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ES24 블로그 - 내 삶의 쉼표

포스트 달팽이를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 (4)

4. 달팽이의 속도가 새의 날개를 제압하는 날을 꿈꾸며 이렇게 마음을 고쳐 먹은 주인 덕분에 우리집 뒤란에 사는 달팽이들은 적어도 굶어 죽을 염려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생명을 다투는 위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위험은 공중에서 왔다. 밤새 내리던 비가 활짝 갠 어느 날 아침, 식탁에서 책을 읽다가 작은 물체가 땅에 부딪치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창문을 통해 뒤란을 살펴보았더니, 노란 부리에 뭔가를 물고 있는 검은지빠귀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뭘 물고 있는 거지? 지렁이는 아닌 것 같은데…...

2012.09.01 공감 횟수 2 댓글 수 4

포스트 달팽이를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 (3)

3. 달팽이들아, 우리 먹을 것은 좀 남겨두렴 하지만 딸아이의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옮긴 두 번째 집에서의 이야기는 사뭇 다르다. 뒤란에 마련한 텃밭은 달팽이들의 잔치 마당이 되었던 것이다. 이사를 마친 후 며칠 동안 짐을 풀어 정리하고 집안을 청소하고 바깥의 잔디밭까지 대충 손을 보고 난 우리는 비로소 한숨을 돌리고 뒤란의 화단으로 눈을 돌렸다. 뒷집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나무 울타리 아래 일자로 좁고 길게 조성되어 있는 화단은 협소했지만, 동백나무가 자라고 이름 모를 수풀이 우거져 있는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텃...

2012.08.31 공감 횟수 0 댓글 수 0

포스트 달팽이를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 (2)

2. 지렁이보다 달팽이가 더 징그러워 봄이 시작되면서 나는 추위를 벗었다. 그러나 그건 봄이라는 계절 탓이 아니라 이민 온 지 5개월 만에 셋집살이를 털고 드디어 우리집을 장만했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었다. 사소한 일상사를 처리하는 데도 마치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이 조심스러웠던 낯선 땅에서의 불안한 삶은 우리집을 갖게 되면서 조금씩 여유를 지니게 되었다. 그 여유에 운치를 조금 더하기 위하여 아내와 나는 텃밭을 가꾸기로 했다. 마침, 땅에 말뚝을 박고 그 사이를 널빤지로 막아서 흙으로 채워놓은 ...

2012.08.30 공감 횟수 0 댓글 수 2

포스트 달팽이를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 (1)

1. 느림보 달팽이야, 반갑구나 “얘, 정~말 느리다. 진짜, 진~짜 느리다, 그치 아빠?” 쪼그려 앉아서 한참이나 달팽이를 쳐다보고 있던 열 살짜리 딸아이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모텔 앞 작은 화단을 지탱하고 있는 시멘트 벽을 기어가고 있는 달팽이는 전혀 모욕당한 기색이 아니었다. 길쭉한 더듬이로 이리저리 허공을 더듬고 나서야 겨우 손톱 끝만큼씩 앞으로 나아가는 조심스럽고 지루한 행진을 여전히 계속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 난 느림보다, 그래서 어쩔래?”...

2012.08.29 공감 횟수 1 댓글 수 2

포스트 나는 천천히 가기로 했다

9년 전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나는 내게 친구들은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물었다. 그래, 거기 가면 뭘 하면서 먹고 살려고? 뭐 생각해 둔 일거리라도 있어? 나는 웃으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답했다. 일은 무슨? 가서 산책하고 책이나 읽고 그저 글이나 쓰면서 살지, 뭐. 인생 뭐 별 거 있겠어? 그러면서도 난 내심으로는 딱 3년만 그렇게 보내고 그러고도 뭔가 성취가 없으면 청소부든 잔디깎이든 무슨 일이라도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속다짐으로 끝나고 말았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에서 1년이 모자라는 긴...

2010.12.15 공감 횟수 5 댓글 수 4

포스트 생애 처음으로 인세를 받게 되다

내 이름을 표지에 박고 있는 온전히 내가 지은 책은 아직까지 한 권도 펴내지 못했지만 내 글이 다른 이들의 글들과 함께 수록되어 있는 책은 그 동안 여러 권 있었다. 그 대부분은 내가 응모했던 그리 대단치 않은 문예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들을 함께 묶어서 펴내는 기념 책자들이어서, 비록 판매용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하더라도 별도로 인세가 지급되는 경우란 없었다. 사전에 지급되는 상금(또는 원고료)이 전부였다. 이런 경우, 내가 받은 제법 두둑한 상금은 뻔한 판매실적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인세보다는 훨씬 나은 것이라고 ...

2010.08.26 공감 횟수 12 댓글 수 15

포스트 내 기억 속의 삽화 (8) : 결혼식의 가짜 하객

김연수의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 보면, 1991년 잇달아 분신한 이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대학생 화자가 며칠 동안 거리를 헤매고 다니다가 종합병원 영안실에서 문상객 노릇을 하면서 며칠 동안 얻어 먹고 잠자리도 해결하는 장면이 나온다. 소설 속 이야기이지만 현실에서도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런 가짜 문상객 생활에 부조금은 필요 없다. 단지 말쑥한 검은 정장 한 벌과 최소한의 연기력만 있으면 충분하다. 부조금을 내지 않았더라도 정장을 갖춰 입고서 망자의 사진 앞에서 절을 하고 난 후, 상...

2010.06.03 공감 횟수 1 댓글 수 4

포스트 까치집을 위하여

1. 산(山) : 돌아보면 깊은 山, 싸락눈이 그쳐 있다 脈 그 해엔 첫눈이 많이 내렸지 미치지 않을 수가 없었어 山 속에 살면서 글쎄, 그들은 인간의 피를 받았다니까 (20쪽) 그래, 기억난다. 첫눈이 많이 내렸던 1985년 겨울. 우린 스물두 살 동갑내기 대학교 3학년생이었고, 그 해 봄에 시작된 만남이 한창 사랑으로 피어나고 있던 연인이었다. 우리가 만나기 전 내게는 장 그르니에의 『섬』이 있었고 그녀에겐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이별없는 세대』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나 ...

2010.06.01 공감 횟수 3 댓글 수 15

포스트 문화웹진 [나비]에 빠지다

1. 따져보면 내가 예스24와 맺은 인연은 거의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다. 이곳 뉴질랜드로 이민 오기 전부터 이미 예스24를 통해서 책을 사 보았으니까. 아마도 내가 낸 첫 주문은 2000년 봄쯤이 아닐까 여겨지는데, 다리품을 파는 수고를 하지 않고서도 보고 싶은 책을 배달 받아 보는 것이 꽤 편리해서 이후로 종종 이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 늦가을쯤, 이민 가는 것이 최종적으로 결정되면서 뉴질랜드에 가면 책이나 실컷 읽을 요량으로 제법 많은 책들을 한꺼번에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

2009.12.22 공감 횟수 3 댓글 수 24

포스트 고국방문기 ② : 어머니의 텃밭

봄이 한창인데, 지금 우리 집 안뜰 화단은 잡풀들이 무성하다. 손바닥만한 땅이지만 그래도 서너 해 동안 매년 거기에 상추, 고추, 들깨 모종을 심어서 길러 먹었었다. 어느 해인가는 그 땅에서 작고 못 생긴, 그러나 너무나도 향기롭고 맛있는 당근도 수확했었다. 저절로 굴러 들어온 호박씨가 싹을 틔워 노란 꽃을 피우고 둥그런 호박으로 자라날 때는 내 마음도 둥글 둥글 익어갔었다. 그렇게 몇 해 동안 작은 텃밭이 되어 주었던 화단이었는데, 이사를 핑계 삼아 이태나 비워두었더니 지금은 잡풀들의 천국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

2009.11.12 공감 횟수 1 댓글 수 10

포스트 쉼표가 아니라 느낌표였습니다

쉼표가 아니라 느낌표였습니다 - 뒤늦게 적어보는 제3회 블로그 축제 출간 기념 파티 후기 집에 돌아온 지 이제 딱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아내와 딸이 지키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제가 집에 없었던 빈 자리가 제법 많이 드러나서 청소, 쇼핑, 정원 손질 등 자질구레한 일상사에 시간을 많이 빼앗긴 한 주였습니다. 그 사이에 차를 처분하는 일도 있었으니까, 이번 블로그 축제 출간 기념 파티 후기를 이렇게 뒤늦게야 올리는 것이 용서되리라 믿어요. 그날 파티 현장에서 있었던 일들과 느낌들을 세부적으로 묘사하기에...

2009.10.20 공감 횟수 1 댓글 수 8

포스트 [파리, 텍사스]에서 사막의 환(幻)을 보다

1. 우선 심심풀이 퀴즈 하나로 이 글을 시작해 보자. 프랑스의 수도 파리의 이름을 그대로 딴 도시가 미국에는 몇 개나 있을까? 질문의 성격으로 봐서 하나는 아닌 것이 분명해 보이니, 둘? No. 그럼, 셋? No. 그렇다면, 다섯인가? 그것도 No. 뭐야, 도대체 몇 개나 되는 거야, 일곱? 여덟? 아니면 아홉? 하하하, 전부, 아니올시다. 정답은 열 개. 아니, 그렇게나 많단 말이야! (미국내에 열 개의 파리들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한 사람은 구글에서 검색해 보시라!) 그런데 미국에 있는 이 열 개의 파...

2009.06.08 공감 횟수 5 댓글 수 8

포스트 내 안의 [섬]을 찾아서

1. 열일곱 살, <섬>을 만나다 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다시 찾아내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다른 수많은 순간들의 퇴적 속에 깊이 묻혀 있다. 다른 순간들은 그 위로 헤아릴 수 없이 지나갔지만 섬뜩할 만큼 자취도 없다. 결정적 순간이 반드시 섬광처럼 지나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유년기나 청년기 전체에 걸쳐 계속되면서 겉보기에는 더할 수 없이 평범할 뿐인 여러 해의 세월을 유별난 광채로 ...

2009.06.04 공감 횟수 12 댓글 수 53

포스트 노래를 불러본다

1.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바람소리 울부짖는 어두운 바다에 깜박이며 지새우는 기나긴 밤하늘 생각하라 저 바다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이맘때쯤이면 <겨울나무>와 함께 나도 모르게 입에 자꾸 올리게 되는 노래, <등대지기>의 노랫말이다. 혹시 2절 노랫말이 있나 싶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더니 역시나 2절이 있다. 이...

2007.12.18 공감 횟수 0 댓글 수 9

예스24 블로그

Katikati Light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