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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blog.yes24.com/document/7704809

여는 글

인조 14년(1636년), 병자년의 겨울.

청 태종은 12만 8천 명의 원정군을 이끌고 조선 침략에 나섰다. 그들은 심양에서 출발한 지 7일 만에 압록강에 도착, 조선의 서북 관문인 의주를 그대로 지나쳐 한양으로 직진했다. 당시의 조정 대신들 중 누구도 청이 그토록 전격적인 남하 전술을 구사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전쟁은 그 전에도 있었다. 광해군을 몰아낸 서인 정권은 새롭게 발흥하는 청을 배척했다. 조선과 경제 교류의 길이 막혀 극심한 물자 부족에 시달리던 청 태종은, 정묘년 1월에 아민(阿敏)에게 3만의 병력을 주어 조선을 침공하게 했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조정은 강화도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버티며 청과 형제의 맹약을 맺었다.

역사는 되풀이되었다. 약속에도 불구하고 조선 조정은 청을 오랑캐로 무시했으며, 전쟁에 대비하지도 않았다. 일찍이 광해군은 청이 도발할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었다. 무기를 정비했고, 그들이 직진 남하 전술을 선택할 수 있으니 대비하라고 비변사에 지시했다. 그러나 광해군이 실각하자 그의 말들은 모두 폐기되었다.

조선 원정군은 12월 18일 한양에 입성했다. 그들이 국경을 넘은 지 열흘 만이었다. 인조는 다시 강화도로 파천하려 했으나 이번에는 그조차 여의치 않았다. 왕은 남한산성을 닫아걸고 겨울을 보냈다. 눈보라와 포탄이 내리는 겨울이었다. 조선 원정군은 닥치는 대로 포로 사냥에 나섰다. 포로는 병사들 개인의 재산이었다. 포로의 수는 50만, 혹은 그 이상이었다. 조선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포로였다. 그럼에도 <조선왕조실록>에는 그 숫자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들 중 상당수였던 여자들은 청으로 끌려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치욕과 학대를 당했다.

겨울이 길었고, 전쟁이 끝났다. 임금은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세 번 큰절을 올리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했다. 이듬해 3월이 되자 조선 원정군의 주력부대는 다시 압록강을 건넜다. 임금은 청의 신하가 되어 궁궐로 돌아왔으며 신료들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더 높은 품계를 받은 신하들도 있었다. 누구도 전쟁에 대해, 패배와 굴욕, 죽음과 상처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꽃이 피고 또 졌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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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강희진 저
비채 | 2014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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