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향
- 디아스포라 디아볼로 5
누군가 나를 팽이처럼 빙빙 돌리다가
딱 놓아준다면
멈출 때는 북쪽을 향해 쓰러질 거라고
내 핏속을 흐르고 있는 무수한 철분들이
나침반의 바늘처럼 빙글빙글 돌다가
일제히 남북 방향으로 정렬해 멈출 거라고
어디가 북쪽이고
또 어디가 남쪽인지 알 리 없건만
마음자석이 이끄는 대로
피톨나침반이 가리키는 대로
철새들은 때 되면 남북을 옮겨다니고
10월의 봄날
알래스카에서 적도를 넘어
이곳 오클랜드까지 날아온 철새들이
날개에 조금씩 실어 온 붉은 단풍이
서쪽 하늘에 곱고 짙어서
북향으로 앉은 집
북쪽으로 난 거실 문을 열어놓고
아내가 차리는 저녁 식탁에 번지는
잘 익은 배추김치와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
모락모락 김 오르는 공깃밥
그 옆에 놓은 숟가락 젓가락도
나란히 가지런히
북쪽으로
<시작 노트>
남반구의 섬나라에 와서 북향으로 앉은 집을 사랑하게 되었다.
어리둥절 몇 년을 보내고
이제 이곳 키위가 다 되었을 정도로 생활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입맛이어서
우리집 저녁 식탁에 차려놓은 음식들은 아직도 북향이다.
수저들조차도 북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