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관한 다른 관점의 영화
정윤수 감독은 지금까지 결혼에 관한 세 개의 영화를 만들었다.
"아내가 결혼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그리고 이 영화 "두 여자"
대충 제목만 봐도 알겠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의 밝고 명랑한 모습이라기 보다는 왠지 결혼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은 내용의 영화들이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리 가볍지 않은 주제를 손예진이란 배우를 통해서 로맨틱 코미디 영화처럼 무겁지 않고 재미있게 만들어 냈다. 반면에 "두 여자"는 내용도 그렇고 영화의 전개도 무겁게 보이기만 하다. 다른 리뷰를 보다 보니 이 영화는 핀란드의 "블랙아이스"라는 영화를 원작으로 했다고 하는데 네이버 "블랙아이스" 예고편 동영상만 보더라도 상당히 파격적으로 보인다.
원작을 보지 못했으니 뭐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두 여자"만 놓고 보았을 때는 일단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다. 원작을 너무 따라가려고 했을수도 있고 아니면 뛰어넘으려고 욕심을 냈을 수도 있다. 혹은 핀란드와 우리나라의 관점의 차이가 흥행 실패 요소일수도 있다. 그런데 뜬금없는 이야기일지는 모르지만 이 영화의 주연 남배우는 "정준호"이다. 정준호라는 배우가 코미디 연기를 한 "두사부일체"는 제법 흥행을 했지만 이 배우가 제법 진지하게 연기를 했던 다른 영화들은 - 가령 "흑수선"이나 "싸이렌"과 같은- 그리 흥행하지 못했다. 그냥 그 점이 눈에 밟혔다. 그게 영화 내용과 무슨 상관일까 싶지만 적어도 온 몸을 다바쳐 혼신의 연기를 해 보인 배우들에 비해서 영화 끝맛이 뭔가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잘 짚어내기 어렵다.
어쨌든 이제 내 남자의 여자, 혹은 내 여자의 남자라는 내용은 영화, 드라마, 책 등등 우리 주변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결혼에 관한 다른 관점을 - 내 남자 혹은 여자에게, 다른 여자 혹은 남자가 있을수도 있다는 - 수없이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내 남자의 여자로부터 시작된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내 여자인 아내의 남자로부터 시작된다. "두 여자"는 "내 남자의 여자"로부터 시작한다. 일과 사랑 에 있어서 문제될 것이 없는 산부인과 의사 소영(신은경)은 변함없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남편, 건축가이자 교수인 지석(정준호)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배경이어야지 영화 속 다른 여자가 빛나리라 생각되는데, 일단 영화는 부부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인지 어느 카페에서 친구 내외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누군가 그 모습을 사진을 찍는 컷이 나오는 데 그것이 나중에 수지(심이영)가 소영(신은경)의 정체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복선이 된다.
어쨌든 이제 남편(지석/ 정준호)의 다른 여자가 등장한다. 여기까지는 남편의 외도로 인해 불행해지는 이야기로 다른 영화나 드라마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데 이후에 약간 비틀어간다. 소영(신은경)이 남편의 여자와 친하게 지내기로 한 것이다. 그냥 쿨하게 헤어지고 위자료 받고 하면 됐을 법한데 커다란 복수극이라도 꾸민 것인지 쉽게 헤어지지 않는다. 마지막 결말을 보았을 때는 얼핏 복수극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데 영화 전개상 소영이 그렇게 치열하게 복수극을 꾸민 것 같지도 않다. 그 마지막 결말은 사전에 소영이 연출했다기보다는 우연한 사고처럼 보이는 데 아마도 내 생각에는 이런 개연성들이 부족한 점이 영화에서 약간 밋밋한 맛이 나는 한 요소가 아닌가 싶다. 어쨌든 결말만들 두고 보았을 때 다른 여자를 두고 있는 한 여자의 남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킬만 하다.
[소영(신은경)은 수지(심이영)에게 접근한다.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오누이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두 여자. 아직 수지는 소영의 정체를 모르는 상태]
예전 "종합병원"이란 드라마에서 선머슴처럼 등장해 중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면서 열연하던 신은경이란 배우는 이제는 나이가 들어 중년에 접어든 산부인과 의사로 나왔다-여전히 의사이다!- 그에 비해서 남편의 다른 여자는 젊고 뭔가 다른 매력이 있을 듯 싶은데 그런 면에서 수지 역의 심이영이란 배우는 잘 어울린다. 남자의 아내보다 어리고 작고 귀여운 외모를 지녔으며 발랄하다. 적어도 영화상에서는 남자가 푹 빠질만한 요소를 갖췄다. 다만 그런 여자가 뭐가 아쉽다고 여자가 있는 남자와 만나는지는 - 영화 전개상 그렇기는 하겠지만 - 이해하기 어렵다.
수지는 건축과 교수인 지석의 학생이며, 싸우면서 친해진다는 옛말처럼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순간의 스파크로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항상 싸우고 나면 끌렸다는 수지의 말처럼 둘의 관계는 다정하고 느끼한 연인들의 모습과는 약간 거리가 있어보인다. 어쩌면 여자 있는 남자와 만나는 한계점일지도 모른다.
이런 수지는 요가 학원에서 선생으로 일하는 데 소영은 이곳을 찾아가 등록하면서 둘이 점점 가까워지고 서로 같이 여행도 떠날 정도가 된다. 영화속에서 소영은 수지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고 의도적으로 접근하지만 수지는 이를 모르는 체 소영과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두 여자가 여행을 가서 팬션에서 둘이 목욕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상당한 볼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약간의 동성애적 모습도 풍기는 데, 다만 나름대로 신경 쓴 것 같은 영상에 비해서 그 느낌이 확 와닿지 않는 것이 아쉽다.
어쨌든 정윤수 감독의 결혼에 대한 다른 관점의 영화의 연속이라는 선상에서 보면 그런대로 관심이 갈 듯 하며 배우들이 몸 사리지 않고 나름대로 신경써서 만든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지켜보면 그런대로 볼만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혼인빙자간음죄는 사라졌지만 아직까지 간통죄가 형사처벌 대상인 우리나라에서 이런 내용의 영화나 드라마가 계속해서 나온다는 것이 상당히 발전적인 모습일지 아니면 위험한 모습일지는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일 듯 싶다.
ps. 뒤늦게 유명해진 배우
영화에서는 신은경이나 정준호라는 배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심이영이란 배우가 많이 보였다. 자칫 어려울 수도 있는 배역을 연기가 아닌 현실처럼 그대로 감정을 실어서 내보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끔씩 신인 혹은 신예라고 불리지만, 사실 심이영은 연기 11년차의 배우다. 김기덕 감독의 <실제상황>, 박철수 감독의 <봉자> 등 범상치 않은 작품으로 배우의 초년 시절을 보냈다. 그 후로도 그의 과감한 연기 도전은 계속됐다. 확실히 다른 여자 배우들과 사뭇 다른 연기 행보를 보여온 게 사실이다.
- 맥스무비 인터뷰 [ 두여자] 2010.11.15일 기사 일부 인용 -

[수지(심이영)와 소영(신은경)이 가까워지고 여행간 팬션에서 나름 친밀한 시간을 보낼 때 모습]
ps. 관련 자료를 검색하다가 이 스틸 컷이 일간 신문지상에 많이 인용되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정도 사진도 이제는 등급제한 없이 나올 정도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놀랐다. 발전했다고 해야할지 아님...
“그래서 한참을 생각했어요. 도대체 나는 왜 이럴까? 여자 배우라면 좀 더 쉽고 좀 더 편하게 갈 텐데, 나는 왜 이런 캐릭터에 꽂히는 것일까?” <두여자>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이내 할 수 있다는 자기 최면을 거쳐 만난 작품이다. 하지만 촬영 직전까지 방황의 시간이 이어졌다. 그리고선 “결국엔 내가 하고 싶은 걸 내가 이기지 못하는구나.”라고 느꼈다. <파주>의 박찬옥 감독한테 물었더니 “그건 그냥 이영씨가 가지고 있는 좋은 성향인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 맥스무비 인터뷰 [ 두여자] 2010.11.15일 기사 일부 인용 -
좋은 성향이란 것은 아마도 아마도 어떤 배역에서든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연기력을 가졌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넝쿨당 이전, 평범하지 않은 배역만 맡아 했으면서도 무리없이 잘 어울리는 모습이 좋아보인다. "두 여자"에서도 영화 자체는 약간 밋밋해보였지만 심이영이란 배우의 연기는 자연스럽게 어울어져 보였다. 요가 학원에서 강사의 모습도, 바이크 타고 가는 곱슬머리의 작고 당찬 여자의 모습도 좋아보였다. 기존의 배역에서 벗어나 넝쿨당에서 또다른 모습을 보여준 만큼 앞으로도 계속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