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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집을 줍다

   - 산책 오딧세이 2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작은 시골 마을 카티카티

골목마다 새 집들은 늘어만 가고

세 들어 사는 낡은 집 앞

나무 위의 동네

우듬지 아래 아스라히 걸려 있는 새집은

한 계절이 다 지나도록

드나드는 새 한 마리 보이지 않네

 

이번 봄에 새로 짓다가 그만 둔 걸까

아니면 오래된 둥지여서 버리고 떠난 걸까

산책 나설 때마다 한참을 올려다보지만

한번도 제대로 날아보지 못한 내 시들처럼

가늠하기 쉽지 않은 행간만 빽빽할 뿐

 

저 높은 집에서

지나가던 뭉게구름은

소나기 굵은 빗방울 몇 개 탁란해 놓고

한나절 낮잠을 즐기고 가기도 했겠네

대열에서 몰래 이탈한

숱 많은 계절풍 한 자락도

가뿐 숨을 고르며 잠시 쉬어 가기도 하겠지만

빈 집이 새로 채워지는 일은

아무래도 없을 것 같은데

 

비바람 잦은 늦봄의 변덕이 좀 가라앉아

모처럼 나선 산책길에서

땅에 떨어져 있는 새집을 보네

새로 지은 빈 집들이 쭉 늘어서 있는

신개발 주택단지 골목길들을 피해

우레타라 강둑길을 걸어

하이쿠 공원길을 돌아 나와

집 앞 숲길 키 큰 나무 앞에서 만난 그 새집에는

구름의 깃털 하나 바람의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네

 

세 들어 사는 집으로 새집을 주워 와

탁란의 세월 속에 버려둔 알 하나를 놓아두면

결박당하지 않은 날개를 지닌 새 한 마리

이번엔 태어날 수 있을까

새로 태어나서 시로 훨훨 날아가

자신만의 새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시작 노트>

 

시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던(이라기보다는, 쓰려고 마음 먹었던) 대학교 3학년 때, 신대철 시인의 시집 『무인도를 위하여』를 만났다. 제목과는 달리 산을 제재로 한 많은 시편들이 내게는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이후 내가 가장 아끼는 시집 제1호가 되었다. 시집 첫머리 자서(自序)와 맨끝 표지에 실은 새와 새집(까치집)에 관한 글도 이 시집의 아름다운 시들만큼이나 나를 매료시켜서, 당시 등교할 때마다 키 큰 나무들에 한두 개씩 있기 마련인 까치집을 바라보곤 했다. 지금도 산책하면서 키 큰 나무들을 볼 때마다 새 둥지가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곤 하는데, 그때의 버릇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겠다.

 

시집의 제목을 이루고 있는 ‘섬’과 시집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시편들인 ‘산’의 이미지들을 연결해주고 또한 아우르는 매개체로서 시인이 하필이면 왜 새를 선택했는지는 그 한자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명백해진다. 새[鳥]의 발과 날개가 있는 자리에 산(山)이 놓여있는 게 바로 섬[島]이 아닌가. 즉, 섬이란 새가 산을 품고 날아올라가 바다에 옮겨놓은 땅이라는 뜻일 게다. 산을 품고 날아오르려면 도대체 그 새는 얼마나 큰 새여야만 하는가! 장자의 책이라면 몰라도 이 세상에는 있을 수 없는 그 새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걸 나는 요즘에서야 알게 됐다. 그 새의 이름은 다름아닌 시(詩)다. 그러니 그 새가 사는 집은 새집이 아니라 시집일 테지. 좋은 시는 날개가 크고 넓어서 세상의 수많은 독자들을 향해 날아간다. 날개 달린, 그것도 크고 넓은 날개가 달린 시들을 쓰고 싶다. 그렇게 되면, 세 들어 살면서 가끔씩 짓는 내 시들에게 번듯한 집 하나 마련해주고 싶은 내 오랜 소망도 저절로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아니 믿기로 한다.

 

새벽부터 까치가 아카시아 나무 사이를 들락날락한다. 한 마리는 땅바닥에 흩어져 있는 마른 가지를 물어 집터인 나무 꼭대기에 올려 놓고, 다른 한 마리는 꼭대기에 붙어 앉아 얼기설기 집을 짓는다. 이상하다, 이 까치들은 가까이의 다른 많은 나무들을 두고 아카시아 잔가지로만 집을 짓고 있다.

집을 짓기 시작한 지 3일째 되는 날, 나무 밑은 어느새 지푸라기 하나 보이지 않는다. 까치들은 나뭇가지 끝에 아슬아슬하게 앉아 삭정이를 꺾어 내고 있다. 그 순간 삭정이를 문 채 허공 속에 뚝 떨어졌다가는 간신히 꼭대기에 날아 앉는다. 하루 종일 같은 일만 계속한다. 5일째, 집은 거의 완성되고 있다. 아침에 얼핏 보이던 까치들은 오후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어디 갔을까?

까치집이 다 완성되는 날, 아카시아 나무엔 잎이 트고 머지않아 하늘 저편에선 뭉게구름이 뭉클뭉클 피어 오르리라. 저 까치집에 날아들어 밀리고 밀린 잠을 자고 싶다. 그리고 인간으로 깨어나 다시 인간에게 <미래의 말>을 걸고 싶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7 『무인도를 위하여』의 自序, 신대철 지음, 문학과 지성사 펴냄, 1985년 7월 15일 초판 9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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