에서는 인간 몸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보여줍니다. 몸에 좀 무리가 가더라고 아름답고 이상적인 자세와 동작을 추구하는 데카르트의 심신 이원론을 이야기합니다. 춤에서 철학까지 들어가면 어렵지만 한편으로는 그 당시 시대상과 철학이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인 춤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발레는 "인간 몸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하는 고민의 결과가 쌓여 발전해왔다고 합니다.

저는 춤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위의 이사도라 던컨이라는 이름은 어렴풋이 들어봤습니다. 물론 어떤 분인지는 잘 모릅니다. 그 분의 위 춤 영상을 보니 맨발로 움직이는 모습이 발 끝으로 도는 발레 동작보다 좀 더 자연스럽고 풍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 <물의 연구>에서는 어떤 의도로 저런 동작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어쩐지 제목을 알고 보니 물의 움직임을 추상적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이전 발레가 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쇼였다면 이사도라 던컨은 이야기 춤의 한계를 넘어 춤꾼 자신의 몸짓을 보여줘라는 생각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물의 연구>는 물의 물리적 성질과 다양한 현상을 연구해서 춤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현대 무용은 이처럼 추상적인 관심에 몰두하고 자기 철학과 자의식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예술가를 추구했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도 춤 하면 빠질 수 없습니다. 위 사진은 <춘앵전>으로 궁중춤인데, 궁중춤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듯이 그 동작에 굉장히 절제되어있습니다. 한 바퀴 도는 데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돌아갑니다. 반면에 민간에서 추던 <강강술래>는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손도 잡고 하지요. 우리 춤의 기본적인 춤사위 굴신, 호흡, 어깻짓이 다 들어가있는 것이 강강술래입니다. 손을 마주잡고 뛰어본다는 그 몸짓은 몸의 평화와 즐거움을 주면서 춤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춤이 펼쳐지는 장소, 그 목적에 따라서 춤의 형태도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목신의 오후>는 10분정도 짧은 시간이 진행됩니다. 굉장히 관능적인 춤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당시에는 그런 느낌이 많이 왔었나봅니다. 요즘 춤은 섹시하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춤의 원래 목적 중 하나에 구애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남녀가 모여 클럽에서 춤을 추는 것은 구애의 춤일 것입니다. 춤은 아무래도 몸을 매개로 하는 예술이고 몸이 지닌 생동하는 힘은 관능적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에로스는 좁게는 성애를 의미하지만 플라톤의 <향연>에서 나오는 에로스는 아름다움을 향해 가는 생명의 충동입니다. 춤에는 이성을 매혹시키려는 구애의 춤이 있을 수 있지만, 자기 육체에서 해방되는 경험, 아름다움을 향해 가는 생명 충동 등 다른 관능의 모습을 지닌 것도 있을 것입니다.

위 <접촉즉흥>은 둘이서 춤을 추는 데 몸의 일부분을 계속 맞대고 있어야 합니다. 의사소통은 말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언어가 아닌 몸으로 의사소통을 계속 해나가는 셈입니다. 상대방과 내가 몸의 일부를 맞대면서 가까운 거리에서 호흡하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그 모습도 때로는 언어적 의사소통보다 더 나은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결국 춤은, 춤을 보는 관객이거나 혹은 같이 춤을 추는 상대방과 의사소통하고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전에 몸과 마음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던 철학에서 벗어나 니체는 "몸이 나 자신이다."라고 하며 몸과 마음의 일원론을 전제로 몸을 바라보는 다양한 생각들이 발전했다고 합니다. 발레에서 추상적 생각을 지닌 현대 무용으로, 여기에서 스트리트 댄스로 점점 변화하는 춤의 발전은 이런 생각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위 사진은 비보잉 중에서 탑록의 한 장면입니다. "탑록"은 본격적인 비보잉을 하기에 앞서서 일종의 사전 탐색이나 몸풀기 정도 생각할 수 있을 텐데, 이 책에서는 비보잉에서부터 오늘날 K팝까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제 춤 하나만 잘 추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춤의 감수성이 같이 발휘되면서 시각과 청각, 촉각이 어울어진 공감각적 감각들을 종합하는 능력이 춤꾼들과 이를 보는 관객들에게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이돌 댄스 가수과 그룹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훅이 있는 포인트 안무에서 칼군무를 거쳐 이제는 완성도 있는 종합 예술과 같은 춤을 바탕으로 한 K팝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을 보면 춤은 계속해서 다양성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책은 무대 위의 몸을 중심으로 한 발레에서부터 음악과 함께 하는 스트리트 댄스와 케이팝까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나누는 이원론에서 몸과 마음을 함께 하는 철학과 춤이 함께 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춤의 교육이 도제 방식에서 아카데미, 이제는 길거리와 대형 기획사로 다양화 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느 한 분야의 춤을 다루지 않고 춤에 대한 종합해설을 하면서 몸의 형식에서, 춤 교육 방식, 전통 춤, 관능과 춤 등 춤에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나씩 짚어주면서 춤의 대중 해설서로의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책 군데군데 있는 QR코드를 따라 춤을 보면서 이 책을 읽다보면 춤의 문외한이라도 어느새 춤에 대해서 조금은 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은 예스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했습니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에테르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책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