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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파이 살인 사건

[도서] 맥파이 살인 사건

앤서니 호로비츠 저/이은선 역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2점

이야기 속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는 다층적인 액자식 구성이라든가, 소설 속에서 허구와 실재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없애는 메타픽션 같은 이야기는 확실히 내 취향이다. 이청준의 <매잡이>나 우나무노의 <안개> 같은. 좋아하는 형식이라는 얘기는 그만큼 기대치도 높다는 뜻이다. 게다가 <맥파이 살인 사건>에 대해서는 그 기대치에다가 표지 문구에 기인한 착각까지 더해져 한껏 고조된 상태로 독서를 시작한 게 마이너스가 되었다. '등장인물들이 외화와 내화에서 두 개의 정체성을 갖는 독특한 액자소설' - 여기서 내가 멋대로 품어버린 이미지는, 미드 <원스 어폰 어 타임>을 처음 봤을 때 느낀 캐릭터 설정 및 구성의 신선함이었다. 그 드라마는 동화 속 이야기가 한 축이고, 그 동화 속 인물들이 동화 밖의 현실 세계(지만 사실은 동화에 갇힌? 시즌1만 봐서 희미하다)에서 마치 평행세계의 인물들처럼 살아가는 이야기가 다른 한 축이었다. 예컨대 백설공주의 계모 왕비 캐릭터의 현실 세계 집 정원엔 빨간 열매들이 달린 사과나무가 서 있던 장면이 지금도 기억난다.

즉 <맥파이 살인 사건>에 대해 내가 막연히, 그래서 더 잔뜩 기대한 이미지는, 탄탄한 추리소설의 인물들이 또 하나의 세계에서 참으로 기똥차게 다른 세계의 자신과 싱크를 맞춰가면서 또 하나의 탄탄하고 기발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는 식이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장르를 착각한 정도의 헛다리였다.

부질없는 가정이긴 하지만 만약 그런 기대치 없이 덤덤하게 읽기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솔직히 그 편이 더 재밌는 독서를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억울한 기분이다. '등장인물들의 두 개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편이 홍보 효과는 훨씬 뛰어날지 몰라도, 거기에 기대치를 걸었다가는 실망할 수밖에 없다. 그저 소설 속 작가가 자신의 소설에 주변 인물들을 조금씩 차용했다 정도의 그리 색다를 것 없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소설이 시작되면 우선 작중 편집자 수전이 소설 속 소설인 앨런 콘웨이의 <맥파이 살인 사건>을 읽기 시작한다. 이 분량이 이 두꺼운 책의 거의 절반인데, 내용은 전형적인 애거사 크리스티 식의 소설이다. 그러다 마지막에 범인이 밝혀지기 직전에 소설이 끊기고, 수전도 나도 함께 열이 받은 상태에서 다시 현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원고 뒷부분이 사라진 채로 작가가 자살해버리고, 수전은 사라진 원고를 찾는 동시에 작가의 죽음에 의문을 느끼고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시점에서 나는 드디어 저 고전적인 인물들의 '두 번째 정체성'을 만나게 되는 건가! 하며 잔뜩 기대에 부풀었고, 또한 그 쾌감을 만끽하고자 앞선 긴 분량의 고전적 소설을 정말 꼼꼼하게 열심히 읽었었다!!! 한데 그 가상한 노력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스러져야 했으니... 수전이 만난 작가의 주변 인물이나 장소 등이 그의 소설 속 인물 및 장소와 연결 가능하다는 점을 예의 홍보 문구에서 강조한 듯싶지만 나는 이런 연결들이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고, 그 탓에 그 긴 이야기를 지나 드디어 찾은 사라진 원고의 내용은 붕 뜬 듯 집중해서 읽히지 않을 지경이었다. 사라진 원고에 작가 사망 사건의 단서가 숨겨져 있긴 하지만 차라리 중간 이야기를 건너뛰고 죽 연결해서 읽는 게 더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용도 탄탄하고 필력도 상당하다. 묘사는 날카롭고 군더더기 없으며 대화는 리듬감 있다. 다행히 번역도 좋았다. 그럼에도 이 아쉬움을 단순히 나의 어긋난 기대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는, '고전적 추리소설 + 참신한 현대적 추리소설'의 조합이 아니라 '고전적 추리소설 + 배경만 현대인 전형적 추리소설'의 조합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이야기는 내용상으로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거나 하는 부분이 없다. 그래서 별 셋은 너무하다 싶지만서도 어쩔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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