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햄릿/오델로/리어 왕/맥베드/로미오와 줄리엣

[도서] 햄릿/오델로/리어 왕/맥베드/로미오와 줄리엣

셰익스피어 저/신상웅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맥베드』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에 속한다. 그가 창작자로서 원숙한 경지에 이르렀을 때 쓰였다. 지금 읽어봐도 인간의 심리적 모순을 탁월하게 묘파하고 있어 낡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비현실적인 환상, 유령, 마녀 등의 그로테스크한 소재들, 야망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고뇌가 아주 구체적으로 독자에게 육박해 들어온다. 덕분에 1막부터 5막까지 극은 긴장을 잃지 않고 주인공의 예정된 파멸을 향해 나아간다. 셰익스피어를 영미의 문학사가와 문학비평가들이 입이 마르게 칭찬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비록 번역본으로 작품을 음미할 수밖에 없지만, 번역된 문장만으로도 인물들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마당에 이 글에서 새삼 작품성을 상찬하는 것은 사족만 덧붙이는 격이 되리라. 내가 이 글에서 그려보이려는 것은 유기적으로 잘 짜여진 이 비극이 갖는 균열과 분열의 지점들이다. 그 균열은 셰익스피어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작가 셰익스피어의 사회적 무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주체에 대한 전복적 인식

 

  스코틀랜드 귀족 맥베드는 반란군을 진압하고 돌아오는 길에 황량한 광야에서 뱅코우와 함께 마녀를 만난다. 마녀들은 맥베드가 코더 영주가 될 것이며, '장차 왕이 되실 분'이라며 그를 칭송한다. 벵코우에게는 맥베드만큼 위대하지는 않지만 '자손 대대로 왕을 낳으실 분'이라고 일러준다. 마녀들이 맥베드에게 알린 예언은 실제로 이루어진다. 던컨 왕이 그를 코더 영주로 임명한 것이다. 맥베드는 왕이 되려는 야망을 품는다. 던컨 왕이 멕베드의 공을 치하하기 위해 그의 집에 머무는 동안, 맥베드는 아내와 공모하여 왕을 시해하고 실제로 왕위에 등극한다. 플롯은 거의 마지막까지 마녀의 예언대로 진행된다. 자신이 암살한 뱅코우의 환영을 만찬회장에서 보며 두려움에 떠는 사건 이후에 맥베드는 다시 한 번 마녀를 찾아간다. 이번에는 마녀들이 만든 환영을 통해서 맥다프를 경계하라, 여자 몸에서 태어난 자로 멕베드에게 맞설 자는 없다, 버넘의 대삼림이 단시네인의 높은 언덕까지 멕베드를 쳐들어오지 않는 한 맥베드는 패하지 않으리라는 말을 듣는다. 맥베드는 자신이 쉽게 패배할 수 없는 조건이라고 여기지만, 결국에 맥다프의 손에 죽고 만다. 실제로 버넘의 대삼림은 맬컴의 군사들이 나뭇가지를 들고 이동하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며, 맥다프는 어머니의 배를 가르고 태어났음을 밝히면서 맥베드를 살해한다.

 

  마녀의 예언은 인간의 힘이 가닿지 않는 초월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오이디푸스 왕'의 신탁에 비견될 만하다. 그러나 고대 비극에 비하여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 초현실적인 힘은 세속화된 양상을 보인다. 마녀들의 예언력은 그들 자신의 힘이 아니라 헤카테의 힘을 빌은 것으로 드러난다.(408~409쪽) 게다가 마녀들은 성격이 변덕스럽고 자기중심적이며 짓궂은 아이 같은 미성숙을 보이고 있다.(370쪽) 마녀들이 맥베드에게 보이는 환영은 마녀들이 만든 마법의 솥에서 출현한다. 그 솥에는 추하고 혐오스러운 것들이 재료로 들어간다. 독 있는 내장, 독을 빚어대는 두꺼비, 뱀의 토막살, 도룡뇽의 눈알과 개구리 발바닥, 늑대 이빨, 독충의 침 등등. '신을 모독하는 유대놈의 간, 터키 사람의 코, 타타르 사람의 입술, 창부가 낳아서 목졸라 죽여 도랑에 버린 갓난애 손가락'과 같이 인간을 비하하는 이미지들도 나란히 등장한다.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은 마녀들의 힘과 예언이 상서롭지 않음을 드러낸다. 맥베드의 운명은 타락하고 불길한 징조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작품 속에서 인간들은 모두 거대한 운명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꼭두각시처럼 보인다. 마녀들의 예언 때문에 그들은 몰락한 것인가, 아니면 그들에게 내재한 본성을 마녀들이 깨운 것인가? 그 점을 명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이 작품의 매력이다. 맥베드가 맞이하는 파국은 악한 행동에 대한 징벌처럼 보이면서도, 인간 실존의 한계성을 드러내어 도덕적 판단을 벗어난다. 그는 자신이 악에 훈련되어 있지 않다는 언급을 자주한다. 극의 5막에 이르면 그는 외적으로는 '폭군'으로 규정되며, 소식을 전하는 전령들에게 막말을 퍼부을 뿐만 아니라 아내의 자결 소식에도 무덤덤해진다. 그것은 맥베드가 원하는 결말이었을까, 아니었을까? 맥베드는 자신의 의지로 행동했지만, 막상 그 의지를 지배하는 더욱 거대한 의지가 있는 것 같다.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 던컨 왕의 아들 맬컴이 이끄는 반란군과 대적하기 직전인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가 읊조리는 인간 삶에 대한 회한은 쇼펜하우어를 생각나게 한다. 인간은 자기 삶의 주인이라는 착각 속에 살면서, 자기도 모르게 거대한 의지에 종속되어 있는데도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여기는 어리석은 존재이다.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한계 조건을 그림자, 가련한 배우, 천치들의 이야기로 말하고 있다. 자신이 무대의 주인공인 줄 알지만, 거대한 세계의 흐름 속에서 덧없이 잠깐 등장했다 사라지는 촛불 같은 신세에 불과한 것이다. 맥베스는 악의 극한 지점에서 삶의 덧없음을 깨닫는다. 그는 악인일지언정 진실을 말한다.

 

내일, 내일, 또 내일은 매일 살금살금 인류 역사의 최후 순간까지 기어들고, 우리의 어제라는 날들은 모두 어리석은 자들이 무덤으로 가는 길을 비쳐 왔다. 꺼져라 꺼져, 짧은 촛불아! 인생이란 한낱 걷고 있는 그림자, 가련한 배우일 뿐이다. 제 시간엔 무대 위에서 활개치고 안달하지만, 얼마 안 가서 영영 잊혀져 버리지 않는가. 그것은 천치가 떠들어 대는 이야기 같다고나 할까. 아무런 의미도 없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지.(435~436쪽)

 

  어쩌면 맥베드가 읊조린 저 문장만큼은 마녀의 예언을 빗겨간 것 아닐까. 아니, 저 인식까지 마녀가 만든 것일까. 뱅코우의 후손이 왕위를 이어갈 것이라는 예언도 극중에서는 실현되지 않는다. 뱅코우가 암살되는 순간 그는 아들 플리언스에게 복수를 부탁하지만 도망친 플리언스는 이후 작품 속에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극의 흐름 상 왕위는 던컨 왕의 후손인 맬컴이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 마녀의 예언대로 미래가 실현된다는 설정은 작은 균열을 내포하고 있다.

 

비극 속의 희극

 

  이와 같은 불균형은 몇몇 희극적 장면들의 삽입으로도 나타난다. 권력과 양심 사이에서 고뇌하는 내면, 부정한 방법으로 원하는 것을 쟁취한 자의 비참한 말로를 그리는 이 비극 속에 희극적 면모가 숨어 있다. 첫째는 1막에 등장하는 반란군 진압 전쟁에 참여한 부대장과 스코틀랜드 왕 던컨 사이의 대화이다.

 

부대장: 하오나 해가 떠오르는 동녘에서 배를 난파시킬 폭풍과 무서운 뇌성이 일어나듯이, 기쁨이 솟을 듯 보이던 바로 그 샘에서 뜻하지 않은 비운이 솟아오르고 말았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폐하! 용기로 무장한 정의의 군이 뿔뿔이 흩어지는 적병들을 추격하고 있을 때, 때마침 기회를 염탐하고 있던 노르웨이 왕이 신식 무기와 새 병력을 투입하여 공격을 개시해 왔습니다.

던컨: 그것을 보고 맥베드와 뱅코우 두 장군은 당황하진 않았는가?

부대장: 네, 독수리가 참새에게, 사자가 토끼에게 쫓기는 격이었다고 할까요. 솔직히 아뢰면, 두 장군은 마치 두 배의 탄약을 잰 대포와도 같이 적에게 두 배의 공격을 가했습니다. 피바다에서 목욕을 할 참이었는지, 골고다 언덕을 또다시 이 세상에 재현할 참이었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아아, 이젠 정신이 아찔해지고 상처가 쑤셔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던컨: 너의 보고는 상처에 못지않게 훌륭하고 장하다. 어서 의사를 불러라.(368쪽)

 

  부대장의 전언은 은유로 홍수를 이루고 있는데, 격조는 있으나 과장된 표현이 웃음을 자아낸다. 긴장과 이완을 적절하게 뒤섞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몰입하게 한다. 다른 장면은 다음과 같다.

 

문지기: 원, 끈질기게도 두드려 대는군! 이게 지옥의 문지기라면 열쇠를 돌려 대느라 잠시도 틈이 없겠다. (문 두드리는 소리) 탕 탕 탕! 누구냐? 악마의 왕을 대신해서 묻겠다. 곡식을 매점해 놓았다가 풍년이 들 것 같아 목매달아 죽은 농부인가 보다. 때마침 잘 왔다, 수건이나 넉넉히 준비해 둬라. 진땀깨나 뺄 테니. (문 두드리는 소리) 탕 탕! 도대체 누구냐? 또 한 놈의 악마 이름으로 묻는다만, 옳지, 양쪽에 다 통하는 서약을 얼버무리는 사기꾼이 왔나 보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반역을 한 사기꾼 같으니, 그러나 천국에선 그 사기도 통하지 않으렷다. 자, 들어오시지, 사기꾼 양반. (388쪽)

 

  암살이 성공하고 왕이 죽었음을 확인하기 전까지의 긴장된 순간인데 오히려 문지기는 농담을 이어간다. 하필 그 농담은 파멸을 예고하듯 문지기 자신이 있는 곳을 지옥에 빗댄다. 사실 이것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비열한 암살이 일어난 맥베드의 집이 곧 지옥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런 희극적 장면들은 태양의 흑점같다. 비극의 운동에 브레이크를 걸고, 그 이후에 더 큰 에너지로 나아가기 위한 장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을 전체로서 두지 않고 독립된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비극의 힘에 압도되어 있지만 희극적 요소들은 비극적 서사 운동과는 다소 동떨어져 보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아이러니한 시선이 감지된다. 운명 속에 인간 주체의 어긋남이 있듯, 비극 속에 어쩔 수 없는 희극이 숨어들게 마련이다.

 

진실과 거짓의 뒤바뀜

 

  진실과 거짓의 구도는 정확하게 3막을 중심으로 하여 역전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2막까지 멕베드는 귀족들을 속여 왕의 충성스러운 신하, 용맹한 장군, 아버지를 시해하려는 극악한 왕자들을 대신해 왕위에 오를 적격자로 보이도록 연기한다. 2막 4장에서 맥다프와 로스는 던컨 왕의 두 왕자인 맬컴과 도날베인이 도망친 것을 근거로 그 둘이 던컨 왕을 시해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3막 1장이 시작하자마자 뱅코우의 입을 빌어서 맥베드의 거짓은 폭로된다. "너는 드디어 왕도 되었구나, 코더 영주도, 글래미스 영주도 되었지. 마녀들이 약속한 대로 되었구나. 그런데 어쩌면 더러운 수단으로 얻은 것 같긴 하다만, 그러나 이것은 네 후손에게까지 전해질 것이 아니고, 대대로 왕의 근원이며 조상이 될 사람은 나라고 마녀들이 예언하였겠다."(395쪽) 맥베드가 던컨 왕을 시해했음을 귀족들은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이다. 맥베드가 귀족들과 대립하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는 고분고분하게 순종하지 않는 맥다프의 가족들을 맥베드가 몰살시킨 것이었지만, 그 전에도 이미 대립은 성립되어 있다.

 

레녹스: (전략) 원, 맬컴과 도날베인 두 왕자가 인자하신 자기 부친을 살해했다고 하니 괴이하게 생각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소? 천벌을 받을 일이지! 맥베드가 얼마나 애통해 하였겠소! 그래서 의분에 못 이겨 당장 그 두 역적을 베어 버린 것이 아니겠소? 술의 노예가 되고 잠의 종이 된 그들을. 훌륭한 처사였었지요. 암, 현명한 처사이고말고요. 그자들이 자기네 소행이 아니라고 변명하는 것을 들으면 누군들 분개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니 말이오. 그러니 맥베드는 모든 일을 다 잘 해치운 셈이지요. 그리고 생각하니, 두 왕자가 체포되는 날에는 - 설마 그렇게 될 리는 없겠지만 - 부친 살해죄의 대가를 톡톡히 맛보게 될 거요. 플리언스도 그렇고. 그러나 가만 있자! 그저 솔직히 할 말을 하고, 폭군의 축연에 불참한 탓으로 맥다프는 지금 노여움을 사고 있다지 않소. 그런데 그분은 지금 어디에 은신 중인가요?(409~410쪽)

 

  레녹스는 맥베드와 함께 왕의 참살 현장을 목격하고 맥베드가 문지기들을 즉시 살해할 때 함께 있던 인물이다. 그는 귀족들 중에 맥베드와 가장 가깝다. 그의 대사 앞부분은 맥베드가 조작한 거짓을 진실로 믿고 속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이내 맥베드를 '폭군'이라고 지칭한다. 그가 맥베드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표지이다. 한 인물의 언어 속에서 이미 그가 믿고 있는 사실을 붕괴시키는 다른 진실이 암시되어 있다. 폭군이라는 명명이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는 애매하다. 이와 같은 이중성은 오히려 직접적으로 맥베드와 대립하는 맥다프보다도 문제적이다. 이는 허위와 가식으로 가면을 쓰는 지배 계층의 문화를 문제 삼는다. 맥베드가 암살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던컨 왕 앞에서 충성스러운 신하의 언어를 구사하는 가식이 통했기 때문이다. "소신의 충성은 신하된 자의 본분인즉, 의무로 이를 수행하는 기쁨이 곧 포상인가 합니다. 폐하께서는 오직 신들의 의무를 받아들이시기만 하면 되시옵니다. 신들은 국왕의 신하, 국가의 충복으로 모든 일에 폐하의 은총을 입고 잇사오니, 그 보답으로 저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따름입니다."(375쪽) 허위와 가식을 벌거벗기는 것은 유령이다. 3막의 만찬에서 맥베드의 의자에 앉은 뱅코우의 환영은 맥베드를 미친 사람처럼 공포에 떨게 한다. 의례와 예의범절로 지탱되는 만찬장의 분위기는 엉망이 된다. "당신 때문에 유쾌했던 흥은 깨지고 좋은 회합이 엉망이 되고 말았어요."(407쪽) 내면을 감추는 일이 불가능해지는 지점에서 그의 통치력은 붕괴하기 시작한다. 잔치에 맥다프가 오지 않았음은 이미 부스러져가는 그의 권력과 생을 암시하고 있다.

 

신흥 세력의 잉태를 예고하는 형식, 그리고 사회적 무의식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는 영국의 화려한 전성기를 열어젖힌 엘리자베스 여왕이 통치했다. 페스트가 창궐하여 전염병이 돌고 연극 활동이 위축되던 때도 있었지만 셰익스피어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런던의 도시 문화가 성장하면서 그에 따른 연극의 수요도 높아졌다. 셰익스피어는 이미 중세와 다른 공기를 호흡하면서 '대중'을 상대하는 반(半)근대적 작가였다.. 그의 비극에는 배신, 암투, 살해, 복수와 같은 자극적 소재들이 차용된다. 비극의 긴장감과 흥미를 높이는 요소이다. 오늘날의 대중문화인 드라마나 영화에서 클리셰가 되고 있는 모티프들이 다수 눈에 띈다. 잘 짜여진 한 편의 비극은 대중을 열광하게 한다.

 

  셰익스피어는 왕권의 지배력을 찬양하는 세력에 가까웠다. 실제로 지배층을 위하여 「비너스와 아도니스」와 같은 작품을 창작하고 헌사하기도 했다. 선하고 어진 왕의 통치는 세계를 안정되게 한다. 맥베드의 서사는 덕 있는 왕이 살해 당하고 부덕한 왕에 의해 흉흉해진 국가를 다시 '올바른' 상태로 회복하는 서사이다. 맥베드가 던컨 왕을 살해하는 날 불길함을 암시하는 올빼미가 출현한다. 맥베드가 왕이 된 이후에 스코틀랜드의 백성이 도탄에 빠지게 된다. 맥베드의 악행 때문이다. 이는 인류의 이야기에 각인되어 있는 권선징악의 모티프를 그대로 재현하는 듯하다. 추악한 맥베드와 달리 맬컴 왕자가 의탁하고 있는 영국의 왕은 연주창 환자에게 기도만 해도 병을 낫게하는 기적을 행한다. 영국의 왕은 '신의 축복'을 받고 있는 것이다. 맥베드는 평화로운 세계에 던져진 돌팔매이다. 호수는 동요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내 가라앉듯, 맥베드의 사욕은 권력의 정점에 섰을 때부터 몰락한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왕-신성함-선함의 중세적 삼위일체에 균열을 낸다. 그것은 악인인 맥베드가 서사의 중심 축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예견된 일이다. 맥베드는 자신의 운명을 수락하고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인물이다. 그 과정에서 수치심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왕을 시해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불안에 시달리게 되지만, 그는 도덕률과 지배 질서를 자신의 힘으로 넘어서려 한다. 게다가 그를 조종하는 것은 그를 충동질했던 '수염이 난' 마녀들이다. 비극의 진정한 주인공, 서사적 힘의 원천은 마녀들인지도 모른다. 추하고 비틀린 존재, 정상의 경계선 바깥의 존재들이 영웅을 좌지우지한다. 소외된 자의 장난으로 권력의 정점에 있는 자가 멸망한다. 비장한 스토리 가운데 출몰하는 희극적 요소와 귀족의 대사에서 나타나는 분열 양상 역시 이 비극이 단순히 왕권에 대한 긍정에 머물지 않음을 드러내고 있다. 「맥베드」에 내재한 분열과 균열의 형식은 왕권 아래에서 맹아가 싹트기 시작한 도시, 상업 문화와 구조적으로 동형이다. 선한 통치력에 기대지 않는 개인적 욕망의 출현, 추함과 그로테스크의 재발견은 기존 지배질서와는 다른 새로운 사회적 형식(계급)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는 그들의 후손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