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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 앉아 책과 구름을 번갈아 읽는다. 눈이 그렇게 피곤한 것도 아니고 책이 그렇게 재미없는 것도 아닌데, 내 눈길은 몇 분 간격으로 자꾸 책에서 구름으로 건너간다. 맛난 간식을 쥐고 흔들어대는 주인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골똘히 쳐다보는 배고픈 개의 모습이 이와 다르랴. 차이가 있다면 구름은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으며 내 입으로 먹어 치울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 하지만 나는 매번 구름의 유혹에 너무나 쉽게 굴복해 책에서 눈길을 떼어 창 밖 하늘을 쳐다본다. 그러길 몇 번, 결국은 몇 쪽 넘기지도 못한 책을 덮어 책상 위에 내던져 버리고 만다.


그렇게 깨끗이 항복하고 나니 찾아온 건 행복이다. 빽빽한 책의 행간에서 한꺼번에 날아오른 글자들이 우르르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가 갖가지 새들이 되어 다시 날아오는 게 보인다. 착시일 수도 있겠고 어쩌면 환영(幻影)일 수도 있는 이 현상은 구름의 선물이다. 노트에 옮겨 적기에는 너무나 잠깐인 이 무용(無用)한 선물이 행복의 전조(前兆)라는 걸 시인들은 안다. 풀어야 할 리본 매듭도 없고 그 안에 아무런 내용도 없는 이 무형(無形)의 선물을 받아들고 몽상의 문을 활짝 열어제칠 때, 행복은 비로소 내용 없는 형식으로 존재하기 시작한다.


수많은 몽상의 산책길에 구름은 이렇게 내 동행이 되어주었으나 한 번도 똑같은 모습인 적은 없었다. 어느 날은 솜사탕 같이 부풀어 오르는 뭉게구름이었으며 또 어느 날은 산 너머 초원으로 느리게 이동하는 양떼구름이었다. 한없이 가벼운 새털구름으로 나타난 날은 간밤 꿈자리가 사나워 마음이 무거웠던 내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워졌던가. 먹구름과 함께 한 날조차도 산책 끝자락에 후드득 듣기 시작하는 빗방울 소리에 맞춰, Singing in the rain, 노래를 흥얼거리며 나는 행복해 했다.


그런 행복한 몽상의 산책길에서 구름으로부터 들은 온갖 이야기들과 노래들을 노트에 옮겨 적는 날에는 그렇게 덧없는 것들로 한 생을 이루는 게 쓸데없는 일이 아니라 사실은 위대한 일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요절한 시인들이 자살을 결행한 것도 이렇게 삶의 덧없음과 위대함이 겹쳐 보이는 그런 날이었을까? 아니면 저 구름의 삶과는 달리 인간의 삶에는 그런 순간이란 결코 지속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탓일까? , 몽상이 너무 깊어지면 위험하니 이쯤에서 그만 멈추고, 언젠가 구름이 내게 들려준 개자 돌림 자손들 이야기로 구름과 동행하는 몽상의 산책길에 샛길을 내보도록 하자. 보라, 저기 그 샛길로 개 세 마리가 달려오는 게 보인다.



1. 번개


번개는 구름의 아들이다. 성급하고 직선적이며 화끈한 성격, 한마디로 다혈질이라 할 수 있겠다. 짖는 소리가 하도 크고 우렁차서 유약한 아이들은 번개 짖는 소리(흔히 천둥이라고 한다)를 들으면 울음을 터뜨리기 일쑤이고 웬만한 강심장 어른들도 번개가 난폭하게 짖어댈 땐 움찔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기가 짖는 소리보다도 더 빨리 움직일 정도로 몸놀림이 재빨라서 그 모습을 제대로 본 사람은 드물다. 번개가 짖는 소리를 듣고 우리는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지만 그때는 너무 늦어서 번개는 이미 그곳에 없다. 우리 눈에 보이는 번쩍거리는 강렬한 빛줄기나 지그재그 선들은 다만 번개의 그림자이거나 흔적일 뿐이다.


번개는, 두뇌형 인간, 즉 과학자들이 더 선호하는 대상이다. 고대에는 신의 분노 또는 신의 권능을 나타내는 초자연적 현상으로 여겨졌지만 근대에 이르러 전기 에너지가 방출되는 기상 현상임이 밝혀지면서 번개는 본격적인 과학의 연구대상이 된 것이다. 자신의 아들 번개가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신화적 아우라가 이렇게 사라지게 된 게 못내 아쉽다고 구름은 내게 말하곤 했다. 그러나 아주 오래 전 인류의 태동기에, 번개가 인간에게 전해준 그 귀한 선물은 영원히 잊지 말고 기억해야만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인간이 문명을 건설하는 데 기초가 된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서 인간에게 주었다고 전해오는데, 그 프로메테우스가 사실은 자신의 아들 번개가 변신한 모습이라는 게 구름이 내게 귓속말로 전해준 비밀이었다.


지금도 비바람 몰아치는 날이면, 번개는 춥고 헐벗고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하늘의 불을 땅으로 옮겨놓는 작업을 한다고 하는데, 정작 필요한 곳에서는 과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피뢰침들 때문에 전달이 안되고, 애꿎은 숲과 들판에만 벼락이 떨어져 원치 않는 산불이나 내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고 말아서 무척 상심이 크다고 한다. 이러니 자신의 아들 번개가 날이 갈수록 성격이 삐뚤어지고 포악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냐며 구름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내게 하소연하곤 했다. 불운한 번개에게 벼락같은 축복이 내리기를.



2. 안개


구름의 딸인 안개는 오빠와는 성격이나 기질이 거의 정반대이다. 은근하고 내성적이며 부드럽고 촉촉하다. 부모를 닮은 구석이라곤 조금도 없는 오빠 번개와는 달리 안개는 제 부모를 쏙 빼닮아서 어려서부터 구름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고 한다. 편애가 눈에 보일 정도였기에 오빠 번개는 늘 질투가 심했고, 그것이 번개로 하여금 사나운 성격을 형성하게 했을 거라며, 어느 흐린 날 저녁, 구름은 내게 회한에 가득 찬 목소리로 고백했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일방적인 편애가 딸에게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을 하게끔 하는 원인이 되었다. 아들 번개의 뼈아픈 경험을 통해서 인간에 대한 나름대로의 통찰을 갖고 있었던 구름은 지상의 인간세계에는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말고 그들의 세상사에도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딸에게 자주 말하곤 했다. 하지만 이런 부모의 금지령은 호기심 많은 딸에게는 오히려 유혹의 말이 되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안개는 인간 세계 가까이 내려가 땅을 뒤덮었다. 미세한 물방울들로 지은 자욱하면서도 성긴 옷자락을 펼쳐 인간 세상의 온갖 사물들을 휘감고 있으면 마치 자신이 이 세상의 주인인 듯 여겨져서, 안개는 희열에 가득 차서 온갖 세상 사물들을 숨겼다가 풀어주고 다시 숨기는 숨바꼭질 놀이를 되풀이하곤 했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구름이 막 떠오른 태양에게 도움을 요청해 안개의 물방울 옷을 증발시킬 때까지 말이다. 하지만 낮이나 저녁에 안개가 내리면 그것도 불가능한 일이어서, 그저 안개가 싫증이 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안에 인간들이 겪어야 하는 교통체증과 연속추돌사고, 비행기 결항, 호흡기 질병 악화 따위 온갖 재난과 불편과 불행은 안개에게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런 해악에도 불구하고 안개는 예술가들에게는 여전히 매혹의 대상이다. 많은 시인, 소설가들이 안개로부터 영감을 받아 뛰어난 작품들을 썼고 또한 대중음악과 영화 속에서도 안개는 자주 등장하고 있다. 번개와는 달리 안개는 이미 오래 전에 그 신비가 과학적으로 규명된 평범한 존재가 되고 말았지만, 분명하고 간결한 과학적 지식 너머에 안개가 품고 있는 몽환적인 여성적 아우라는 예술가들의 눈에 여전히 신비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여자가 남자의 미래이듯이 예술은 언제나 과학 이상이며 과학 너머이다.



3. 무지개


성서에 의하면, 무지개는 대홍수 이후에 살아남은 노아가 봉헌한 번제(燔祭)에 만족한 하느님이 다시는 세계를 물로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의 증표로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구름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이와는 좀 다르다. 대홍수가 계속되는 동안, 구름은 온 하늘을 독차지할 수 있었으므로 나날이 신바람 나는 축제날이었던 반면, 태양은 집에만 콕 박혀있어야 했으므로 너무나 심심해서 죽을 맛이었다고 한다. 이 사태의 주모자는 물론 하느님이었지만 감히 대들 수는 없었기에 태양은 날이면 날마다 구름에게 불평을 늘어놓거나 으름장을 놓았는데, 대홍수의 마지막 며칠 동안은 하늘 한 구석을 밀고 들어와 구름과 심한 몸싸움까지 벌였다고 한다.


이렇게 험악한 상황에 이르게 되자 하느님은 마침내 대홍수를 끝내기로 결심하고 구름에게 이를 알렸다. 애초에 계약한 10년의 대홍수 기간에서 딱 1년이 지난 날, 계약 종료를 통고 받은 구름은, 갑질도 이런 갑질은 없을 거라며 분개했지만 애써 울분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누구냐, 바로 이 우주 만물의 창조자이며 주재자인 하느님이 아니더냐. 이후 구름의 분풀이는 자연스럽게 태양에게 돌려졌고, 태양은 마차를 타고 하늘길을 운전해서 갈 때마다 나타나서 진로를 방해하는 구름 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 되었다. 이번에도 하느님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보다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평화를 위하여 구름의 많은 딸들 중 하나인 소나기와 그때까지 미혼으로 있던 태양 간의 혼인을 주선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진 그 결혼에서 태어난 아기가 바로 무지개라는 것이다.


그러니 무지개는 구름에게는 외손주가 되는 셈. 소나기와 태양이 결혼하고 나서도 가시지 않고 남아 있던 두 가문 사이의 앙금은 무지개가 태어난 이후로는 말끔히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항상 잔뜩 화가 나 있는 할아버지 먹구름도, 온갖 일에 참견하느라 하루 종일 바쁜 할머니 뭉게구름도, 몇 분마다 마음이 변하는 변덕쟁이 잔소리꾼 엄마 소나기도, 그러거나 말거나 그저 싱겁게 웃고만 있는 아빠 태양도, 무지개가 일곱 색깔로 눈을 반짝거리며 응석을 부리는 데는 당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어쩌다 무지개를 보게 되는 날이면, 들끓던 분노가 가라앉고, 일상적 삶의 걱정거리들이 잊혀지고, 불안하고 부산스러운 말들이 침묵하며, 습관적이고 이기적인 무관심이 사라지게 된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평화와 행복, 희망과 사랑이다.


날씨에 상관없이 날마다 만날 수 있는 구름과는 달리, 개자 돌림 이 구름의 자손들은 어쩌다 가끔 만날 수 있을 뿐이다. 드문 만큼 이들을 만나게 되는 날은 내겐 행운의 날이다. 궂은 날씨에 꼼짝없이 집안에 갇혀 번개를 만나는 날은 내 머리 속에도 자주 영감의 번개가 쳤다. 안개가 잔뜩 낀 날 아침, 창 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까맣게 잊고 있던 추억들이 홀연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비 그친 후 나선 늦은 오후의 산책길에서 만난 무지개는 단조롭기만 한 내 무채색 삶의 그림자에 얼마나 많은 빛깔과 광휘를 던져주었던가. 아쉽게도 이들과의 해후는 언제나 몇 분, 길어야 한 시간 정도의 짧은 만남에 그칠 뿐이다. 하지만 그런 날에는 진정으로 위대한 것들은 모두 덧없는 것들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서, 다음 생에는 나도 구름의 자손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소망을 열렬히 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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