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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로열

[도서] 호텔 로열

사쿠라기 시노 저/양윤옥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사쿠라기 시노, 양윤옥 역, [호텔 로열], 현대문학, 2014.

Sakuragi Shino, [HOTEL ROYAL], 2013.

149회 나오키상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려서 야한 책을 읽고 싶었다. 일본의 색채가 물씬 풍기는... 서정적이고 따뜻한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이번에는 자극적이고 냉담한 이야기를 원했다. 그러면서 눈에 들어온 책이 사쿠라기 시노의 소설 [호텔 로열]이다. 성에 관한 거침없는 묘사라기보다는 적당한 은유가 돋보인다. 인생 사연이 곁들어진 문학적 관능미를 뽐내고 있는데,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최고의 단편을 하나 발견했고... 7개의 연작 단편 모음이다.

 

  셔터 찬스

  금일 개업

  쎅꾼

  거품 목욕

 

  별을 보고 있었어

  선물

 

  작가는, 어린 시절에 부친이 동명의 러브호텔을 경영해서 거기서 일하면서 자라났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은 홋카이도 구시로시를 배경으로 하고, 호텔 로열이 등장한다. 각 단편은 호텔을 중심으로 인물의 관계가 얽혀 있다. 시간의 흐름은 역순으로 구성했는데... 첫 번째 단편에서는 문을 닫고 폐허로 변한 호텔이 나오고, 일곱 번째 단편에서는 언덕에서 개업을 준비하는 호텔이 나온다. 남자하고 관련한 여자의 구구절절한 사연은 매우 정교한데, 누구나 다 처음에는 그럴듯한 이유와 희망을 품고 있다.

 

  좌절...... 오늘도 또 듣고 말았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미유키는 마치 약점을 찌르는 스위치가 켜진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밥을 먹어도, 술을 마셔도, 살을 맞대고 함께 아침을 맞이해도, 결국 남자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 끝에 하는 결정적인 한마디에는 반드시 '좌절'이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문득 위()의 뒤쪽 어디쯤에서, 좌절이라는 말에 푹 빠져버린 것은 오히려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솟아올랐다. 다카시를 만나기 전까지 아무 기복 없이 살았던 나날을 돌이켜보면, 오랜 시간을 들여 시커먼 구멍 밑바닥으로 빨려 들어간 것은 바로 나 자신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p.24)

 

  가가야 미유키는 중학교 동창으로 현재 같은 곳에서 일하는 남자 친구로부터 누드모델을 제안받는다. 다이어트를 하고, 속옷 자국에 신경을 쓰며... 낡은 건물을 찾는다. 카메라 셔터 소리를 들으며 어색함과 불편함을 호소하자, 부상으로 아이스하키 선수의 꿈을 접은 남자는 좌절을 얘기한다. 이번에도 그의 요구를 피할 수 없다.

 

  다른 단가의 봉투는 다음 날 아침이면 사라졌지만 사노에게서 받은 봉투만은 한 달이 지나도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사이쿄는 이미 세대가 바뀐 단가가 미키코에게 가져다준 쾌락을 알아본 것이다.(p.63)

 

  시타라 미키코는 관락사 주지의 부인이다. 절에 오기 전에는 간호조무사로 일했고, 용모의 아름다움은 없다. 그녀는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단가(사찰에 시주, 후원하는 불교 신자)를 호텔에서 만나 관계를 갖는다. 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가의 후원이 필요했고, 그녀는 이것을 봉사로 여긴다.

 

  남자든 여자든 몸을 이용해 놀아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그때는 오늘이 아니었다. 이 남자에게는 잠시 잠깐의 감정만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미야카와는 띄엄띄엄 말을 끊어가면서 아내가 첫 여자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런 게 이유가 돼요?"

  마사요는 허리를 숙이고 웃었다. 그의 아내가 어처구니없을 만큼 행복한 여자인 것 같아서 숨이 막혀왔다. 점점 메말라간다. 점점 가벼워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남기지 않는다.(p.90-91)

 

  마사요의 아버지는 처자식을 버리고 젊은 여자와 호텔 사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는 태어나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떠난다. 그 뒤로 십 년 동안 호텔 관리는 그녀가 해왔다. 3호실 커플이 나란히 죽는 사건이 일어나자 손님은 뚝 끊기고, 폐업 마지막 날이다. 쎅꾼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성인용품 판매 회사의 영업 사원에게 재고품을 반납하면 완벽하게 끝이 난다.

 

  메구미는 두 눈을 부릅떴다. 아니,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부끄러워해서도 안 된다. 당당하게 유혹할 것이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펀치를 찾아보았다.

  "나도 마음껏 소리 지를 수 있는 데서 한번 해보고 싶단 말이야."(p.104-105)

 

  메구미는 좁은 집에서 남편과 두 자녀 그리고 시아버지와 살고 있다. 추석 성묘에서 스님이 오지 않자, 시줏돈으로 준비한 오천 엔을 아끼게 된다. 닷새 치 식비, 얘들에게 새 옷을 사주고 외식할 수 있다. 한 달 치 전기료와 이것저것을 할 수 있는 돈... 그녀는 남편에게 호텔에 가자고 조른다.

 

  ", 왜 집에 안 갔어요?"

  "귀찮은 질문 자꾸 할 거면 나가줄래?"

  "혹시 귀가 공포증?"(p.146-147)

 

  고등학교 수학 교사인 노지마 히로유키는 아내가 고등학교 시절의 담임과 이십여 년을 연인으로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춘분의 날 연휴에 삿포로 집에 있는 아내에게 간다고 말하지 않고 기차에 오른다. 허탈함과 자괴감... 그런데 그가 담임을 맡은 2학년 A반 학생인 마리아가 따라붙는다. 엄마는 도망가고, 아빠는 집을 나가 하루아침에 노숙자 여고생이 되었다고 한다.

 

  남편의 등에 업혀 숲을 나왔다. 넓은 등판으로 미코에게 조금씩 조금씩 온기를 나눠주며 쇼타로가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다 올라선 참에 불쑥 쇼타로가 멈춰 섰다.

  "당신, 그런 데서 뭐 하고 있었어?"

  조용한 물음이었다.

  "......"

  "별이 어쨌는데."

  "별을 보고 있었어."(p.187)

 

  환갑의 나이인 미코는 호텔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 세 아이는 전부 집을 나갔고, 열 살 어린 남편은 집에만 있다. 평생 일만 하고 살아서 고생이 고생인 줄 모르는 억척스러운 삶이다. 무슨 사건이 있을 때마다 주위의 사람은 착하게 변했고, 그녀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 아들의 편지를 받는다.

 

  "나는 사업이라는 건 반드시 꿈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 이 세상이란 게 남자와 여자밖에 더 있느냐고. 다들 원하는 건 똑같다는 얘기야. 꿈이 있는 장소를 제공해주는 장사라면 나도 뭔가 꿈이 보일 것 같더라고."(p.194)

 

  다나카 다이키치는 간판 일을 하면서 젊은 루리코와 바람을 피운다. 그는 러브호텔을 경영하고 싶어 하는데, 동갑내기 아내는 이혼을 요구하며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린다. 장인에게 문전박대를 당하고... 임신한 루리코와 새로운 출발을 한다.

 

  사연제조기(?) 사쿠라기 시노의 소설은 [유리 갈대](비채, 2016.)에 이어서 두 번째이다. 우울한 현실에서 몸부림치는 여자의 삶이 기억나는데, 이 책에서도 여자의 삶은 지독하고 투쟁적이다. 독립적이지 못해서 하나같이 남자(애인, 남편, 아버지, 선생님)에게 종속되어 있다. 다른 삶을 원하는지도 모르겠고... 현실은 우울하고 막막하다. 자의든 타의든 남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셔터 찬스'를 읽으며 누드 촬영은 나의 로망이고, '금일 개업'은 고결함과 불결함을 동시에 느끼는 특이한 경험을 했다. '쎅꾼'은 뭔가 답답함이 있고, '거품 목욕'은 현실적이다. ''은 블랙코미디이고, '별을 보고 있었어'는 인생의 회한이 있다. '선물'은 호텔 로열의 시작이다.

 

  '금일 개업'은 지금까지 읽은 단편 중에서 최고로... 나의 인생 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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