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오클랜드 솔라리스

   - 디아스포라 디아볼로* 1

 

 

귀향은

또 하루 늦춰진다

 

어제 떨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떨어져

자신이 떠나온 곳을 골똘히 바라보고 있는

동백꽃 몇 송이의 시선으로 맞이하는 아침

 

밤사이 새로 태어나고 또 죽은

무수한 생명들의 시차에 따라

이른 봄 창백한 햇살의 각도는

어제보다 조금 더 가팔라지고

 

자전거를 탄 우편배달부가

오늘도 무심히 지나쳐

주소가 지워진 나의 한낮은

썰물이 되어 하우라키 만(灣)을 빠져나간다

 

재활용되지 않은 시간들만

커다란 쓰레기봉지에 담아

세 들어 사는 내 몸 밖에 내놓으면

이번엔 어느 날의 오후가 나를 찾아올 것인가

 

저물 무렵

적도를 건너온 네이버통신은

십 년 전 내가 두고 온 고향의 봄이

요즘은 강남스타일로 바뀌었다는 소식

 

아내와 단둘이 앉은 저녁 식탁엔

배추김치와 된장찌개

레드 와인과 블루 치즈

 

밤에는

몇 년 전 죽은 친구들을 또 만날 것이다

 

 

* 디아스포라(diaspora) ; 국외 이산, 국외 이주

  디아볼로(diabolo) ; 공중 팽이(두 개의 막대 사이에 켕긴 실 위에서 팽이를 굴리기)

 

<시작 노트>

 

나이 들어 가면서 친구들 꿈을 자주 꾼다. 꿈에서라도 고국의 친구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반갑고 신나는 일. 그러나 가끔씩은 이미 고인이 된 친구들도 나와서 꿈속에서도 내 마음을 서럽게 한다. 내 마음 속 깊은 갈피에 숨어 넌 아직도 이렇게 살아 있었구나, 이 나쁜 새끼.

 

그런 꿈을 난 새벽이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솔라리스>가 떠오른다. 죽은 자들을 소환하는 산 자의 기억 능력이 축복이면서 또한 저주일 수도 있다는 것을 탁월하게 보여준 아름다운 영화.

 

서울로부터 1만 km 떨어진 이 남국에서도 계절 따라 익숙한 꽃들이 피어나고 우편배달부는 매일 지나가고 매주 쓰레기 분리 수거도 하니 전혀 낯설 게 없는 생활이지만, 그래도 자주 내 삶에 결락이 느껴지는 걸 어쩌지 못해 저물녘에는 기웃거려보는 네이버 통신.

 

특히 목이 부러진 동백꽃들이 땅에 나뒹구는 이른 봄날이 되면, 밤에 내가 꾸는 꿈은 이젠 낯선 행성-솔라리스-이 되어버리고 만 고국으로 진입하곤 한다. 그 낯선 행성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조금도 나이를 먹지 않은 얼굴-고향의 봄-이어서 무척 반갑지만, 패션과 화제는 늘 최첨단-강남스타일-이어서 나를 주눅들게 만드는 그런 꿈.

 

그래서 어쩌면 나의 귀향은 영원히 늦춰질지도 모르겠다는 예감.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