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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회의

[도서] 일곱 개의 회의

이케이도 준 저/심정명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이케이도 준, 심정명 역, [일곱 개의 회의], 비채, 2020.

Ikeido Jun, [NANATSU NO KAIGI], 2012.

 

  작년, 2020년은 이케이도 준의 해였다는 생각이다. [한자와 나오키](인플루엔셜, 2019.) 시리즈에 이어서 [변두리 로켓](인플루엔셜, 2020.) 시리즈의 열풍(?)이었다고 할까... 독자의 호평 일색으로 꼭 읽어보고 싶은 작가였다. 그래서 부담 없이 선택한 것이 소설 [일곱 개의 회의]이다. 기업 소설? 경제 소설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도쿄겐덴이라는 중견기업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일곱 개의 회의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진감이 있다. 문득 작가의 이력이 궁금한데... 기업을 소재로 하는 이야기가 미스터리 못지않은 힘을 지니고 있다.

 

  '八角'이라는 한자는 원래 '야스미'라고 읽지만 사내에서는 어쩐지 '핫카쿠'라 불렀다. 이유는 모른다. 나이는 하라시마보다 다섯 살 위인 쉰 살. 어디에나 있는 무기력한 회사원의 전형 같은 사람이었다. 회의만 열렸다 하면 좋다고 꾸벅대는 만년 계장이다.

  일단 출세가도에서 벗어나 옆길로 빠지고 나면 무서울 게 없다는 듯이 기타가와 앞에서도 당당하게 졸았다. 그 정도면 불량사원으로서 심오한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잠귀신 핫카쿠'.

  핫카쿠가 기타가와를 겁내지 않는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핫카쿠는 기타가와 부장과 동갑인 데다 입사 동기였다.(p.12)

 

  대기업 소닉의 자회사인 도쿄겐덴은 영업부, 경리부, 제조부, 고객 관리실... 각 부서는 연일 회의의 연속이다. 영업부 정례회의는 매주 목요일 오후 2시부터, 영업부장은 매출 실적을 보고받으며 소리를 지른다. 목표는 반드시 지켜야 할 법도이다. 영업2과의 형편없는 실적하고 비교해서 영업1과는 늘 승승장구이다. 모두가 긴장하는 회의 현장에서 매번 팔짱을 끼고 조는 사람이 있다. 만년 계장 야스미 다미오, 사내에서는 잠귀신 핫카쿠라고 불린다. 그는 영업부장과 입사 동기이다.

 

  "회사는 어디나 똑같아."

  핫카쿠가 단언했다. "기대하면 배신당하지. 대신 기대하지 않으면 배신당하는 일도 없어. 나는 그걸 깨달은 거야. 그랬더니 희한한 일이 일어나더군. 그때까지는 그저 힘들고 괴롭기만 했던 회사가 아주 편안한 곳으로 보이더라고. 출세하려 하고 회사나 상사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하니까 괴로운 거지. 월급쟁이의 삶은 한 가지가 아니야. 여러 가지 삶의 방식이 있는 게 좋지. 나는 만년 계장에 출셋길이 막힌 월급쟁이야. 하지만 나는 자유롭게 살아왔어. 출세라는 인센티브를 외면해버리면 이렇게 편안한 장사도 없지."(p.47)

 

  영업부장하고 동갑에 입사 동기, 한때 엘리트 사원으로 이름을 날리던 남자가 이제는 출셋길에서 벗어나 아니 출세를 외면하고 만년 계장에 머물러 있다. 사자 같은 영업부장도 핫카쿠에게는 관대하고... 과거의 사연이 궁금하다. 회의가 끝나고, 최연소 과장 타이틀을 가진 영업1과장은 그동안 참았던 화를 터뜨리며 핫카쿠에게 폭언을 한다. 안하무인 핫카쿠는 이것을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위원회에 제소하는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온다. 다음 영업부장의 물망에 오르던 영업1과장은 직위 해제되고, 인사부에서 발령대기 명령이 떨어진다.

 

  왜 핫카쿠가 사카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발했는지, 왜 기타가와가 사카도를 경질하려 했는지, 왜 임원회의가 그것을 승인했는지. 이제 전부 이해되었다.

  "꽃 같은 1, 지옥 같은 2과라......"

  입 밖으로 내어보니 이 말에는 아무래도 허무한 울림이 있었다.

  화려한 실적은 과연 무엇으로 지탱되었던가.

  핫카쿠는 회사라는 조직의 추악한 무대 뒷면에 대해 이야기했을 뿐이다. 이제 그 무대 뒷면을 지탱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다.(p.49)

 

  1화 마지막 장에서의 심한 충격! 핫카쿠는 새로 온 영업1과장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소설을 끝까지 끌고 가는 쟁점이자 힘이다. 누구도 쉽게 감당할 수 없는 비밀... 화려한 영업실적의 이면에는 아주 추악한 민낯이 있었다. 영혼을 맞바꾸어야 하는 출세가도를 핫카쿠는 오랫동안 홀로 거부하고 있다. 밝혀지면 기업의 생존마저 위태롭게 되는... 작가는 현대의 기업윤리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마치 사회파 미스터리처럼...

 

  경합이라는 제도는 발주자 측에만 유리하게 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경쟁사가 저렴한 가격을 들고 오리라는 생각만으로도 네지로쿠 같은 영세기업은 통상보다 몇 할쯤 싸게 입찰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경합으로 가져가서 비용 절감을 노리는 사카도의 의도가 뻔히 보이지만, 이 일을 따내지 못하면 네지로쿠의 매출이 회복될 가능성은 없다.(p.69)

 

  원가 절감이라고는 하지만 나사는 원래 수주 단가가 싼 데다 오래 계속한다고 싸게 만들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다. 결국 하청의 수익을 대기업이 빨아올리는 구조, 그저 한쪽의 이익을 다른 쪽의 이익으로 갈아끼울 뿐인 구조를 강요당하는 것 아닐까. 대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 하청은 적자가 된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의 제조업은 뿌리부터 무너져내릴 거라고 생각하지만, 월급쟁이인 구매 담당자에게 이런 말을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p.87-88)

 

  오 년 동안 도쿄겐덴이라는 회사에서 유이는 주체성 없는 부품이었다. 시키는 대로 업무를 수행하고, 눈에 띄는 일 없이 그저 한결같이 일에 매진하는 말 없는 부품이었다. 회사뿐 아니라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자신은 부품이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사람의 기분을 만족시키고 안정시키기 위한 편리한 부품.

  부품이 되어버린 것은 의사나 감정은 있어도 상황에 맞설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헛되게 지나버린 나날은 이제 되돌릴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p.128)

 

  핫카쿠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옳은 건 옳은 거야. 잘못된 건 잘못된 거고. 그 외에 뭐가 있어. 부정을 저지른 사람은 사카도이고, 너희는 그걸 은폐하고 있어. 나를 속여서 말이야. 넌 진심으로 네가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해?"(p.324)

 

  그런 기타가와에게도 모회사가 설정한 목표를 완수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그해 할당치를 달성하면 이듬해에는 소닉에서 더 높은 할당치가 내려왔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자신의 목을 조르게 되는 구조다. 부하를 질타할 뿐 아니라 자신도 밤늦게까지 뛰어다니던 기타가와조차 목표치 달성이 어려워졌다.(p.330)

 

  소닉 사장인 도쿠야마 이쿠오가 참석하는 회의를 임원들은 어전회의라고 불렀다. 중역이 대거 모이는 경우도 있고 필요한 최소 임원으로 진행될 때도 있다. 경영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동적인 회의인데, 회의록이 작성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중역회의와 결정적으로 달랐다. 여기서 논의되는 내용은 외부에 새어나가지 않는다. 참석자의 기억에만 남는다.(p.361)

 

  아버지가 말했다. "일이란 말이지, 돈을 버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는 거야. 사람들이 기뻐하는 얼굴을 보면 즐겁거든. 그렇게 하면 돈은 나중에 따라와. 손님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장사는 망해."(p.365)

 

  "굳이 말하자면 체질일까요."

  핫카쿠는 그런 말을 했다.

  "체질?" 뜻밖의 말이다.

  "그러니까 반복되는 거죠."(p.386)

 

  일곱 개의 회의란? 영업부의 정례회의, (하청 중소기업의 임원회의), 근무 개선을 위한 환경회의, 경리부의 계수회의, 고객 관리실의 편집회의와 부서간 연락회의, 임원회의, 사장이 참석하는 어전회의이다. 이야기는 영업부를 중심으로 전개하는데, 처음에는 사소한 것처럼 보이던 부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나중에는 회사를 위협하게 된다. 영업부와 경리부, 영업부와 제조부의 알력... 원청과 하청의 불합리... 생산 원가와 제품 품질의 상관성... 열심히 일할수록 목을 조여오는 구조... 변하지 않는 체질... 기업의 부조리는 아주 생생하다.

 

  최근 코로나 시국에 일본을 보면, 연일 대 환장(?) 파티를 하고 있다. 그동안 우러러보았던 장인정신과 책임감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우리는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것이 능력인데, 그들은 책임질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다. 성장 위주로 상명하복의 경직된 기업문화... 이게 다 청산해야 할 일제의 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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