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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해도 괜찮아

[도서] 욕망해도 괜찮아

김두식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색"과 "계"의 경계

 

글쓴이는 "색,계"란 영화에 대해서 종종 언급합니다. 전에 "불편해도 괜찮아"에서도 그랬고 이번 "욕망해도 괜찮아"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와 남자의 살과 살의 만남을 솔직하게 영상으로 나타난 영화를 본 것에 대해서 "와, 세상에, 우리나라에서 도 가위질 없이 이런 영화를 볼 수 있게 됐구나"하고 감격한 것은 비단 글쓴이 만이 아니라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글쓴이는 "와!"하는 감탄사로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냅니다. 책 제목처럼 "욕망해도 괜찮아!" 하고 스스로의 욕망을 나타내는 셈이지요. 이후 "섹스를 묘사한 어지간한 영화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고도 말합니다. 그만큼 영화의 수위는 높았고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도 많았습니다.

이 영화를 자주 언급한 것은, 아마도 책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색", 과 "계", 개인의 욕망과 그 욕망을 성안에 가두어 놓는 결계나 경계에 대해서 가장 솔직하면서도 대표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그 영화를 보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야한 것을 보고 싶다는 솔직한 욕망을 나타내기도 쉽고 살을 통한 만남도 사랑으로 갈 수 있다는 것, 즉 개인의 욕망을 너무 무시해서도 안된다는 생각을 나타내기도 쉽기 때문일 겁니다. 그만큼 영화 자체가 파격적이었는데요 그런 파격만큼이나 이 책의 내용도 솔직하게 개인의 욕망에 대해서 드러내보입니다. 하지만 글쓴이가 고백한대로 이 책의 내용은 결국 "계"를 크게 넘어서지는 않습니다. "성안"에서 주로 지내다가 조금씩 밖에 나가서 놀다가도 항상 "성안"에서 자고는 했다는 글쓴이의 어린시절에 대한 고백처럼 "신정아 사건"을 시작으로 글쓴이의 가족 이야기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한번 솔직하게 욕망에 대해서 말해보자"하는 명제를 독자들에게 던지면서도 자신조차도 기존의 계로 대표되는 모범생의 틀을 과감하게 던지는 데는 익숙치 않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면이 책의 내용을 더 설득력있게 만들기도 합니다. 자신이 안주하는 성안에서 모범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가끔씩 일탈을 꿈꾸는 모습이, 저를 비롯한 독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요.

 

 

"은교"에서 본 욕망

 

 책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것은 요즘 보았던 "은교"란 영화였습니다. 우선은 "노출"이란 명제를 보면, 영화 자체에서는 여배우의 노출이 그렇게 적나라하게 와 닿지 않았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여배우의 노출이란 말을 듣고 영화에 관심을 기울이기 마련이지요. 그런 면에서 욕망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영화 중에서 서지우가 이적요 시인한테 은교와의 사랑을 "세상사람들은 더러운 스캔들"이라고 한다는 말을 외칩니다. 그 말의 이면에는 "욕망해도 괜찮아" 책 속에 나오는 이른바"사냥꾼"들이 "세상 사람들"이란 이름으로 등장하지 않나 싶습니다. 솔직히 70살이 넘은 노인과 여고생의 사랑 이야기를 "사냥꾼"들이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을 할까요? 겉으로는 도덕을 앞세우면서 - 글쓴이가 말한 "계"의 부분입니다- 속으로는 부러워할지도 모릅니다. 더럽다고 욕하고 늙은 시인이 모범적인 사람으로 남길 바라면서도 그 스캔들의 주인공이 은근히 자기가 되었으면 하는 "욕망"을 가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사람과 내가 뭐가 다르지?"하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글쓴이의 이야기처럼 우리 자신도 자신의 욕망이 솔직히 무엇인가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명제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런 욕망을 인정하는 것이 나아가 남을 이해하는 데 바탕이 되겠지요.

신정아 사건에 나오는 "똥 아저씨"나 이런 스캔들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냥꾼"들은 결국 일란성 쌍둥이와 같다고 말하는 글쓴이의 주장은, 인터넷 악플에서 대부분의 글이 비판글보다는 자신의 넋두리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로 뒷받침되기도 합니다. 결국 어른이 된 "똥아저씨"가 모범생이었던 어릴 적 자신이 "계"에 얽매여 표출하지 못했던 욕망을 어른이 되어서 내보이는 것이나, 자신의 이루지 못한 욕망을 똥아저씨 같은 사람을 비판하면서 나타내는 "사냥꾼"이나, 그동안 나타내지 못했던 욕망을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그 둘이 서 있는 위치만 다를 뿐 근본적인 면은 같은 사람들이란 이야기지요.

 

 

욕망에 대한 솔직함이 필요해

 

글쓴이는 머릿글에서 "40대 중반에 이른 저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사람"이라고 솔직히 고백합니다. "멘토가 너무 많아서 쉼쉬기 힘든 요즘 같은 때에" 어쩌면 이런저런 저서로 나름대로 멘토의 반열에 서도 될만한 저자가 이런 고백을 한다는 것도 상당히 솔직한 모습이겠죠. 미디어에서는 수많은 멘토들이 나와서 어려웠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그와 일치점을 찾지 못하는 이상은 와닿지 않을 듯 합니다. 차라리 글쓴이처럼 솔직하게 "나도 아직 자라고 있어! 나도 아직 지랄의 총량을 쓰지 못한 애어른이란 말이야!"라고 고백하고 함께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불편해도 괜찮아"에서 언급된 "지랄 총량의 법칙"은 한창 사춘기였던 글쓴이의 딸 같은 청소년들 뿐만 아니라  "똥아저씨", 나 "사냥꾼"같은 어른들에게도 적용될 법한 일들입니다. 저도 요즘 웹툰을 비롯한 만화에 푹 빠져 사는데 만화를 보는 것은 안 좋은 것이라고 들었던 어릴 적에 쓰지 못했던 "지랄의 총량"을 지금 쓰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건 돈 안드는 점잖은 일일지도 모르고 이제 돈 드는 더한 취미를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가끔 제가 갖지 못했던 레고 장난감을 갖고 놀고, 학습만화를 빙자한 만화책도 손쉽게 읽으면서 내 어릴 적과 다른 생활을 하는 우리 아이를 보면서 부럽다고 느끼는 것은 어릴 때 여건도 되지 못하고 모범생의 "계"에 얽매이기도 해서 쉽게 쓰지 못했던 내 자신의 "지랄 총량"을 아쉬워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자신의 욕망을 솔직히 인정하고 비판받는 남도 나와 같다는 것을 인정하는 솔직함이 담길 때, 서로에 대한 이해의 싹이 트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지랄 총량"을 그때그때 적절한 시기에 쓰는 것이 나중에 더 큰 해를 막는 지름길인 것을 알 때, 우리 청소년들의 탈선 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똥아저씨"처럼 되는 것을 막는 길일 것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장 큰 깨달음은 이런 것들이 아닌가 싶네요. 우리 모두 한번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 집시다. 단, 남의 솔직함도 인정하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가짐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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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maru

    <욕망해도 괜찮아>와 <은교>를 연결지어서 서평을 쓰셨네요. 저자 자신도 계의 테무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생각은 좀 더 자유롭고 솔직하게 나타낼 수 있어야 할 것 같네요.

    2012.06.22 08:23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요즘 같은 때에 좀 이름있다 싶은 사람이 솔직하게 한마디 하면 여기저기 채이기 쉽지 않나 싶네요. 사람들보면 다들 남 이야기 하는 거 좋아하고. 자기가 갖고 있는 욕망이 남들도 비슷하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 배려가 아닌가 하네요. 물론 그런 욕망이 남한테 피해가 되면 안되겠죠.

      2012.06.27 02:56
  • 파워블로그 eunbi

    통념적 욕망의 경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책인가 봅니다... 욕망이란 원초적 본능을 어떻게 풀어내는지 궁금해 지는구요...^^*

    2012.06.23 00:36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생각보다는 그렇게 적나라하게 쓰지는 않았어요. 글쓴이의 말대로 경계에서 살짝 더 넓힌 정도지만 그래도 나름 솔직담백하게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들어요.

      2012.06.27 02:57
  • sunnydaler

    욕망이란 것이 참...

    2012.12.07 14:30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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