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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아이

[도서] 열세 번째 아이

이은용 글/이고은 그림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모두 널 위한 거야"

 

초등학교 다니는 우리 아이가 있다. 아이에게 "이거해라, 저거 하지 마라" 할 때 흔히 같이 쓰는 말은 "모두 널 위한 거야"라는 말이다. 책을 읽고  나서 이 말을 생각해보니 얼마 전 뉴스에서 본  기사가 생각난다.

 

지난해 3월 어머니를 살해한 뒤 안방에 시신을 8개월 동안 방치한 혐의로 기소된 지아무개(19)군의 국민참여재판에서 검사와 변호인은 이틀간 재판부와 9명의 배심원을 설득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검사는 지군에게 “온정적 판단을 해서는 이런 패륜적 행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의 경각심을 일깨울 수 없다”며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최후변론에서 변호인은 “피해자인 지군 어머니를 비롯해 누구도 지군이 중형을 받기를 원치 않는다”며 “지군이 사회로 복귀할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최대한 관대한 판결을 내려달라”고 배심원들에게 호소했다. - 한겨례, 3월 22일자 기사 중에서 -

 

어머니를 살해한 이유는 오직 공부로만 인정받는 한국사회에서 엄마의 집착에 대한 아이의 심신미약 상태에서의 범행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전부가 다 어머니의 집착 탓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부모의 아이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아이의 성격 이상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내 아이만은..."하는 생각이, 아이를 통해 자신의 대리 만족을 이루려는 그 열망이,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다. 아마도 그 아이의 엄마도 "모두 널 위한 거야"라는 말을 자주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는 컴퓨터 게임을 좋아한다. 그런 아이에게 게임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하는 말이 "모두 널 위한 거야"하는 것이다. 만화책을 좋아하는 아이를 그만두게 할 때도, 책상 앞에 앉혀 놓고 수학 문제를 풀게 할 때도 부모로서 하는 말은 "널 위해서......"라는 말이다.

과연 이런 것들이 아이를 위한 것일까? 혹 아이의 생각을 무시한 채 부모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아이에게 커다란 무게로 다가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열세 번째 아이"는 이런 부모의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는 귀찮게 "모두 널 위한 거야"라는 말을 늘어놓는 것도 생략한 채, 아예 맞춤형으로 부모 희망사항에 맞게 아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엄마의 선택은 처음부터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어린이집에서 소풍나온 아이들을 바라보면 삐약삐약 걷는 병아리를 보는 것처럼 참 귀엽고 예쁘다. 하지만 내 아이를 키우는 현실은 그렇게 귀엽고 예쁘지만은 않다. 어쩌면 부모의 나쁜 점만을 골라서 닮았는지, 말도 잘 안 듣고 말썽만 피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어느 아이는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부모님께 효도하면서 잘 지내던 데 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스쳐간다. 아이를 가진 입장에서 아이가 내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내가 어릴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하는 생각이 스쳐가면서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다고 함부로 할 수도 없고 힘주면 깨지고 살살 다루면 버릇 나빠지는 존재가 바로 우리 아이의 모습이다.

그런 아이들이 애초에 부모가 원하는 대로 나온다면 어떠할까? 열세번째 아이 시우는 그런 엄마의 소망에서 유전과학의 성과에 어울려 "만들어져 나온" 아이이다.

좋아요. 얼마든지 해드리죠. 성격은 어떻게 할까요?

무슨 장난감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다. 한 아이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고 한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할까. 그 아이는 사람이 만들어 낸 금속성의 감정로봇과 무엇이 다를까? 엄마 아빠의 유전자는 받아야 하기에 분명히 보통 아이들처럼 엄마 아빠가 있고 감정 로봇인 레오의 말처럼 피가 흐르지만,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과연 금속성의 감정 로봇과 무엇이 다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열세번째 아이는 "부모가 원하는 대로 아이를 만드는 세상 - 그 열세번째 아이 장시우- " 라는 소설 속 기사 제목처럼 부모가 원하는 아이를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맞춤형으로 만든 결과물이다. 그 결과물로 태어난 장시우는 "감정적인 것을 싫어하고 이성적인 면이 강하길 원하는" 엄마의 소망처럼 로봇에게도 애정을 느끼는 반 친구인 유나와 달리 상당히 냉담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로봇을 함부로 버려도 되냐고 하는 유나의 물음에 대해서 "쓸모없는 걸 버리는 데 이유가 있어야 해?" 라고 대답하는 시우의 모습은 금속성을 지닌 로봇보다도 더 차가운 역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맞춤형 아이를 만드는 엄마의 모습은 마치 고급 백화점에 가서 자신에게 맞는 옷을 고르는 것과 같다.

첫번째 맞춤형 아이인 김선 박사의 노벨상 수상 소식과 함께 소설은 시작된다. 하지만 맞춤형 아이의 최초이자 "우월한 유전자"를 자신의 동생뻘인 맞춤형 아이들에게 강조했던 첫번째 아이인 김선 박사는 한 줄 메모를 남기고 자살하고 만다. 맞춤형 아이의 부작용이 소설 속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소설 중간에 나오는 기사처럼 만약 불법적인 짝퉁 맞춤형 아이가 대량 생산되고 또한 그 아이들이 정상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아 "정품" 맞춤형 아이와 다르게 부작용으로 인한 문제점을 안고 있을 경우 우리의 부모들은 그 아이를 버려야만 할 것인가. 거기에 대한 뚜렷한 처리는 나와 있지 않지만 책 속의 내용은 그 아이들을 부적절하게 처리한다는 내용을 암시해주고 있다. 결국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맞춤형 아이"도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시우가 버리는 로봇들처럼 부모들의 버림을 받고 말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으로 감정로봇을 만들고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시우와 지오 같은 아이와 돈이 없어서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고 감정 로봇도 갖고 다니지 못하는 차니와 같은 아이의 대비, 더 나아가 짝퉁 맞춤형 아이를 만드는 부모에 이르기까지 맞춤형 아이와 감정 로봇을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으로 사회의 계급이 분화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왕따의 대상이 이전 과거의 같은 인간 아이들에게서 로봇에게로 옮겨간 모습에서 오늘날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왕따 현상 등의 문제점을 로봇에 빗대어 고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에 이 소설의 내용은 오늘날 우리 아이들에게 생기고 있는 문제점을 미래 사회에 비추어 고발하면서 다소 무거운 문제의식을 갖고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모든 것들이 내 손에서 가슴으로 전해졌다.

 

열세번째 아이는 유전자 조작으로 부모의 맞춤형으로 태어난 아이와 이와 비슷하게 맞춤형으로 만들어진 감정로봇 레오가 주요 등장인물로 대립을 이루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둘의 차이점은 하나는 피가 흐르는 인간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금속으로 된 로봇이란 점이지만 실질적으로 맞춤형으로 태어났다는 점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오히려 인간인 시우보다는 로봇인 레오가 따뜻한 과거의 기억을 지니고 감성을 지닌 인간처럼 등장하며 금속처럼 차가운 이성을 지닌 시우와 갈등한다. 맞춤형으로 만들어 졌다는 데 공통 분모를 갖고 있는 둘은 레오가 시우와 함께 한 기억을 갖고 있는 것처럼 어느 정도 공통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서로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결국 서로의 공감대를 확인하고 인간으로서 감정을 확인하면서 소설의 마지막은 슬프지만 따뜻하게 마무리된다.

레오가 지키고 싶어했던 모든 것들이 내 손에서 가슴으로 전해졌다.

레오의 로봇으로서의 생명을 자기 손으로 멈추게 하면서 시우의 손에 레오의 따뜻함이 전해진다. 레오가 지키고 싶어했던 것들은 아마도 시우와 함께 한 따뜻한 기억들, 그리고 그 기억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인간적인 아이, 시우였을 것이다. 금속성의 물질을 지닌 로봇이 지닐 수 없는 사람의 온기. 엄마가 만들어낸 열세번쨰 아이나 감정 로봇인 레오는 그런 사람의 감성을 무시하려 했지만 결국 시우나 레오는 그런 사람의 감성을 찾아가면서 소설의 결말을 맺는다.

전체적으로 "열세번째 아이"라는 소설은 어린이 문학상을 탄 소설이라 하기에는 제시하는 주제가 무겁고 이야기가 적나라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오히려 아이들보다는 맞춤형 아이를 만들려고만 하는 우리나라 부모들이 읽어야만 하는 소설이 아닌가 싶다. 파란 화면에 검정색 글씨로 중간중간에 레오의 생각을 담아낸 편집도 새롭다. 그런 것들이 모두 모여 "가슴으로 전해지는" 감성을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인간적인 감성이 메말라 가는 현대 사회에서 아이가 있는 나와 같은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한번쯤 되돌아보며 찬찬히 읽어 볼 만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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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는 아직 미혼이라서...아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멀게만 느껴집니다. 교육방식도 어렴풋이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하다가도 매번 바뀌구요. 하지만 단 하나, 기계적이고 맞춤형으로 아이를 만들려는 부모가 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곧 첫 딸을 보는 친구에게 선물하면 -.,-; 좀 오버일까욤 ㅎㅎ

    2012.03.29 23:24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벌써부터 고민하실 필요는 없을 거예요. 내 아이는...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존재거든요^^;; 어쨌든 기본적인 교육 철학? 정도는 갖고 계시는 게 좋긴 하겠죠. 굳이 아이가 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예비 부모가 될 분들한테 한번 읽어보라고 선물해주는 게 나쁘진 않을 것 같네요^^

      2012.03.31 10:56
  • 파워블로그 maru

    저도 위의 사건을 접하고 참 많은 생각이 들었었는데, 얼마전에 기사가 났더군요.
    어머니를 살해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 학생이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엄마가 원한 것이 정말 자식을 위한 것이었을까?
    물론, 아니겠지요. 엄마의 채워지지 않은 욕망을 자식을 통해서 얻으려는 마음이 컸을 거예요.
    이 책의 내용이 궁금했는데, 서평 잘 읽었습니다.

    2012.03.31 22:41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위와 비슷한 사건이 꽤 오래전에도 있었습니다. 아이가 고려대 다니는 학생이었는데요 그때도 엄마랑 아빠랑 이혼해서 엄마의 기대치가 컸던 그런 환경이었습니다. 책 내용이 오늘날 학교 문제와 어울려서 시사하는 점이 크고 그런 것들이 독자들에게 많이 다가올 듯 합니다. 아이 키우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요^^;;

      2012.04.01 11:30
  • 요즘 부모와 아이들의 모습을 참 잘 드러내 준 소설이더군요.
    사실 이젠 감성의 시대다..하며 아이들의 감성을 높이는 각종 교재와 교육법까지 등장하니, 이성이건 감성이건 자연스러운 제것을 갖기 힘든 세상이 아닐까 생각해요. 저도 읽었는데 레오의 생각이 담긴 파란 페이지들이 참 맘에 들었어요. 흠..그것이 감성의 힘이었군요.^^

    2012.04.01 00:30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그림과 편집을 적절하게 잘 맞춰서 했더군요. 글 내용도 감정을 지닌 로봇의 소재가 워낙 많이 나와서 식상할 수도 있었겠지만 오늘날 사회 문제와 부합해서 독자들에게 많이 다가왔을 듯 싶어요. 자연스럽게 흙만지면서 노는 것이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인데... 요즘은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어 안타깝네요.

      2012.04.01 11:32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