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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와 어금니

   - 추사의 텃밭 5

 

 

아직 너무 이르다고

말리는 아내의 말을 듣지 않고

올해도 텃밭 한 구석에

고추 모종 네 포기를 심었다가

거센 바람 불고

찬 우박 쏟고 가는 꽃샘추위에

모두 죽이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렇게 어이없이 죽이고 만

채소 모종들 제법 많았는데

나는 왜 아직도 이다지도 성급한가

겨울비 그치고 햇빛 따스하면

이젠 정말 봄이라고 순진하게 믿고 마는가

 

자책하면서

죽은 고추 모종들을 모두 뽑았다

겨우내 앓다가 잠잠해진

왼쪽 어금니 아래가 다시 시큰거렸다

 

고추 모종을 다시 사다 심기도 전에

믿을 수 없는 봄이 다 지나가고

나는 바람난 어금니 하나를 뽑았다

 

뽑은 자리들마다

내가 너무 쉽게 믿었던 봄의 뿌리가

하얗게 질린 낯으로

그러나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시작 노트>

 

봄을 기다리는 내 마음이 너무 성급해서

결국은 죽이고 만 어린 채소들아, 미안하다.

매번 그랬으면서도 제대로 돌보지 않아

마침내 바람에 넘어가고 만 왼쪽 어금니야, 미안하다.

 

쉽게 믿을 수 없는 봄이지만

우리가 굳게 믿고 있기에

언제나 잊지 않고 봄은 우리를 찾아온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나를 탓하지 말아다오.

내 순진한 믿음을 욕하지 말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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