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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청 신약

[도서] 쾌청 신약

박영호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어떤 일이든 쏙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해 본 적이 언제인가?

'쾌청'(快聽)이라는 말은 그런 마음으로 듣자는 것이다.

"듣기는 속히 하라"는 야고보서 말씀에서 나왔다(약 1:19).

'속히 한다'는 말은 기쁘게, 반갑고 설레는 마음으로 한다는 뜻이다(7).

 

 

얼마 전, 친구가 주식창을 들여다 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이것은 사탄의 무서운 전략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시각각으로 숫자가 빠르게 오르고 내리는 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을 보며, 사탄이 우리의 시선을 어떻게 빼앗아 가고 있는지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고정시켜야 할 우리의 시선, 하나님께 드려야 할 우리의 시선을 이런 식으로 빼앗아 붙들어두고 있구나 싶었던 것입니다.

 

요즘 '교회도 현실 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인들을 종종 보는데, 성도의 영적 감각이 얼마나 죽어 있고, 잠들어 있는지를 생각하면, 아득할 지경입니다. 말씀으로 나의 오늘을 해석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린다면,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세상에 빼앗기고 있는 우리의 시선을 말씀 앞으로 도로 찾아오고 싶은데, 그것이 참 어렵습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에 도무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아예 관심이 없거나, 한 두번 시도하다 멀어지는 성도들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가 늘 고민인데, <쾌청 신약>에서 한 가지 힌트를 얻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읽고 듣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큰 즐거움이라는 것을 <쾌청 신약>이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 한 권을 다 읽어가는 내내, 말씀을 듣고 알아가는 즐거움이 충만했습니다!

 

 

 

 

 

 

 

 

"우주는 원자가 아니라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The Universe is made of stories, not of atoms).

미국의 시인 뮤리엘 루카이저의 말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로 다가온다(15).

 

 

<쾌청 신약>은 4복음서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신약성경의 구조와 주제를 큰그림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에, 시각적인 자료(모형)까지 사용하여, 한눈에 "쏙" 이해되도록 가르쳐주는, 매우 탁월한 강의입니다! <쾌청 신약>을 읽으며 깊이 반성하게 된 것은, 성경을 재미없게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잘못인가(어쩌면 죄) 하는 점이었습니다. <쾌청 신약>은 이미 알고 있는 성경 지식도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는데, 핵심을 짚어주는 표현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어디에서 태어나셨는지 몰라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로부터’는 알고 있어야 사도가 될 수 있었다(31).

 

성탄절 없는 교회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수난과 부활을 모르는 교회는 불가능하다(33).

 

도마복음에서는 도마는 예외적으로 탁월하게, 다른 제자들은 모두 어리석게 묘사된다.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을 높이는 것이 그리스도의 제자의 품격이라 한다면,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시킨다는 점에서 도마복음은 격이 떨어지는 책이라 할 수 있다(91).

 

 

<쾌청 신약>에서 가장 즐거이 들었던 가르침은, "사도행전의 바울과 서신서의 바울"의 차이였습니다. 사도행전의 바울은, 달변가 헤르메스로 불릴 정도로 설득력 있고 유려한 설교를 전하며, 상당한 능력을 가진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사도행전은 바울을 비범한 힘과 언변을 가진,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인물로 소개한다"(129). 그러나 바울이라는 동일 인물에 대해 바울서신과 사도행전의 묘사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바울서신을 보면, 바울이 정말 많은 고민과 갈등에 휩싸여 있었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가 많았으며, 그런 자신의 모습 때문에 불안하기도 했음을 알게 된다"(129). 사도행전이 전하는 바울은 달변가이지만, 바울 스스로는 말을 잘 못하라는 사람이어서 사역자로서 부족하다는 생각을 무척 많이 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진실일까요?

 

"사도행전의 바울"과 "서신서의 바울"의 차이를 묵상하며, 적잖이 위로를 받았습니다. 스스로 부족한 사역자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고민하고 갈등하고 괴로운 심정으로 분투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통해서도 보배로운 복음의 씨앗을 뿌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열매를 거두실 수 있다는 믿음이 더 확고해졌기 때문입니다!

 

<쾌청 신약>을 읽으며, 탁월한 설교는 탁월한 성경 해석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힘써 여호와를 알아야 하는데, 그 힘써 여호와를 아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생각하면,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사랑이 많으시고 멋진 하나님이신가 절로 감탄하게 됩니다! 저자 박영호 강사님은 "즐거이 듣는다면, 그것은 필히 담대한 실천으로 이어질 것이다"라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이 듣는 것 자체가 이미 담대한 실천이었습니다! <쾌청 신약>은 말씀이 우리 안에서 일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정말 재미있게 잘 들었다고 저자 선생님께 꼭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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