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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무살 적에 하루를 견디고 / 불안한 잠자리에 누울 때면
내일 뭐하지 내일 뭐하지 걱정을 했지

일이 끝나고 집에서 좀 쉬고 있으니 아이가 집에 옵니다.

아이가 코를 많이 흘렸는지 코 아래가 빨갛게 되었습니다. 휴지로 닦거나 물에 닦아서 손을 씻으라고 말해주었는데 항상 모든 일에 건성인 녀석이 그 말대로 했을리가 없습니다. 걍 쓰~윽 하고 옷으로 코를 닦았겠지요. 깔끔떠는 반 아이들에게 핀잔들었을 법도 합니다.

아이를 데리고 이비인후과에 갑니다. 동네 병원이 많이 변했다고 느낀 것은, 예전 저 어릴 적 다니던 병원에 비해서 사람들도 줄어들고 의사 선생님도 많이 친절해졌습니다. 물론 병원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이곳저곳을 다녀보니 예전에 비해서 설명도 잘 해주고 아이들한테 상냥한 모습도 많이 보여줍니다. 저 어릴 적에는 왜 아픈지 물어보면 퉁명스럽게 짧게 대답하거나 대답도 안하던 기억이 많았거든요. 어쨌든 병원 의사 선생님이 아이 코가 좋지 않으니 한동안 치료해보자고 말씀하십니다. 이런저런 설명도 많이 해주셨는데 잘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코에 칙칙 뿌리는 이비인후과 기계가 영 맘에 들지 않는지 고개를 돌리고 켁켁 거립니다. 코에 수증기 김처럼 쏘아주는 기계앞에서는 가만히 앉아있지 못합니다. 저 어릴적에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지요. 생각해보니 아이를 키우면서 "나 어릴 적에는 ~~"이런 생각을 많이 하곤 합니다. 나 어릴 적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나 어릴 적에는 알아서 잘 했는데... 등등. 어쩌면 아이도 크고 나서는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눈을 감아도 통 잠은 안 오고 / 가슴은 아프도록 답답할 때
난 왜 안 되지 왜 난 안되지 / 되뇌었지


집에 밥도 없고 힘들게 해도 잘 먹지도 않아서 외식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어제 야근하고 피곤한데 낮에 잠을 자지 못해서 피곤이 풀리지 않은 탓도 있었지요. 비는 부슬부슬 내리다가 잠깐 그쳤습니다. 비가 내렸음에도 생각보다 날씨가 춥지는 않습니다. 차 안에 USB에 담아 플레이하는 음악에서 "말하는 대로"노래가 나옵니다. 이 노래 가사가 참 좋습니다. 물론 음악도 그렇구요. 항상 고민을 하던 이십대의 내 모습이 떠오릅니다.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그렇고 항상 고민의 연속인 듯 합니다.

아이와 죽집에 갔습니다. 늘 가던 데라 주인 아주머니가 잠깐 아는 척 웃음을 짓고 안에 들어갑니다. 이 집도 이 동네에서 상당히 오래 했습니다. 사람들도 항상 많네요. 아이는 항상 야채참치죽을 먹습니다. 아이한테 말합니다. "아빠는 호박죽도 좋고 삼계죽도 좋고 팥죽도 좋은데 석영이는 야채참치죽만 먹으니까 아빠가 다른 걸 먹을 수 없네. 너가 또 죽 한 그릇 다 못 먹으니까 또 시키기도 그렇고. 다음에는 다른 죽도 한번 먹어보자" 상당히 부드럽게 썼지만 속에서는 왠지 짜증이 났을 법도 합니다. 항상 똑같은 메뉴의 죽이 뭐가 그리 좋은지 여기저기 흘리면서 먹습니다. 항상 말하지만 흘리는 것도 여전하고 옷에 꼭 밥풀 묻히고 다니는 것도 여전하고. 언제나 커서 자기 아이한테 죽 사주고 다닐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는 아빠의 물음에 "다음엔 그럼 다른 거 먹어보지 머"하고 간단하게 대답합니다. 쉽지는 않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 될 수 있다곤 믿지 않았지
믿을 수 없었지 / 마음 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할 수 있단 건 거짓말 같았지 / 고개를 저었지

 

양천 성당 옆에 떡볶이와 호떡을 주로 파는 가게에 가서 간식을 먹습니다. 녀석은 자기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먹성이 좋습니다. 가끔 이렇게 먹여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저도 여기 떡볶이는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떡볶이와 오뎅 1인분씩 시켜놓고 먹습니다. 아이한테 어제 수행평가 본 것 몇 점 맞았는지 물어봅니다. 너무도 쉽게, 쉽게 말해서는 안되는 점수를 말해줍니다. 아빠가 생각하기에는 그냥 눈감고 찍어도 그것보다는 점수가 잘 나올 듯 합니다. 음~~ 벌써 주관식이라도 시험문제로 내나?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보지만 그러지는 않을 듯 합니다. "석영아. 이제는 좀 공부 좀 해야하지 않을까?"하고 말하는 아빠의 머리와 마음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을 법합니다. '너무 놀리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평균은 해야지. 영어는 아예 손 놓고 있는데. 아이들한테도 공부 못한다고 놀림 당할텐데. 나 어릴 적에는 학원 안다녀도 이것보다 점수 훨씬 잘 맞았는데. 한번 쥐어패야할까?' 등등의 생각이 스쳐지나갑니다. 일단 접어둡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맘에 찾아온 / 작지만 놀라운 깨달음이
내일 뭘 할지 내일 뭘 할지 꿈꾸게 했지

 

아이와 집에 옵니다. 한창 때여서 그런지 검도 학원에서만 운동을 하는데도 머리에 땀 냄새가 가득합니다. 샤워하고 오라고 합니다. 아빠 손이 닿지 않으면 대충대충 씻고 나오는 데 그래도 혼자하는 버릇을 들여야 할 듯 싶어서 놔둡니다. 그래도 나오고 나서 머리는 좀 말려줘야 합니다. 안 그러면 머리에 물이 잔뜩 묻은 채로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닐 터입니다.

컴퓨터 하고 싶다고 합니다. 아빠는 승진 시험이 있어서 공부하고 있는데 앞에서 계속 딴 짓만 합니다. 어릴 적 아빠와 아들이 나란히 책상을 마주하고 앉아서 책을 읽는 모습을 꿈꾸기도 했는데 요 녀석하고는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입니다. 아빠는 한 가지 함정을 팠습니다. "내일 수행평가 있으니까 공부 좀 하고 오늘은 컴퓨터 쉬는 것이 낫지 않을까?" 당연히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일단 오늘 컴퓨터 하고 내일 수행평가 몇 점 이상 맞지 못하면 다음에 그 점수 맞을 때까지 컴퓨터 하지 않는 걸로 하는 건 어때?" 걸려들었습니다. 눈 앞의 먹이에 눈이 멀면 안 됩니다. 하지만 아이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오늘을 즐기기로 합니다. 하긴 인생 뭐 있을까요. 즐기면서 살면 되지...

- 오늘 역시나 점수가 안 나왔습니다. 이제 거의 한 달동안 컴퓨터 못하게 할텐데 잘 버틸지... 모르겠네요 ㅋㅋ -

 

사실은 한 번도 미친 듯 그렇게 / 달려든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 봤지 일으켜 세웠지 내 자신을


우리 그분이 일에 빠져 사는 동안 아이랑 지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그렇게 하루가 갑니다. 자기 전에 노래 가사 처럼 "두 눈을 감아도 통 잠은 안 오고" 뭔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지난 날에 하지 못한 것들, 헛되이 흘러버린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겠죠. 한편으로는 이렇게 아이와 보내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더 이상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답답함이 드는 건지도 모릅니다. 우리 그분은 나보다 한발 앞서서 일에서 그런 것들을 메워가고 있을테니 불만은 없을 듯도 합니다. 과연 나는 무엇을 하고 싶었던가 보다 그동안 너무도 시간을 쉽게 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미친 듯 그렇게 달려든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뭔가 빠져서 열심히 해 보았어야 할 나이에 너무도 흐릿하게 보낸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아이한테는 이런저런 기회를 주고 싶은데 아이는 아직 아빠의 바람을 잘 모를 듯 합니다. 아마도 크고 나면 점차 알게 되겠지요.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 될 수 있단 걸 눈으로 본 순간
믿어보기로 했지 /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할 수 있단 걸 알게 된 순간 / 고갤 끄덕였지

노래가 참 좋습니다. 차 안에서 계속 반복해서 들었는데 아이돌 가수의 격한 리듬을 좋아하는 활동적인 아이는 별로 좋지 않은가 봅니다. 그래도 운전은 내가 하니까... ㅋㅋ 이런 낙이라도 있어야지요. 지금이라도 차근차근히 보람있는 일을 하나씩 찾아다녀야 할까요?^^ 뒤척이다 나도 모르는 새 피곤함에 잠이 듭니다. 아이도 옆에서 쓱 잠이 들었겠지요.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갑니다. 늦은 가을... 잘 보내고 계신가요?^^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 될 수 있다고 될 수 있다고 / 그대 믿는다면  

마음 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 꿈은 간절히 인생은 영원히 /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곡 : 이적 작사 : 이적, 유재석]

 

 

도서관 뒤 편 길, 이 길을 아이와 함께 다닌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군대 가기전에도, 전역하고 나서도, 수험생활 할때도, 아이와 놀러올 때도 걷던 그 길.

늦은 가을 낙엽이 가득하고 아이가 걸어갑니다. 아이는 커가도 길은 여전하군요.

예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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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파란토끼13호

    노래가사에 캡님의 일상이 그려지는군요.아들과의 재미있는 기싸움... 아이들은 그렇게 큽니다.클수록 더 싸음이 벌어지겠지요.내가 감당을 못할정도로...

    2012.11.07 19:57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정말 아이들은 빨리 큽니다. 하긴 저도 빨리 늙어가는 느낌이 들어요T.T 노래 가사가 참 좋더군요. 계속 들어도 질리지 않아요^^

      2012.11.15 02:21
  • 저희때는 그래도 '할 수 있을거야'가 대세였고,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다곤 믿지 않'는 분위기는 없었는데...
    이 노래는 아픈 청춘의 요즘 현실을 묘사하고 있는 것 같아 맘이 씁쓸하네요.
    (그래도 마무리는 희망으로...가사가요..^^)

    문득 다시 희망을 품어보는 노래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혹시 아실런지 모르겠지만 Mr.children의 <쿠루미>라고.
    http://no_1charisma.blog.me/30086666143
    ->요거 복사해서 들어가시면 두 손에 코스모스를 가득 담은 흑백사진(맨 위에 있음)이 보이는데, 사진 바로 아래 노래 나오는 거 일단 끄시고, 포스트 맨 아래 'M/V를 꼭 보길 권장한다' 밑의 파란색 글씨 [M/V]를 클릭해 접힌 부분을 펼쳐 보세요.
    그게 뮤비 동영상이거든요. 노래도, 가사도 무척 좋아요.
    * 쿠루미는 호두나무라는 뜻이라네요.

    그럼, 다음에는 석영이가 야채참치죽 말고 다른 것을 먹는 이야기를,
    아이의 커다란 변화를 올려주시길...^^

    2012.11.08 00:43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할 수 있을 거야 하는 가사가 담긴 노래를 어릴 적에 많이 불렀던 기억이 나네요. 요즘은 말씀대로 점점 어두워지는 듯 하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우울한 뉴스도 많이 나오구요. 좋은 쪽으로 변화가 이루어져야할텐데요... 소개해주신 노래는 꼭 찾아보겠습니다^^

      2012.11.15 02:25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