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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도서]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정현우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정현우의 시를 읽었다. 그의 시를 읽은 독자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 네이버를 검색했는데, 그 중, 특이하게도 '신춘문예풍'의 시가 많이 실렸다는 평이 보였다. 그것은 좋은 말로 최근에 소통되는 시의 첨단을 정갈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뜻이고, 나쁜 말로 유행을 따르는 작품이라는 평가이다. 시가 전반적으로 깔끔하다는 느낌을 준다. 조악한 표현이 있거나 지나치게 개인적인 상징으로 난해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쉽게 이해되거나 상투적이지도 않은, 절묘한 균형이 있다. 마치 남사당패의 어름산이가 요령 있게 줄을 타는 모습을 멀찍이 지켜보다가 가까이 다가가 그의 얼굴을 보니 너무 젊은이라 놀라게 되듯.

 

약간 멋부린 듯한 시구가 없지는 않다. "눈꺼풀을 닫으면 / 죽음이 필요해진다."(「용서」), "배교가 없는 새들은 / 발목이 없다"(「오르톨랑」)과 같은 시를 마무리하는 문장들을 읽으면서, 내가 시의 문맥을 다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리는 성급한 판단일지도 모르지만, 시의 주제 의식을 살리기 위해 기교를 발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이런 면모가 유행하는 시 스타일로 보이게 만든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시집 4부의 툰드라 연작은 김경주 시인의 시를 읽는 것 같았다. 단지 느낌일 뿐이다.

 

현재 시집을 4부까지 읽고 있는데, 시인의 배치를 추측해보건대 1부에 가장 큰 공을 들인 듯하다. 1부에 시인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들이 포진되어 있다. 시집의 제목으로 쓰인 천사 이미지가 가장 많이 등장하기도 하고, 시인의 개성적인 투시가 돋보이는 '남성의 여성-되기'가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상해서 나는 화장을 했다.

내가 태어난 것이

여자를 벗은 것 같아

누나의 검정 치마를 입었다.

 

거울 속에서 숨죽인 내가

립스틱을 쥔 채로

매달려 있었다.

 

아랫입술을 잃어버렸다.

쏟아지는 검은 가시들

누나의 마스카라는

나의 베갯잇에 물들고,

 

벽에 매달려 있는 동안

나는 어느 얼굴이 되는 걸까.

 

누군가 방문을 열까봐

우는 얼굴로 저녁을 닫았다.

 

나는 내 몸을 만지면서

눈을 감고 얼굴을 그린다.

 

어른이 될 때까지

나는 흩어지고 싶은 구름

가슴이 없는 까마귀떼

나의 몸에서 풀이 자란다.

금방 풀이 죽는다.

풀숲에서 벌거벗은

여자를 훔쳐보는 마음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것이 많아지는 밤에는

나는 여자가 되었다.

아무도 없는 방문을 잠그고 나와

반성문을 썼다.

 

방문을 삐져나온 뱀들은

악몽에 목이 베였다.

밤을 켜면 벼랑은 나를 떨어뜨렸다.

여자를 흉내 내고

깨진 유리를 삼키고

바람의 목을 쥔 채로 길어지는 밤

잘린 손가락들은 유리의 성을 쌓고

스타카토, 스타카토, 카스트라토

 

사람이 죽으면 여자일까 남자일까

그런 존재는 나의 가랑이 밖에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다가,

 

개들이 나의 얼굴을 더듬거리고

웃을 수 없다.

아름다운 얼굴이 지워질까봐

 

종아리의 회초리 자국이

벽에 그려진 낙서보다 숭고했다.

 

끝없이 바깥을 쌓아도

세워지지 않는 나의 성 안에서

얼굴 없는 여자가

또각또각 걸어나간다.

 

나와 멀어진 나를

사랑할까봐

가장 어두운 구두를 신고.

- 「여자가 되는 방」 전문

 

남성 동성애자가 여장을 한 것을 드랙퀸이라 한다. 나는 정현우의 시를 평한 어떤 글에서 드랙퀸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접하고 알았다. 그렇지만 정현우의 시에서 읽은 것은 퀴어적 감수성은 아니었다. 남성 화자가 여성이 되려고 하는 시도들은 성정체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고뇌, 고통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위에서 인용한 시에서도 여장을 하는 까닭은 지금 자신의 상태가 "이상해서",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것이 많아서"이다. 여성을 성애의 대상으로 갈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결핍 때문에 갈구하는 것이다. 화자는 남성/여성으로 분기하기 이전의 상태를 상기한다. "사람이 죽으면 여자일까 남자일까" 또는 남성/여성의 경계에 있는 자를 생각한다. "스타카토, 스타카토, 카스트라토" 생명은 개체발생적으로 기관의 분열을 통해 성장하게 되는데, 거꾸로 이 시에서는 분할 이전의 단계로 나아가려는 퇴행의 욕망을 보여준다. 존재론적 결핍감을 분열 이전의 완전성으로 해소하고 싶은 것이다. "나와 멀어진 나"는 내가 남성이 되면서, 분할되면서 잃어버린 반쪽이며, 그것에 대한 사랑이 나를 고뇌하게 하고 위협하며 뒤흔든다. 상실감을 보충하기 위한 마조히즘적인 고통("종아리의 회초리 자국이 / 벽에 그려진 낙서보다 숭고했다.")을 수락하려고 하지만 잃어버린 충일성은 '얼굴 없는 여자'로 나타날 뿐이다. 결국 남성의 여장은 실패한다. 그래서 "가장 어두운 구두"를 신게 되는 것이다.

 

경계에 대한 탐색은 시인의 주된 테마 중 하나이다. 신내림과 영매를 탐구하기도 하고, 툰드라의 야생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기도 하며, 남성/여성 구분 이전으로 퇴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한 경계의 탐구가 시인의 시적 기교와 맞물리면서 아름다운 시구를 탄생시킨다. '천사' 이미지는 지상/천계의 경계에 있는 이미지로서 시인의 상상 세계 속에서 흥미롭게 제시된다.

 

눈 내린 숲을 걸었다.

쓰러진 천사 위로 새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천사를 등에 업고

집으로 데려와 천사를 씻겼다.

날개에는 작은 귀가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귀를 훔쳤다.

귀를 달빛에 비췄고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다.

두 귀,

두개의 깃.

인간의 귀는 언제부터 천사의 말을 잊었을까.

- 「귀와 뿔」 부분

 

언제부터인가 천사는 신과 더불어 성스러움의 퇴화 흔적, 신성함의 상실에 대한 알리바이로 현대시에 등장하는 것 같다. 천사는 숲 속에 쓰러질 수 없지만, 시인의 시적 세계 속에서 천사는 연약한 존재일 뿐이다. 천사는 지상/천상의 경계에 존재한다. 아마 천사와 대응하는 현실의 오브제는 예술작품, 시일 것이다. 천사에게 말을 배우는 존재는, 그들의 말을 알아듣는 존재는 다름 아닌 시인이다. 그래서 천사도, 시인도 모두 경계에 있다. 진실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모든 존재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경계인이다. 그들은 자신의 의식을 고문하면서 스스로를 순수한 상태로 증류시킨다. 우리는 언제부터 천사의 말을 잊은 걸까. 아마 자기를 순수로 증류하려는 인간들이 우리 주변에 보이지 않게 된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시인에게 천사와 여성-되기는 더 근원적인 상태로 나아가는 통로로 보인다. 그리고 이들 이미지는 더럽고 추한 것까지도 미화하는 시인의 상상력과 만나는 것 같다. 이 역시 순간적인 직관일 뿐이라, 시집을 다시 정독하여 읽어봐야 직관의 근거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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