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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blog.yes24.com/document/7715498

안개.

어둠이 물러가기 시작한 자리에 안개가 차오르고 있었다. 바람이 멈춘 강으로부터 꾸물꾸물 일어난 안개는 온 거리를 삼킬 듯 밀려들었다.

청나라로 가기 전 긴 세월을 살았던 한양인데 이 안개만은 적응할 수가 없었다. 청나라라고 안개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곳은 안개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통째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대륙은 바람도, 눈도, 안개도 달랐다.

한강의 안개는 어지럽고 사람을 쉬 지치게 했다. 안개 속에서 걸어다니는 반쯤 동강난 형상, 비슷비슷한 형상들이 종종 이신을 놀라게 했다.

이신은 안개 속에서 눈을 감았다. 김흥진이 사는, 아니 살던 집 대문 앞이었다.

“빨리 의금부에 연락하라!”

“영의정 대감 댁에 먼저 사람을 보내야 한다! 뭣들 하느냐!”

대문이 시끄럽게 열리더니 노복 둘이 뛰어나왔다. 김흥진의 죽음을 알아차린 집안은 경악과 공포로 술렁거렸다.

“네놈들은 포도청으로 달려가라!”

다시 대문이 열리고 또 다른 노복 둘이 달려나왔다.

“아니다. 육조거리로 가라! 형조참의 나리를 모셔와야 한다.”

대문에서 갓을 쓴 사내가 밖으로 나와 달려가는 노복들의 등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예전에 김흥진의 집에서 두어 번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김흥진이 부리던 능숙한 집사였지만, 그도 이런 일은 처음일 터. 어디로 사람을 보내야 할지 무슨 일부터 해야 할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모양이었다.

열려진 대문 틈으로 적잖은 노복들이 우왕좌왕 뛰어다니는 모습을 이신은 보지 않고 들었다. 그 발소리 속에 이신이 쫓는 놈이 섞여 있다. 김흥진의 노복들과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한 동네 사람들 틈에 함께 묻어가려는 것이었다. 대숲에서 죽은 놈 못지않게 이자도 분명 고도로 훈련된 놈이었다. 단검을 날리던 침착한 솜씨 하며, 숲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로 몸을 숨기는 판단력이 그것을 말해주었다. 저런 고수를 부릴 만한 세력이 대체 누구일까?

죽은 김흥진은 영의정 김환의 아들이다. 하긴 영상領相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더불어 반정을 한 훈신들조차도 그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사대부들은 아예 대놓고 그를 경멸했다. 염치없는 임금 아래 염치없는 재상이라며, 숫제 벼슬도 사양하고 고향으로 내려간 이가 부지기수였다. 그들 중 누군가가 고용한 자일까.

그러나 가장 궁금한 것은 그자가 왜 자객을 죽였느냐다. 왜 이신을 공격하지 않았을까. 그자는 우연히 그 장소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신이 나타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분명 자객을 노리고 왔을 터였다. 그렇다면 이신을 버려둔 이유는 무엇일까. 이신이 황제의 칙사이자 임금의 내금위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자인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이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걸까. 연유가 어떠하든 이신이 그 시각 그 장소에 있었다는 것을 안 이상 그자를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이신은 사방에서 울리는 발소리 속에서 그자의 독특한 발소리를 찾아내려고 귀에 온 신경을 모았다. 그러나 축축한 안개가 귀를 먼저 파고들었고 그자의 발소리는 먼 듯 가까운 듯 혼란스럽기만 했다. 게다가 그자는 교활하게 미투리 소리에 맞춰 걸었다. 이신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을 사람 서넛이 죽음이 찾아든 기와집 너머를 기웃거리다 돌아가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이편을 향해 힐끔 돌아보는 모습이 보였다.

놈이다. 이신은 그를 쫓아갔다.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퉁이를 꺾어 들려왔다. 하지만 안개에 덮인 골목들은 그의 눈에 다 똑같아 보였다. 골목과 담장, 길과 길 아닌 것도 모두 안개에 덮였다. 이신은 소리에 집중하며 그를 쫓아 걸었다. 안개는 곧 걷힐 것이다.

불쑥 여인 하나가 튀어나왔다. 몸집이 작고 얼굴이 동그란 여인이었다. 눈앞으로 뿌연 안개가 지나가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조심조심 걷는 모습이 어디가 아픈 것 같았다. 이신은 자신을 스쳐 지나간 여자가 돌아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자의 발걸음이 느려졌기 때문이다. 나를 아는 여인일까.

이신이 쫓고 있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달아나려는 것이다. 이신도 그를 향해 달려가다 우뚝 멈추었다.

선화…….

벼락이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리듯, 이신은 깨달았다. 조금 전 모퉁이에서 튀어나온 여인은 선화다. 오래전, 압록강에서 잃어버린 그의 아내. 죽었다고 믿고 살았던 여인.

그는 방금 여자가 걸어간 쪽으로 달렸다. 그러나 시야에는 온통 안개뿐. 누구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선화!”

이신의 목소리가 안개 속을 울렸다. 이신은 시야를 포기하고 선화의 발소리를 들으려 했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보아도 아낙의 발소리를 찾을 수 없었다. 뭔가 들리는 것 같아 걸음을 멈추고 정신을 집중했으나 마찬가지였다. 헛것을 본 것일까. 선화의 흔적은 사라졌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는지 모른다. 자객의 발소리도 멀어졌다.

이신의 앞에는 오직 안개, 안개뿐이었다.





뒤바뀐 사인



상참이 있기 전, 편전 주변으로 중신과 신료들이 삼삼오오 모여 들었다. 임금은 회의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요사이 제때 조정회의가 시작되는 일이 드물었기에 신료들은 무작정 기다렸다. 주상 없이 회의가 진행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병조판서 홍원범은 한쪽 구석에 혼자 서서 막막한 잿빛 하늘 아래 청淸으로 짙어가는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갸름한 그의 얼굴은 측면에서 보면 마치 회초리처럼 날카롭고 한없이 쌀쌀맞아 보였다. 눈가와 뺨을 타고 곡선을 이루는 완강한 주름들이 차가움을 더했다. 누구도 쉽게 말을 붙이기가 어려울 듯한 인상이었다. 병조참판 한복진이 다가오자 홍원범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은 옆모습에서는 읽을 수 없던 깊은 수심 같은 것을 풍겼다. 아마도 양미간의 깊은 주름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눈동자 때문일 것이다. 깊게 가라앉은 그 눈빛 때문에 사선으로 떨어지는 날렵한 하관이 오히려 연약한 인상마저 주었다. 생김대로 홍원범은 말수가 적었다. 한복진이 뭔가 긴한 이야기를 하는 듯했으나 홍원범은 가만히 듣기만 할 뿐 응답이 없었다.

지금은 도성 바깥 한적한 곳에 터를 잡긴 했으나 원래 홍원범은 대궐 근처 북촌 토박이였다. 북촌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을 줄곧 그 마을에서 보냈으며, 아직도 일가친척 대부분이 그곳에 살고 있었다. 비록 한 번도 들어가본 적이 없지만 계해년 거의의 공로로 받은 집도 북촌의 요지에 있었다. 그뿐 아니라 동네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넓은, 그의 또 다른 집도 역시 북촌에 있었다. 최근 홍원범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집 외에 두 채의 집을 모두 팔고 도성 밖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반정 이후 훈신들 사이에서 홍원범이 없었다면 거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그의 공은 지대했다. 하지만 그는 막상 한직인 지방관으로만 전전하면서 구망句芒을 다 보내고 흰머리가 드문드문 나기 시작할 쯤에 대궐로 들어온지라 궐 안이 언제나 낯설게 느껴졌다. 그 때문에 대궐 안에서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고, 혼자 생각에 잠겨 있기 일쑤였다. 북촌이 대궐과 가깝고 대소신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그런지 북촌의 집마저도 때로는 자신이 와서 살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집들을 정리하고 도성 밖에 터를 잡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호조참의 남백중과 함께 서서 쑥덕대던 당하관들이 홍원범을 발견하고 그의 주변으로 다가왔다. 참판 한복진은 짐짓 모른 척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한발 늦었다.

“대감, 들으셨습니까? 전하께서 미행微行 중에 시정잡배들과 어울려 술을 드시고 그들과 함께 주정을 부렸다 합니다.”

정랑 하나가 홍원범에게 다가와 마치 대단한 비밀이라도 전한다는 듯이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하지만 임금의 미행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고, 오히려 조정 신료의 관심은 이번에는 무슨 기행을 벌여 백성들의 웃음거리가 됐느냐에 쏠려 있었다.

“주정을 가지고 뭘 그리 호들갑인가.”   

한복진이 낮은 목소리로 핀잔하듯 말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시정잡배들과 어울러 술을 마시고 헛소리로 주정이나 부린 정도라면 그날 미행은 별 탈 없이 끝난 셈이었다. 그만큼 최근 주상은 해괴한 소문들을 몰고 다녔다.

“백성들 사이에 차마 입에 담기 민망한 소문까지 돌고 있으니 하는 말이지요.” 

그는 은밀히 알려줄 말이 있다는 듯 홍원범을 보았지만, 홍원범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소문인가?”

옆에 서 있던 남백중이 입을 열었다. 말을 꺼낸 정랑은, 비록 홍원범이 잿빛 하늘만 바라보고 있지만 분명히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며칠 전에는 주상전하께서 운종가에 납셨답니다. 거기서 개장국을 드시고는 하늘의 달을 향해 멍멍 짖으셨다 합니다.” 

“뭐요! 개장국을 드시고 개처럼 짖으셨다?”

모여 있던 신료들 모두 충격을 받아 멍한 얼굴로 홍원범을 응시했다. 홍원범은 잠시 눈을 감았다 뜰 뿐, 어떤 감정의 변화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자 말을 전한 정랑도 고개를 숙이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것은 녹을 먹는 신하로써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언사였으니, 혹여 길을 걷다가 백성들이 지껄이는 말을 무심코 들었다 해도 재빨리 우물가로 가서 귀를 씻어야 올바른 신하의 도리일 것이다. 그러나 도리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시절. 임금이 백성들이나 먹는 개장국을 먹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달을 향해 개처럼 짖었다니. 말을 재촉한 남백중 역시 듣기 민망한지 눈만 껌뻑이다 잿빛 하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설마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좌랑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설마가 아닐 겁니다. 얼마 전에는 기생을 침전에 불러 들였다가 알몸으로 궐 안을 돌아다니셨다 합니다.” 

정랑은 말을 마치고 다시 홍원범의 눈치를 살폈다. 홍원범은 도무지 미동이 없어 사람이 아닌 고목이 서 있는 것 같았다.

“내관을 죽인 건 어쩌고요.”

“헛소문이 아니었군요.”

“전하께서 미령靡寧하셔서 내의원에서 안절부절못한답니다. 장차 종사가 어찌 될지 걱정입니다.”

한복진도 말을 마치며 홍원범을 보았다.

“혹시 시중에 떠도는 입조入朝 소문 때문에 옥체가 미편하신 게 아닐까요?”

“하긴 청나라 심양, 그 먼 곳으로 황제를 알현하러 간다는 게 어디 예삿일입니까?”

“입조 얘기는 심심하면 한 번씩 나오는 얘기인데 새삼스레 기행까지 부리시다니요.” 

“삼전도三田渡에서 그런 치욕을 당하셨으니…….”

홍원범이 짧게 말했다. 꼭 누구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혼잣말이었다.

근래 임금이 보이는 모든 말과 행동들은 삼전도와 관련지어 해석되고, 인용되고, 판단되었다. 그럼에도 아무도 삼전도라는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 삼전도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즉시 주변의 공기를 오염시키고 급기야 말을 뱉은 신하 자신까지 기겁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러나 홍원범의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둘러선 신료들만이 삼전도가 오염시킨 무거운 공기를 묵묵히 들이마셨다.

그때, 좌랑 하나가 급히 달려왔다.

“대감…… 대감!”

급하게 달려온 좌랑은 말을 잇지 못하고 숨을 헐떡였다.

“어허, 편전 앞에서 웬 호들갑이오?” 

정랑이 그를 보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기, 김흥진 대감이, 김흥진 대감이 자진하셨다 합니다.”

“언제 그랬단 말인가?”

“오늘 새벽녘이라 합니다.”

김흥진의 자진은 홍원범에게도 충격인 듯했으나 그는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그때 편전 입구에서 좌의정 최명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에 영의정이 뒤따르고 있었다. 앞장서야 할 영상이 좌상의 뒤에 선 것으로 보아 방금 좌랑이 호들갑스럽게 전한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언제나 어깨를 떡하니 펴고 자신이 일국의 만인지상임을 증명하듯 팔자걸음으로 걷던 영상이 아니던가. 하지만 오늘은 고개를 숙이고 바위를 얹은 듯 무거운 어깨를 하고 천천히 편전 안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흥진은 영상의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편전에 둘러앉은 신료들은 이미 소식을 들었는지 다들 고개를 숙이며 눈인사만을 나누며 말을 삼갔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목소리들이 모두 사라지고 편전 안은 침묵으로 가득 찼다. 그 침묵을 깨고 임금이 모습을 드러내기를 모두들 기다렸지만 임금은 나타나지 않았다.

영의정 김환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고, 그 앞에 앉은 병조판서 홍원범도 매한가지였다. 잠시 후 우의정과 도승지가 들어왔다. 도승지는 좌의정에게 뭐라 귓속말을 하고는 한쪽에 물러나 자리를 잡았다. 오늘도 임금은 상참에 참가하지 않을 모양이었다. 이미 변고가 전해졌을 터인데 상참에도 나오지 않다니, 정말 미령하신 것인가? 소문처럼 입조 문제 때문인가? 좌상이 홍원범에게 눈짓을 했다. 편전을 둘러본 홍원범은 앞에 앉은 참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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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강희진

비채 | 2014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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