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내내 불편했던 영화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는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납니다. 그만큼 영화는 보는 내내 불편한 감정을 전합니다. 저는 이것을 영화관에서는 보지 않았는데 영화관에서 보았다면 그만큼 더 불편해졌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영화 포스터만 보더라도 두 배우의 눈빛과 표정이 장난아닙니다. 그런 배우들이 잘하는 연기만큼이나 보는 내내 불편한 영화입니다]->
김수현(이병헌)의 약혼자인 주연이 장경철(최민식 분)에게 죽는데 자신의 약혼자의 죽음에 대해서 국정원 요원이었던 김수현은 복수하기로 결심하고 그 뒤를 쫓기 시작합니다. 장경철이 범인임을 알게 된 김수현은 위치추적기를 장경철 몸 안에 넣고 팔, 다리를 차례로 못쓰게 만들면서 잔혹한 복수를 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영화상에서 장경철을 쫓는 김수현(이병헌 분)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가 복수하고자 하는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켜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이 더 다치고 죽는 결과를 낳게 되지요. 장경철은 김수현을 보고는 "괴물치고는 멀쩡하게 생겼네"하고 말합니다. 정말 괴물같이 생긴 괴물과 멀쩡하게 생긴 괴물은 별다른 차이가 없을 듯 합니다.
영화의 첫 부분에 장경철은 주연을 차에 태워주고는 잔혹하게 살해합니다. 죽이기 전에 어느 음침한 작업실 같은 곳으로 데려가지요. 그 장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긴장하게 하고 불편하게 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듭니다. 어느 분이 리뷰에 올리셨지만 저도 이런 영화는 이제는 좀 안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세상에 괴물의 잔혹한 면을 부각시켜 사람들에게 다시 이런 일을 환기시키고 고민하게 만들게 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잔혹한 장면을 보면서 사람의 정신을 더 황폐화 시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아이들이 즐겨 보는 "뽀로로"의 세상처럼, 밝고 환한 면만 보고 세상을 살아갈 수도 없을테고 이런 영화를 보면서 이런 잔혹한 면을 간접체험하고 멀리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테지만 누군가 혹 따라할까 무섭고, 암튼 보는 내내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장경철(최민식 분)이 작은 동네 병원에서 간호사를 앞에 두고 있는 모습입니다. 뭔가 일을 벌일 듯한 분위기지요. 팔은 이미 김수현(이병헌 분)이 부러뜨린 상태입니다. 그의 정말 괴물 같은 표정과 앞에 서있는 간호사의 하얀 의상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끝은 어디일까 어떻게 되어야 할까
장경철(최민식 분)은 이런저런 사건을 일으키고 자수하겠다고 경찰한테 전화하는 대담함을 보입니다. 여기서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자수하면 끝나는 것일까? 자수하고 끝내도 되는 것일까? 오늘날 뉴스에는 사람들의 수준에서 생각할 수 없는 끔찍한 범죄가 많이 벌어집니다. 작년초 CCTV동영상으로 어느 호프집에서 사람을 계속 찔러서 죽인 사건이 이른바 "가방모찌살인사건"으로 기사화되기도 했고 국민참여재판에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그걸 떠나 이미 이전에 유명해졌던 "유영철"이나 "강호순"같은 연쇄살인범들도 있습니다. 과연 그런 사람들이,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은 억울하게 다른 세상으로 가고 유족들은 슬픔을 간직한 현실에서 단순히 교정시설에 격리되서 살아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더구나 장경철은 자수하기 전에 "마저 하던 일 끝내고"자수하겠다고 하는 - 실제로 수현과 가까운 사람을 죽이는 끔찍한 일을 하나 더 저지릅니다- 말까지 하지요.
직업상 그런 일들을 가끔씩 접하게 됩니다. 법정에서 보는 현실은 영화 속 현실보다 때로는 더 잔인할때가 있습니다. "수용자의 인권은 최대한 보장해야한다"고 형집행법 첫부분에 나와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사람들의 인권도 보장해야하는가 하는 고민을 들게 만드는 때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고민을 들게 만드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분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요.
영화 뒷 이야기
[어둠 속에서 어딘가를 쳐다보는 눈빛이 날카롭진 않지만 무섭게 보입니다. 최민식이란 배우는 눈빛 하나만으로도 장경철이란 인물을 잘 표현해내고 있지요]
최민식이라는 배우는 연기를 참 잘합니다. 그런데 그가 출연한 유명했던 영화 중에는 "올드보이" "악마를 보았다",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 등 그리 밝은 역할은 아닙니다. "올드보이"는 복수와 통하는 영화이고 최근 개봉한 "나쁜놈들의 전성시대"는 소위 인맥을 끌어내어 다소 비굴하고 때로는 영악하게 세상을 능구렁이처럼 헤쳐나가는 인물입니다. 그런 역할이 너무 잘 어울리는 것이 연기를 잘 한다는 생각도 들지만 조금은 안타깝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도 이 배우만큼 장경철이란 역할을 잘 소화해낼 수 있는 배우는 없을 듯 하지만 한편으로는 예전 "피아노 치던 꾸숑"으로, 혹은 "서울의 달"로 드라마에 나왔던 나름 잘생기고 멋있게 보였던 젊은 배우가 이렇게 이미지가 굳어지는 게 아쉽기도 합니다.
참고로 전에 김지운 감독은 "놈놈놈"으로 유명 감독이 되었지만 그전에 "달콤한 인생"이라는 영화가 있었지요. 생각해보니 김지운 감독 영화에는 이병헌이란 배우가 항상 등장했네요. 어쨌든 "달콤한 인생"에서도 "왜 그랬어요?"하면서 묻는 질문에 대한 약간은 허무하고 선문답하는 듯한 대답을 비롯해서 영화 속의 대사는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 면이 있습니다. "놈놈놈"에서도 결말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지요. 아마도 김지운 감독의 영화가 다 그렇게 약간은 허무하게 결말을 맺는 모양이지요.
어쨌든 "악마를 보았다"류의 영화는 예전 "추적자"처럼 연쇄살인범을 다룬 영화이고 묘하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면이 있습니다. 아마도 사람의 구석진 곳에 숨겨진 잔혹한 면을 한껏 끌어올리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 현실에도 존재한다는 것이 안타깝고 그런 일들에 대해서 과연 그 "끝을"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들어 리뷰로 한번 정리해봅니다. 정말 어떨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