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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아빠는 집에 가는 길에 고민이 빠집니다.

"오늘 저녁은 뭐 먹이지?"

아이를 데려가는 차 안에서 가만히 생각을 해봅니다. 아빠가 할 줄 아는 요리는 한정되어 있고 아이가 원하는 요리도 정해져 있습니다. 어릴 때 김치와 따뜻한 밥만 있으면 되었던 때, 거기에 계란 후라이나 소세지 볶음 정도면 성찬이었던 때와는 또 다릅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야해서 머리가 아픕니다.

 

가장 무난한 부대찌개를 생각해봅니다. 집에서 부대찌개를 하려면...

"우선 두부를 사야하고 햄이나 소세지, 부대찌개 양념, 찌개용 면 또 뭐 사야하나?"

아빠가 혼자서 중얼거리는 동안, 차 안 뒷 자석에서 한 마디 소리가 찔러옵니다.

"그냥 사 먹어~"

이런... 뭐 같은 녀석이 ... 아빠가 이렇게 고민하면서  밥 해 줄 생각을 하고 있는데.

순간 울컥 해서 뭐라고 한마디 합니다. 아이한테 뭐라 화를 내면 금새 후회하고는 하지만, 나름 저를 위해서 고민하고 있는데, 저 때문에 이렇게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그런 성의없는 말을 하는 것에 순간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어쩌면 누굴 그리도 닮아 저러는지... 하는 생각도 동시에 스쳐갑니다. 거기까지는 입 밖에 내면 교육상 너무 안 좋을 것 같아 참아둡니다.

 

소세지나 햄이 귀했던 내 어린 시절. 우리 어머니도 그런 고민을 하면서 김치를 도시락에 담아주셨겠지요. 응답하라1988의 배경 시대까지 가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응팔 드라마 속에서 접시에 산처럼 쌓여서 나오는 계란에 부친 소세지 반찬을 생각해보며 그런 반찬도 귀했던 시절을 보내면서 반찬 투정을 했던 어린 시절이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집니다. 그래도 내가 너한테 먹인 정성이 얼만데 나한테 그럴 수는 없지! 하는 생각이 금방! 떠오릅니다. 너가 잘못한거야...라는 생각.

 

동네 수퍼에 갑니다.

바구니 하나를 들고 부대찌개용 재료를 사서 담습니다. 아직 찌개 양념을 직접 만들 정도는 되지 못하는지라 부대찌개용 양념 파는 것을 하나 사고, 찌개용 두부를 사고, 소세지를 사고, 찌개용 면도 사고 그렇게 담고 마지막에 아까 화 냈던 것이 미안해서 "먹고 싶은 과자 하나 사라"고 말해줍니다. 아이는 아빠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종류의 나초 같은 과자류를 집어 듭니다. 과자 하나에도 취향이 다른 부자지간이지만 거기까지 신경써서 뭐하나 하는 생각으로 잔소리를 접어둡니다.

 

추운 동네길을 얼릉 뛰어서 집에 도착하니 무한도전이 텔레비전에서 나올 시간입니다. 아이가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을 이용해서 찌개를 만듭니다. 이미 만들어진 양념을 사서 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재료를 다듬는데 손이 많이 갑니다. 그 정성이라도 담아내려고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겠지요. 소세지를 꺼내서 "칼집"을 냅니다. 끝에 삐져나온 꼭지는 칼로 다듬어 잘라내구요. 붉은 찌개 국물에 살짝 칼집이 들어가 벌어진 모습이 나와야 그나마 먹기에 좋지요. 물을 냄비에 담아 끓이는 동안 준비한 떡 조각을 집어 넣고 같이 끓이고 김치는 아이가 먹기 좋게 더 잘게 잘라놓습니다. 어느 누구라면 그냥 뭉텅이로 넣었겠지만,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을 한 조각이라도 더 넣어보기로 합니다. 두부도 한 입에 담을 수 있게 더 작게 잘라내어 도마 위에 준비해놓습니다. 물이 한참 끓으면 사 놓은 부대찌개용 양념을 담고 소세지를 담고 조금 더 끓으면 김치를 넣습니다. 이미 넣어둔 떡 조각들은 어느 정도 익었겠지요.

다음으로 면을 넣고 면이 좀 불겠다 싶기 전에 마지막으로 두부를 넣어 마무리를 합니다. 이렇게 만들면 그럭저럭 먹을 만한 모습이 나옵니다. 어차피 이미 수퍼에서 파는 재료를 이용해서 만드는 것이지만 그래도 소세지에 칼집을 내는 정도, 두부를 자르는 정도, 김치를 먹기 좋게 다듬는 정도의 아빠 손길이 손맛에 버무려 담긴다면 그나마 밖에서 사 먹는 찌개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냄비에 담긴 찌개가 끓기 전에 전기 밥솥에 밥을 딱 2인분에 맞춰서 앉혀 놓습니다. 쌀은 조금이라도 불려 놓구요. 어릴 적 어머니는 냄비에 밥 먹을 때마다 그때그때 밥을 지어 놓곤 하셨지요. 찬 밥을 남겨서 먹는 일이 아들에게는 없었습니다. 투박한 맛이지만 따뜻한 국에 따뜻한 밥! 갓 지은 밥은 김치 하나에만 담에 내어도 든든한 한 끼 밥이 되었지요. 아빠나 아들이나 입맛은 비슷한지 그때의 어릴 적 아빠는 어머니가 해 주는 반찬이 그리 맛나지는 않았습니다. 아직도 그 맛은 밖에서 사먹는 밥에 비하면 맛은 덜 하지만 거기에 담긴 정성이나 따뜻함은 비길 수 없겠지요. 투박하면서도 소탈하고 다른 양념이 들어가지 않은 오로지 정성으로만 지은 밥과 국이란... 아마도 우리 어머니 세대가 지나가면 일반 가정집에서는 보기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에게도 아마 그때 저처럼 밖에서 사먹는 밥이 더 맛있겠지요. 아빠가 급하게 한 밥은 그때 아빠의 어머니가 해 주던 따뜻한 밥에 담긴 정성에 비할 수는 없겠지요. 그나마 약간의 정성과 전기 밥솥에 한 밥일지언정 약간의 따뜻함을 담아주고자 하는 아빠의 마음을 아이가 알아줄 때가 있을까요

수퍼에서 파는 이미 만들어진 찌개용 양념 덕분인지 아이는 맛있다고 잘 먹습니다. 부대찌개와 밥이 있는 간단한 식단입니다. 그래도 잘 먹어주는 아이가 고맙습니다. 아마도 맛 없다고 했었다면 또 한번 화를 불러왔겠지요^^

[부대찌개와 전기밥솥에 한 하얀 쌀밥, 한 끼 식사로는 간단하지만 충분하게 보입니다, 나름 신경써서 했는데 라면에 두부 햄 넣은 느낌이네요^^;; 요거 만드는 데도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군요^^;;]

 

그렇게 또 아이와 한 끼를 먹습니다. 삼시세끼란 프로그램을 보지 않더라도 누군가를 위한 밥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 반찬이 아무리 가짓수가 적고 먹는 사람이 몇 없다 하더라도 손이 많이 갑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렇게 아빠가 만든 밥을 아이가 그리워할 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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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꽃향기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만드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사랑입니다.
    맛있게 먹어주면 준비한 사람은 사랑 한 수저 행복 한 수저 더 먹는 샘이죠.
    따뜻함이 느껴지는 밥상 입니다.전 오늘 저녁 김밥 재료를 준비 중입니다.

    2020.02.08 19:10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비글 알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예전 글에 댓글을 달아주셨네요~이렇게 블로그 구석구석 찾아주는 이웃님은 참 고맙고 예전 모자란 글을 보여드려서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집에서 김밥해주는 부모님이 있다니 자녀분이나 배우자 분은 참 행복하네요. 아마도 지금은 그걸 모르고 자라겠지요~ 댓글 고맙습니다. 종종 놀러오세요^^

      2020.02.08 19:26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