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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이브

[도서] 더 파이브

핼리 루벤홀드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핼리 루벤홀드, 오윤성 역, [더 파이브 - 잭 더 리퍼에게 희생된 다섯 여자 이야기], 북트리거, 2022.

Hallie Rubenhold, [THE FIVE], 2019.

2019 베일리 기퍼드상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살인마 잭'으로 1888831일부터 119일까지 영국 런던 이스트엔드 지역의 빈민가 화이트채플에서 일어난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다. 이때 최소 다섯 명의 여자를 잔인하게 살해했고, 신문사에 편지를 보내어 세간의 시선을 끌었다. 그런데도 당시 과학수사의 부재와 부실한 수사로 범인을 잡지 못해 영구 미제로 남게 된다. 이후 잭 더 리퍼는 유명해졌는데... 사칭하는 모방 범죄가 일어나고, 연쇄살인에는 늘 언급되며, 대중문화에 등장하게 된다. 오늘날에는 티셔츠와 지역 관광상품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아무도 희생자를 기억하지는 않는다. 경찰과 언론은 죽은 여자를 모두 매춘부라고 하였다.

 

  잭 더 리퍼는 매춘부를 골라 죽였다. 혹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어 왔다. 그러나 다섯 피해자 중 셋은 매춘부였다고 말할 만한 확실한 증거가 전혀 없다. 경찰은 어두운 안뜰이나 거리에서 시신을 발견하자마자 피해자는 매춘부이며, 어떤 미치광이가 섹스를 미끼로 그들을 꾀어냈다고 '가정'했다. 이 두 가지 가정은 그때도 증명되지 않았고 지금도 증명되지 않는다.(p.33)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희생자 중 일부는 매춘부였고, 또 일부는 형편상 어쩔 수 없이 매춘했을 수 있어도 모두가 몸을 팔았다는 것은 근거 없는 낭설이다. 저자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살인범에 관해서가 아니라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다섯 여자의 행적을 추적하여 그들의 존엄성 회복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런던 시민과 영국 전역의 신문 독자는 화이트채플 살인 사건의 잔인성에 경악했다. 다섯 피해자 모두 목이 잘렸고, 넷은 내장까지 뜯겼다. 마지막 사건을 예외로 하면 이 잔혹한 사건은 모두 야외에서, 어둠의 엄폐 속에서 발생했다. 모든 사건에서 예외 없이 살인자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단독범인지 공범인지 그 정체를 짐작케 할 단서를 전혀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또한 인구 밀도가 매우 높은 구역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대중과 언론은 물론 경찰까지도 이 사건이 여느 살인 사건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범인은 마치 유령인 듯 악귀인 듯 늘 당국보다 한발 앞서 있는 것 같았고, 그래서 그의 범행은 유독 끔찍한 사건으로, 흡사 초자연적인 현상으로까지 여겨졌다.(p.23-24)

 

  빛과 어둠, 호화로움 뒤의 궁핍함이라고 해야 하나... 빅토리아 왕의 즉위 50주년 기념식은 매우 화려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뒤 1888831일 폴리 니컬스, 98일 애니 채프먼, 930일 엘리자베스 스트라이드와 캐서린(케이트) 에도스, 119일 메리 제인 켈리가 시신으로 발견된다. 급격한 인구 증가와 낮은 임금, 흉작과 불황, 불합리한 사회 구조와 빈약한 안전망은 빈민을 양산했고... 이들은 화이트채플로 모여들었다. 성매매와 도둑질, 노숙과 음주 난동이 일상화된 곳이다.

 

  구빈원 안의 생활환경은 바깥세상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 구빈원 운영 주체인 구빈법위원회가 그러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존심이 강한 노동자계급 가정은 원내 구제를 받지 않아도 될 만큼 유능한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을 경멸했다. 구빈원 경험이 있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노동자계급 사이에서 얼마나 심각했던지, 인근 구빈원에 들어가느니 차라리 구걸이나 노숙이나 성매매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은 불운에 타격받았던 이웃을 좀처럼 잊지 않았고, 한번 구빈원에 들어갔던 가족은 그곳을 나와서도 오랫동안 치욕을 견뎌야 했다.(p.68)

 

  여자는 가정에 머물러야 하는 존재였다. 정부와 교구 관청, 법조계는 여자가 남편과 헤어지는 일을 장려하거나 그 과정을 수월하게 바꿀 생각이 없었다. 가령 폴리가 이혼 비용을 감당할 수 있었더라도 1880년 당시 여자는 남편의 간통만으로는 이혼을 요구할 수 없었다. 남자는 아내의 간통을 이유로 이혼할 수 있었던 반면에, 여자는 남편이 간통 말고도 근친상간이나 강간, 배우자 폭행 같은 다른 범죄도 저질렀음을 입증해야 했다.(p.69-70)

 

  전통적으로 여자아이의 열다섯 살은 교육을 마치고 전업 일자리를 구해 가계를 돕기 시작하는 나이였다. 특히 이 나이대의 많은 여성이 마치 통과의례처럼 가정부로 일하기 시작해 어린 동생을 먹여 살렸으며 이를 위해 가족이 있는 집을 떠나는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부모의 보호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도덕적 위험에 노출된다는 뜻이었지만, 젊은 여성의 일자리로는 그래도 가사노동이 공장노동보다 낫다고 여겨졌다. 공장노동은 나중에 여자가 가정을 꾸렸을 때 쓸모가 될 기술을 전혀 길러 주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p.127)

 

  고용살이는 젊은 노동자계급 여성이 인격을 수양할 수 있는 경험으로 여겨졌지만, 주인집의 남자와 성적으로 얽힐 때는 그러한 효과가 상쇄되기 십상이었다. 혼외 관계는 여자가 결국 성매매를 시작하게 되는 요인으로 자주 지목되었다. "약사나 의사의 가정부는 주인의 조수에게 유혹당할 수 있었다. 여인숙에서 일하는 가정부는 학생이나 외판원, 관리에게... 호텔 종업원은 단골손님에게 유혹당할 수 있었다. 젊은 사무원은 부모님이 고용한 젊은 여자 하인을 유혹할 수 있었다." ... 19세기의 이중잣대 때문에 남자는 혼외 관계를 쉽게 정리할 수 있었던 반면, 여자는 흔히 삶이 망가져 울고 흐느끼며 뒷일을 감당해야 했다.(p.203-204)

 

  이미 19세기 초반에 사회개혁가인 프랜시스 플레이스와 로버트 데일 오언, 조지 드라이스데일이 "가족 규모를 제한"하는 방법을 주제로 각각 책을 썼다. 이들이 제안한 방법은 질외사정부터 양 창자로 만든 다회용 콘돔(일명 '프렌치 레터'), 살정제 주입, 질 안에 넣는 '피임 마개'까지 다양했다. 그런데 이러한 정보는 글을 읽을 줄 알고 책을 살 여력이 되는 중산층 사이에서나 조심스럽게 유통되었을 뿐, 노동자계급은 사정이 달랐다. 조지와 캐서린 모두 글을 읽을 줄 몰랐던데다 그런 책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책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콘돔 또한 구하기가 쉽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에겐 너무 비싼 물건이었다. 더욱이 이 시대에 임신과 피임은 여자의 책무로 여겨졌다.(p.269-270)

 

  이 시대 노동자계급의 딸은 문자 교육을 비롯한 보통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이 흔했다. 1840년대 통계에 따르면 영국 여성의 48.9퍼센트가 자신의 이름을 쓸 줄 몰랐다. 여자아이는 집에서 어머니를 돕거나 취직하여 가계에 기여하는 게 바람직하지, 굳이 학교에 다닐 필요가 없다고 여겨졌다.(p.272-273)

 

  이처럼 가정 폭력의 책임을 여자에게 돌리는 경향은 빅토리아 시대 노동자계급의 전형적인 태도였다. 가정의 규율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폭력이 필요하다는 게 이 사회의 통념이었다. 남자들은 아내의 잘못을 책망하며 뺨을 때리는 데 전혀 가책을 느끼지 않았고, 많은 여자가 그러한 폭력을 '자업자득'으로 받아들였다. 남자는 아내가 거친 언어를 썼다고, 자신의 성적 접근을 거부했다고, 고분고분하지 않다고, 건방지다고, 혹은 가장에게 이의를 제기했다는 등의 갖가지 이유로 심기가 언짢아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두드러진 원인은 술이었다. 술에 취한 남자가 아내를 때리는 경우도 많았고, 맨 정신인 남자가 술에 취한 아내를 구타하는 경우도 똑같이 많았다.(p.318)

 

  빅토리아(여왕) 시대의 영국은 아이러니(?)하게 여성의 인권을 철저히 무시하는 사회였다. 가부장적이며 폭력적인 제도, 남성 위주의 법률과 분위기... 여자는 아버지나 남편, 즉 남자를 의지해야 살 수 있는 구조였다. 열다섯 살 이전에는 집에서 가사 노동을 하고, 이후에는 대부분 가정부로 일하며 가계를 돕는다. 때로는 도덕적 위험에 노출되어 사생아를 낳거나 성병에 걸리고,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하지만 곧 다른 남자를 의지해야 하는 신세이다. 빈곤의 악순환, 출산의 고통, 육아의 피로, 걱정과 배고픔과 탈진 그리고 마지막에는 질병과 죽음뿐이었다.

 

  다섯 여자의 처절하고 치열한 인생이 있다. 대장장이의 딸로 태어난 폴리는 결혼생활의 불화로 내리막 인생을 산다. 군인의 딸로 태어난 애니는 중산층으로의 진입을 꿈꾸었지만 알코올 중독이 문제이다. 스웨덴 농부의 딸로 태어난 엘리자베스는 잘못된 출발로 매독에 걸리고, 양철을 다루는 노동자계급의 가정에서 태어난 케이트는 결핵으로 부모를 잃으면서 꼬인다. 과거의 정보가 불확실한 메리 제인은 유일한 매춘부이다.

 

  폴리, 애니, 엘리자베스, 케이트, 메리 제인은 태어난 첫날부터 그들에게 불리한 게임에 참여해야 했다. 그들 대부분이 노동자계급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들 모두가 여자로 태어났다. 그들은 말을 배우기도 전부터 같은 가족의 남자 형제보다 덜 중요한 존재, 다른 계급 가족의 딸보다 더 많은 짐을 져야 할 존재로 여겨졌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러 나서기도 전에 가치를 절하당했다. 그들은 결코 남자와 똑같은 소득을 벌 수 없을 터였고, 그러니 학교에 다녀야 할 이유도 적었다. 그들이 밖에서 일하는 목적은 가계에 도움이 되는 것이지, 성취감이나 목적의식이나 개인적 만족을 채우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는 여자가 남자 없이 살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었다.(p.392-393)

 

  '몰락의 전설'을 보는 기분이다. 태어난 첫날부터 그들에게 불리한 삶이었던 다섯 여자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온갖 몸부림에도 서서히 목줄은 옥죄어 온다. 런던, 이스트엔드, 화이트채플, 구빈원과 싸구려 공동 여인숙 그리고 술에 취해 노숙하다가 살인마에게 희생된다. 잘못된 정보와 자극적인 기사는 지금까지 오해를 일으키고, 가해자를 영웅화하는 현실이다. 이제는 피해자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메시지... 방대한 자료 수집과 세밀한 연구는 1800년대 중, 후반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빈민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살짝 음울한 분위기지만, 그래도 여성의 날을 전후로 해서 이런 책을 읽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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