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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철학자

[도서] 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 저/방대수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에릭 호퍼는 학위 없이 철학자의 명성을 얻은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그는 떠돌이 노동자도 철학자가 될 수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길 위의 철학자』는 그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뒤에 젊은 시절을 회고한 자서전이다. 연보를 보니 사망한 해(1983)에 출간되었다. 짧은 글을 선호한 그답게 자서전도 각 장이 짧은 분량으로 할애되어 있다. 자기 연민이나 회한이 없이 담백하게 생을 서술하고 있어 매력적이다. 담백한 문장, 정확한 묘사, 군더더기 없는 서술에서 배울 점이 많다. "나는 삶을 여행객처럼 살아왔다."(21쪽) 이 문장은 그의 삶을 압축적으로 증명한다. 그는 진정 여행객처럼, 장년까지 정착하지 않고 떠돌면서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그가 28세에 자살을 시도하다가 실패하면서 노동자가 죽고 방랑자가 태어나는 순간에 대한 묘사는 이 책의 표현대로 '환상적'이다. 특히 '포장도로 위로 퍼지는 내 발자국 소리가 박수 소리 같았다.'는 문장은 독자의 의식에 강렬히 침입한다. 길지만 아래에 인용해 둔다.

 

  나는 계속 침을 뱉고 기침을 하면서 허겁지겁 흙탕길로 올라왔다. 길을 달리자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왔다. 포장도로 위로 퍼지는 내 발자국 소리가 박수 소리 같았다. 나는 흥분에 휩싸여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붐비는 사람들 사이로 끼어들 때까지 계속 뛰었다. 가로등과 점멸하는 신호등, 벨 소리, 전차, 자동차 등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 나의 살과 뼈의 일부인 것 같았다. 나는 탐욕스러운 식욕을 느끼며 카페테리아로 걸음을 옮겼다.

  음식을 삼키면서 나는 생이 길이라는 비전 - 어디로 가는지, 그 위로 무엇이 가는지 모르는 채 굽이굽이 끝없이 이어지는 길 - 이 다시 머리에 떠올랐다. 도시 노동자의 죽지 못해 사는 일상에 대해 내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대안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도시에서 도시로 이어지는 길로 나서야만 한다. 도시마다 낯설고 새로울 것이다. 도시마다 자기 도시가 최고라며 나에게 기회를 잡으라고 할 것이다. 나는 그 기회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을 것이며,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자살을 감행하지 않았지만, 그 일요일에 노동자는 죽고 방랑자가 태어났다.(60쪽)

 

  그는 일곱 살에 시력을 잃고 열다섯에 다시 회복한다. 보모였던 마르타는 호퍼 집안은 마흔을 넘기지 못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 말은 호퍼를 사로잡는다. 그는 죽음을 항시 의식했으리라. 그가 얽매임 없이 살 수 있었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의 문장에는 원망도 후회도 없다. 그에게 삶은 덤이었다.

 

  그는 집필에만 전념하는 말년을 제외하고는 계속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갔다. 카페테리아의 보조직, 오렌지 행상, 사금채취공, 목화, 토마토, 완두콩, 자두, 홉 농장 노동자, 공사현장 인부, 부두 노동자까지 육체 노동으로는 안 해 본 일이 없을 지경이다. 그는 애초에 안정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안정된 삶으로 이끌 것 같은 기미만 보이면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났다. 첫사랑 헬렌이 그런 경우다.

 

  그녀들은 나를 원더맨으로 만드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라고 작심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건 순전히 미친 짓이었다. 나는 헬렌을 깊이 사랑했다. 그러나 그녀들의 기대를 정당화하는 데 얼마 남지 않은 내 인생을 소비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학 분야의 사람들은 곧 나를 협잡꾼으로 여길 것이다. 내 재능이 뛰어나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그녀들과 함께 살면 나는 한순간의 평화도 갖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즉각 행동으로 옮겨야 했다. 나는 길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수확철이 다가오자 나는 그녀들에게는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버클리를 떠났다.(130쪽)

 

  생존을 이어갈 만큼의 충분한 돈이 모이면 독서에 시간을 썼다. 그는 수학, 물리학, 생물학, 지리학 등 다방면의 학문을 대학 교재로 독학했다. 달리 말하자면, 그는 '공부하는 노동자'였다. 그의 공부는 전혀 유용하지 않았다. 공부 성과를 교환가치로 환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구약성서도 공부하듯 읽었다. 거기에서 종교적 희열보다는 앎의 환희를 느낀다. 그에게 구약성서는 신의 말씀이라기보다 문학이었고, 진솔하고 순수한 인간 묘사의 보고였다. 종교적 목적보다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읽었다. 사회적 상징자본이 없는 그가 텔레비전으로 유명해진 것은 오히려 무용함의 극단을 갔기 때문이다. 무능의 급진성이 그의 철학과 사상과 삶을 빛나게 한 셈이었다.

 

  여행객으로서 무엇보다도 그가 들여다보고 싶어 했던 것은, 그가 머물다가 떠나려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그의 책에는 항상 타인이 등장한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들으면서 감동하는 아버지, 다섯 살까지도 애지중지 자신을 안고 다녔던 어머니, 서툰 영어 발음이어도 미국에 적응시켜야 한다며 에릭에게 꾸준히 들려준 보모 마르타는 물론이고, 그의 잠재된 실력을 알아봐 준 첫사랑 헬렌, 그의 몽테뉴 강의를 듣기 위해 극진히 요리를 대접했다가도 무솔리니를 비난했다는 이유로 관계가 끊어진 노동자 마리오, 독일의 인플레이션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농장을 경영하기로 결정한 쿤제, 양 한 마리를 목숨같이 사랑한 기이한 알콜중독자 애브너 워드, 토마토 수확의 달인이자 자신의 수확량을 모두 기억한 조지 앤슬리 등등. 에릭 호퍼의 자서전은 온통 그가 만난 인간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경탄하게 된다. 그는 다가오는 인연에 최선을 다하고, 헤어질 때 깨끗하게 떠났다. 하지만 자신과 공명한 사람을 잊지 않는다. 자서전은 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만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여야 한다. 그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했느냐가 거꾸로 자신을 설명한다. 에릭 호퍼의 책이 꼭 그렇게 되어 있다.

 

  호퍼는 무수한 책을 읽었지만 현학적으로 아는 체를 하는 문장이 없다. 오히려 돋보이는 것은 그의 생활 감각이다. 그는 사물과 대상을 올바르게 보고 판단할 줄 안다. 한 마디로 총명하다. 직업소개소에서 인부로 뽑히는 방법을 설명하는 대목이 재미있다. 그 자리는 즉흥적으로 사람을 뽑기 때문에 선발하는 사람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없다. 호퍼는 그를 자세히 관찰하여 대략 5~6번째 사람에게 눈길이 잠시 멈추는 것을 알아챘고, 붉은 표지로 감싼 책과 같이 눈에 띄는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유리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세상 걱정 없는 표정으로 손을 들면 뽑히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사례로, 에드워드 몰과의 인연이 있다. 호퍼가 카페테리아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새벽 시간에 말쑥하게 차려 입은 에드워드 몰이 들어왔다. 호퍼는 옷차림새만으로 그가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알아챈다. 그가 바짓가랑이를 들어올렸을 때 한쪽 양말에 구멍이 난 것을 관찰하고는 바늘과 실을 가져가 구멍을 꿰매준다. 에드워드 몰은 다음 날 감사의 표시로 '에릭 호퍼에게, 그의 친절에 감사하며, E. M. 으로부터'라는 문구가 박힌 금색 시계를 선물로 준다. 호퍼의 눈썰미는 달인의 경지였다. 총명한 사람은 자신을 이롭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더 현명하게 도울 수 있다.

 

  그는 경험으로부터 아주 명료한 격언을 빚어낸다. 그래서 삶을 이론화한 문장은 단단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같다. 문장은 탁상공론의 허망한 개념어나 전문어를 배격한다. 오로지 삶과 체험에서 길어올린 생생한 이미지와 은유로 다듬어진다. 조지 오웰이 의미가 통하지 않는 관념어를 남발하는 전문가들보다 성경의 시편이 더 좋은 문장을 구사한다고 일갈했던 바와 통한다.

 

인간이 행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그의 얼굴에 각인된다. 인간의 얼굴은 자신의 모든 비밀을 드러내는 한 권의 열린 책이다. (37쪽)

 

자기기만이 없다면 희망은 존재할 수 없지만, 용기는 이성적이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 희망은 소멸할 수 있지만 용기는 호흡이 길다. 희망이 분출할 때는 어려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만, 그것을 마무리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전쟁을 이기고, 대륙을 제압하고, 나라를 세우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희망 없는 상황에서 용기가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줄 때 인간은 최고조에 달할 수 있다.(65쪽)

 

친숙성은 생의 날카로운 날을 무디게 한다. 아마 예술가의 본모습은 이 세상에서의 영원한 이방인이거나 다른 별에서 온 방문객일 것이다.(174쪽)

 

  나는 그처럼 떠돌이로 살 수 없다. 그는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등장하는 조르바처럼 무애하다. 나는 그 소설의 서술자인 '주인'처럼 관념적이다. 나는 세상살이를 염려하고, 주관대로 타인을 함부로 재단하며, 새롭게 시작하는 용기보다는 막연한 미래의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그래서 에릭 호퍼의 글은 내가 살아 볼 수 없는 삶이다. 그러나 불가능하다고 치워버릴 수는 없다. 그와 똑같은 삶을 살 수도 없고,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다만 내가 만나는 사람을 미세하게 인식하고 기억하기를, 그래서 자서전을 쓴다면 그처럼 내가 만난 사람들을 저렇게 매력적으로 묘사할 줄 아는 인간이 되기를, 보석만큼 찬란하지는 않더라도 단단한 문장을 남기기를 바란다. 무척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닌 과업 같다. 절차탁마하여 호퍼처럼 노년에 "나는 적어도 몇 개의 좋은 문장을 썼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203쪽)라고 조용히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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