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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의 꽃 이야기

[도서] 삼국시대의 꽃 이야기

김규원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가드닝 책을 하나둘 읽다보니, 슬슬 식물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키우는지,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지가 아니라, 내가 보고 있는 이 식물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라던가, 이 꽃의 꽃말은 어디서 유래된걸까? 뭐 이런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근데 또 곰곰히 생각해보니, 세상에 알려진 꽃말들의 유래는 대게 서양이었다. 예컨데 수선화의 꽃말인 ‘자기애’는 그리스신화의 나르키소스에서 유래된 꽃말이고, 물망초의 꽃말 ‘나를 잊지 마세요’는 헝가리의 다뉴브 전설(루돌프와 베르타)에서 유래되었다. 아네모네의 꽃말도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되었고, 히아신스도 그리스 신화….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꽃말은 전부 서양에서 유래된 이야기다.


 

 

나는 우리 역사속에 등장했던 식물들, 꽃과 나무의 이야기를 알고 싶은데 !!!! 왜 때문에, 죄다, 모조리, 전부 !!!! 과반 이상은 그리스/로마신화 이야기요, 나머지는 그외 서양 전설이란 말인가. 정녕 우리 역사 속 식물 이야기는 없는걸까? 하고 슬퍼하던 차에, 이 책이 눈에 띄었다. 냉큼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책 초입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꽃 문화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보니, 대부분이 외국의 신화, 설화, 꽃말 등이었다. 이것은 외국의 꽃 문화가 더 좋아서인가, 우리의 꽃 문화가 없어서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꽃 문화는 어떤 모습과 역사를 가졌을까. 우리 조상들은 언제부터 꽃의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꽃을 어떻게 활용하였을까.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특히 우리 고대 사회의 꽃 문화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 p 009

 

원예학자인 저자조차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저자는 많은 꽃말들이 전부 외국에서 유래된 이야기라는 사실이 안타까웠다고. 그래서 저자는 우리 역사속의 식물들 이야기를 발굴하기 시작했고, 그 결실이 바로 이 책이다.

 

동부여에서 물의 신으로 불리는 하백에게는 유화(柳花), 훤화(萱花), 위화(葦花)이라고 하는 세 딸이 있었다. 큰언니 이름으로 쓰인 버들꽃은 노란색으로 이른 봄에 피고, 둘째 이름으로 쓰인 원추리꽃은 주황빛이 도는 노란색으로 초 여름에 핀다. 막내 이름인 갈대꽃은 은색으로 가을에 핀다. 세 자매의 이름은 신기하게도 각 계절을 대표하는 우리나라 토종의 아름다운 꽃이기도 하다. p 031

 

고구려의 초대왕 주몽. 우리가 알고있는 주몽의 부모는 하늘신 해모수와, 물의 신 하백의 딸 유화다. 지금까지는 유화라는 이름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와보니, 유화라는 이름의 한자가 꽃이름이다. 버들 유(柳), 꽃 화(花). 한마디로 버들꽃이다. 유화의 언니들 훤화, 위화도 한자를 풀이해보면 꽃 이름이다. 원추리 훤(萱), 꽃 화(花)· 갈대 위(葦), 꽃 화(花). 즉 하백의 딸, 세자매의 이름 유화·훤화·위화는 각각 버들꽃, 원추리꽃, 갈대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를 비추어볼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수 많은 꽃과 나무들이 우리 역사속에 등장한다는 사실을. 

 

화제를 남긴 여인들은 모두 귀하고 특별했다. 왕비이거나 공주이거나 왕의 총애를 받거나 신라 최고의 미인이었다. 이 여인들 이름은 가상 식물이나 특정 식물의 이름, 또는 그 식물의 꽃 이름과 같은 경우가 많았다. 특정 식물의 이름을 그대로 쓰거나, 꽃 화(花)자를 넣어 이름을 지은 것이다. p 048

 

 

역사속 등장인물들, 특히 여성들의 이름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주몽의 엄마인 유화를 비롯하여,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의 이름이 꽃과 나무의 이름을 가져다 쓴 경우가 많다. 고구려 유리명왕 부인 송씨부인의 ‘송’은 소나무 송(松)을 썼으며, 가야 마지막 왕 구형왕의 부인 계화는 계수나무 계(桂), 꽃 화(花)를 써서 계수나무 꽃, 즉 ‘금목서’라는 이름을 가졌다. 진지왕과 사이에서 비형량을 낳은 도화부인 역시 복숭아 도(桃), 꽃 화(花)를 써서 ‘복사꽃’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우리에게는 진평왕의 셋째딸이자, 백제의 무왕 부인(서동부인)으로 알려진 선화공주는 착할 선(善), 꽃 화(花) 라는 ‘착한꽃’ 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이 외에도 찾을라치면, 식물의 이름을 쓴 역사속 인물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우리가 알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몰랐을 뿐이다. 이처럼 우리 역사속에는 우리가 생각치 못했던 식물의 이름들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심지어는 식물들과 관련된 이야기도 곳곳에서 등장한다.

 

박/석/김씨가 돌아가며 왕을 했던 신라 초기. 첫 ‘김’씨 왕조를 열게 한 왕이 바로 미추왕이다(물론 미추왕 사후 다시 석씨가 왕이 되긴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미추왕의 아들인 내물왕을 시작으로 신라의 왕은 ‘김’씨가 대물림한다). 이 미추왕이 묻혀있는 왕릉이, 경주 대릉원에 있는 ‘미추왕릉’이다.

 

 

경주에 있는 수많은 신라 왕릉의 대다수는 추정의 형식으로, ‘ㅇㅇ왕릉’이라고 명명되었지만 미추왕릉은 예외다. 그 옛날부터 계속 이 무덤은 미추왕릉이라고 구전되어 내려왔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왕릉 주인이 구전되어 내려온 이유 중 하나가, 다름아닌 미추왕 호국신화에 기인한다

 

신라 13대 미추왕의 무덤은 대릉 또는 죽장릉(竹長:긴 대나무)이라고 불렀다. 14대 유례왕 때에 이서국이 공격해왔는데 신라는 맞설 힘이 부족했다. 그때 알수 없는 병사들이 나타나서 신라의 군사를 도왔는데 모두 귀에 댓잎을 꽃고 있었다. 적이 물러간 후에 그 죽엽군들은 사라졌고, 댓잎이 미추왕의 능 앞에 쌓여있었다. 이때부터 이 능을 댓잎이 쌓여 있다 하여 죽현릉(竹現:대나무가 나타난)이라고 불렀다. p 078

 

이 호국 신화에 등장하는 미추왕의 병사들은 귀에 대나무잎을 꽂았다고 하는데, 이 신화로 인해 미추왕릉은 ‘죽장릉/죽현릉’ 이라는 별칭이 생겼다. 이와 비슷한 시기 고구려에서도 식물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심지어 이 일화에서 나온  한 단어는, 지금까지도 계속 같은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바로 ‘쑥대밭’에 관한 일화다.

 

고구려 동천왕 20년에 왕이 중국을 적대시하자 신하 득례는 “장차 이 땅에 봉호(쑥대)가 날 것”이라 말하고 굶어 죽었다. 쑥은 우리가 즐겨 먹는 계절 음식으로 땅속줄기에서는 새싹이 많이 나고 땅 위에 올라온 싹은 자라는 속도가 빠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쑥줄기, 곧 쑥대가 나면 다른 농작물이 자랄 수 없는 쓸모 없는 밭이 되는데, 이런 밭을 쑥대밭이라고 한다. p 104

 

우리는 삼국지에서 비롯된 사자성어(고사성어)는 많이 알고 있지만, 이상하리만치 ‘쑥대밭’ 처럼 우리 역사에서 비롯된 단어는 잘 알지 못한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향유하는 동안, 정작 우리 문화를 등한시한 것이다. 꽃말도 당연히 서양의 신화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하는데, 누굴 탓할까. 그저 이런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풀이나 나무 등을 용기에 심어서 기르는 것을 분화나 용기재배라고 한다. 용기재배는 절화와 함꼐 화훼산업과 생활원예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직사각형이나 원형 또는 연꽃 모양의 돌 용기에서 연꽃과 창포를 수경재배하였다. 절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있을 떄 원형이나 직사각형의 석조와 석련지에 연꽃을 심어서 절 주변을 장식하였고, 백제 관사에서는 원형의 돌 용기에 창포를 심어 건물 주변을 장식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p 148

 

신라 사람들의 허리띠에는 정사각형의 작은 용기에 심겨있는 소나무 그림이 있다. 이로보아 삼국시대에는 소나무도 용기재배를 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p 153

 

분재 또는 화분등의 용기에서 식물을 키우는 문화도 그렇다. 따지고 보면 우리 역사속에서도 이런 분재나 용기로 식물을 키웠다는 사실은 유물이나, 옛 기록에서 뜨문뜨문 나타난다. 심지어 고려시대에 간행된 문집이나, 병풍 같은 문화재를 보면 당대에 소나무나 매화나무등의 분재가 활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흠흠흠, 다시 역사속의 신기한 식물들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과거에 영주 여행시, 부석사에서 애지중지 보호되고 있는 한 나무를 보았다. ‘선비화’라고 불리는 이 나무는,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하고 본인의 지팡이를 땅에 푹 꽂았는데, 그 지팡이가 지금의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이거 참, 뭐라고해야할까. 식물의 ‘ㅅ’도 보르던 식초보시철, 나는 이 이야기를 그저 전설에 치부했다. 

 

신라 문무왕 16년에 의상대사가 영주 부석사를 창건하고 인도로 떠났다. 처마 밑에 지팡이를 꽂으면서, “내가 떠나면 이 지팡이에서 싹이 날 것이다. 그 나무가 죽지 않으면 내가 살아 있는 줄 알라”고 하였다. 정말로 얼마 지나지 않아 지팡이에서 싹이 났다. p 180

 

식집사가 된 지금, 나는 이 이야기가 어쩌면 전설이 아닌 사실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나무 번식 기법 중에는 삽목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꺾꽂이, 물꽂이 기타등이 있는데, 나 역시도 매화나무가지를 잘라서 물꽂이를 해서 성공했다. 물론 이렇게 삽목을 할 때는, 환경등 필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의상의 지팡이는 실제로 갈잎 떨기나무인 골담초 줄기이며, 나무 줄기를 자른 시기는 눈이 자발적으로 휴면을 하는 가을에서 강제휴면을 하는 늦겨울 사이이고, 살아 있는 눈이 붙어 있는 지팡이를 꽂은 시기는 이른 봄 지팡이에서 싹이 나기 전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팡이를 꽂은 장소는 처마 밑이라 하였으니 직사광선이 없는 반그늘로, 상대습도가 높고, 토양 수분이 충분하고, 토질도 적당하여 나무 지팡이에서 싹이 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었으리라 본다. p  182

 

결과적으로 의상대사가 쓰던 지팡이가 막 추위가 와서 잎눈이 휴면하는 시기에 나무에서 뚝 끊어서 쓰던 지팡이였다고 가정하면, 그 지팡이를 얼마 안 쓰고 봄이 올 즈음에 때마침 직광이 들지 않던 처마 밑 흙에 푹 꽂았기 때문에, 이 지팡이는 흙 속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의상대사가 삽목의 원리를 알고, 하필 그런 환경에 지팡이를 땅에 꽂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의상대사는 우리나라 최초로 삽목을 시도해서 성공한 사람으로 기록에 남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렇게 따지면, 부석사에 있는 저 나무는 진짜로 의상대사가 쓰던 지팡이가 된다. 나같이 아둔한 중생은 그것도 모르고, 의상대사를 의심하다니, 천벌받을 뻔 했다. 아휴..

 

의상대사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삽목을 성공한 사람이라면, 위라나라 최로의 원예학자로는 이두문자로 유명한 신라의 설총을 꼽을 수 있다. 그 근거로는 설총이 지은 설화 「화왕계」를 들 수 있다.

 

네이버에서 검색한 「화왕계」 일부를 발췌했다.

 

"이 몸은 설백(雪白)의 모래사장을 밟고, 

거울같이 맑은 바다를 바라보며 자라났습니다. 

봄비가 내리면 목욕하여 몸의 먼지를 씻고, 

상쾌하고 맑은 바람 속에 유유자적하면서 지냈습니다. 

이름은 장미(薔薇)라 하옵니다. 

전하의 높으신 덕을 듣자옵고, 

꽃다운 침소에 그윽한 향기를 더하여 모시고자 찾아왔습니다. 

전하께서 이 몸을 받아주실는지요?"

 

 

자기를 장미로 소개한 이 꽃은, 우리가 아는 장미가 아니라 바닷가에서 자라는 해당화로 추청한다.

 

설총은 이두를 집대성한 신라 10현 가운데 한 사람이다. 무열왕 때 원효법사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정확한 생몰연대를 알 수 없다. 「화왕계」에는 모란, 장미(해당화), 할미꽃의 생태, 형태, 생장습성 등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는 점이 놀랍다. 이렇게 보면, 설총은 식물에 대한 이해와 관찰력이 뛰어난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학자 또는 식물학자라 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p 197

 

모란, 해당화, 할미꽃을 유심히 관찰하지 않는 이상, 알기 어려운 식물의 습성을 자세히 적어가며 설화를 지어, 신문왕에게 올렸던 설총. 그는 유학자이기 이전에 식물학자였다.

 

이토록 우리 역사에는 식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이 있었다. 왜 우리 이야기에는 눈을 감고, 외국의 이야기에만 귀를 쫑긋했었는지. 식집사가 된 지금, 이제라도 우리 역사 속 식물 이야기를 인지하고, 주의깊게 보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식물 책은 뭘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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