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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의 도미

   - 디아스포라 디아볼로 2

 

 

얼음조각들이 깔린 널찍한 진열대 위에

생선들이 나란히 누워 있다

갓 들어온 남해산 도미 몇 마리도 함께 누워 있다

지난밤 내내 산지직송 활어전문 트럭에 실려와

첫새벽 도시의 생선가게에 부려진 도미들

먼지 낀 창문을 통해 스며드는 뿌연 아침 햇살에

두릿두릿하던 눈이 아파오기 시작하고

펄떡거리던 아가미도 숨이 차서 잦아드는데

젊은 아낙네 하나 그 앞에 서서 도미들을 살핀다

 

어젯밤 만취해서 곯아떨어진 아들의 아침상을 위해

새벽부터 볶아대는 시어머니 등쌀에

날이 밝자마자 장을 보러 나온 나어린 새색시

도미들의 아가미 덮개를 하나하나 헤집어 보다가

개중 싱싱한 놈을 골라낸다

아직도 펄떡거리고 있는 아가미가

자신의 목숨을 채가는 올가미가 될 줄이야

놈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나

낯선 나라에 팔려온 베트남 새색시 미(My)*

아니 이젠 한국식으로 이름이 바뀐 미도(美渡)는

술꾼 남편이 자신의 삶을 낚아챈 올가미라는 걸 잘 알면서도

그에게 해장국을 끓여주기 위해 도미 한 마리를 집어 든다

 

고른 놈을 생선가게 주인에게 건네면서

손짓과 몸짓 섞어서 하는 그녀의 서툰 한국말을

눈치 빠른 사내는 다 알아듣고는

도미의 머리와 꼬리를 탁탁 자르고

배를 갈라 내장도 쓰윽 훑어 씻어내 버리고

등과 배의 지느러미도 싹둑 잘라내 버린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는 미도의 두 눈엔

일년 전 떠나온 고국의 바닷가 고향 마을

병들고 늙으신 홀아버니의 얼굴이 떠올라

뜨겁고 고요한 밀물이 차오른다

목돈 덕에 병은 나았다 하지만

아직도 고기잡이로 겨우 생활을 하고 있을 테지

두 눈을 넘친 그리움에 목마저 잠겨오는데

사내는 자잘한 비늘까지 다 긁어낸 도미의 몸통을

머리통과 함께 검은 비닐 봉지에 담아 그녀에게 건넨다

 

한 손에는 잘 다듬은 도미 한 마리

또 한 손에는 콩나물과 미나리 따위가 든 비닐 봉지를 들고

미도는 늦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려고 서두르지만

이젠 아가미도 없고 지느러미도 없는 그녀는

집으로 가는 길이 힘겹고 멀기만 하다

낯선 땅에서 머리통과 몸통으로 토막이 나버린 삶

고향 갯내음이 스며있는 비늘마저 다 벗겨진 생활

검은 비닐 봉지에 담아 억지로 들고 가는 자신의 인생을

미도는 그만 내동댕이치고만 싶다

 

 

* 미(My)는 흔한 베트남 여자 이름 중의 하나로 예쁘다는 뜻임.

 

<시작 노트>

 

이젠 한국에서도 국제결혼이 드물지 않아서

한국으로 시집살이를 하러 온 동남아 출신 신부들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뉴스에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그들이 풀어놓는 이야기에는

웃음보다는 눈물이 더 많이 묻어나서

그런 기사를 읽고 있노라면 내 마음도 애잔해지곤 한다.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가

질 나쁜 낚시꾼에게 어쩌다 잘못 걸려든 도미의 신세타령이 되지 않도록

조금만 더 따스한 관심과 배려로 그들을 품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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