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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묘묘 고양이 한국사

[도서] 기기묘묘 고양이 한국사

바다루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오늘의 독서태교 책은 1년전에 출간된 『기기묘묘 고양이 한국사』. 물론 나는 고양이를 키우진 않지만, 고양이 자체는 꽤 좋아라하는 편이다. 뭐랄까, 고양이는 독립적(?)이면서도, 묘하게 기품있고, 고고해보인달까? 다만 나보고 키우라고 한다면, 그건 또 싫지만 말이다.


 

 

과거에 고양이에 대한 세계사 책은 여러번 읽은 적이 있었다. 덕분에 고대문명권에서 고양이는 어떤 존재였는지, 중세 서양에서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해갔는지에 대한 것도 꽤나 잘 알게 되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세계사적으로 보는 고양이에 대한 내용이다보니(심지어 저자도 외국인이고), 한국에서는 시대별로 고양이를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우리나라 역사 속의 고양이라고는 숙종이 애지중지한 고양이 ‘금손’의 이야기 정도? 진짜 딱 그정도였다. 그래서 우리나라 역사 속 고양이는 별 다른 이야기가 없는 줄 알았을뿐이고. 하하. 그러다 이 책을 보고나니, 내가 생각한 이상으로 우리나라 역사에서 고양이는 꽤 오랫동안 한국인들 곁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 지금처럼 ‘반려묘’써의 인식이 생겨나기까지는 꽤 오랜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우리 역사속 고양이를 이야기 하기 위해선, 그 고양이들이 어디서 왔는지, 고양이의 조상은 누구인지 거슬러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이부분은 패스! 대충 동아시아에 남아있던 원시 고양이들은 환경에 맞춰서 진화를 거듭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삵’이다. 가끔 칡(ㅋㅋㅋ)이라고 읽는 경우도 많은, 바로 그 삵! 야생 호랑이, 사자, 표범등이 사라진 지금의 한반도에서 자연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인 ‘삵’이다.

 

고양이의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극적인 여정을 거치는 동안, 동아시아에 남아있던 또 다른 원시 고양이들은 삵속이라는 새로운 종족으로 진화한다. 지금도 동아시아 일대의 야생에 널리 서식하고 있는 삵은 사막에서 험난한 진화의 고비를 넘은 고양이와 달리 온대기후 지역의 숲에서 살았다. 비교적 생존에 유리한 조건을 차지한 덕분인지, 순탄하게 동아시아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굳힐 수 있었다. p 035

 

 

 

그렇게 동아시아에서 살아남은 원시 고양이 중 일부는 삵이 되고, 또 일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고양이로 진화하며 오랜 시간이 흘렀다. 삵과 고양이에 대한 오래된 기록은 아쉽게도 한반도 사료는 없으나, 중국 한나라 저서에서 기록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에 고양이가 들어오기 전까지 살쾡이가 있었다는 사실은 한자의 역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자로 고양이를 가리키는 ‘猫(묘)’와 삵을 가리키는 ‘狸(리)’가 고대에는 서로 구분된 글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2세기의 한자사전인 《설문해자》는 “묘는 리의 일종”이라 적었고, 3세기의 한자사전인 《광아》도 “리는 묘이다”라고 직설적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는 곧 묘라는 글자 자체가 원래 삵을 가리키는 것이었고, 중국에 고양이가 널리 전파된 뒤에 비로소 삵과 분리되어 고양이를 가리키는 의미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고양이와 삵을 하나의 범주로 보는 시선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고양이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가리(家狸)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p 041

 

 

고양이와 살쾡이 사이에서 벌어진 ‘진화의 게임’에서 고양이가 최종적으로 승리한 이유는 무엇일까? 세부적인 원인은 다양한데, 거시적으로 봤을 때 가장 먼저 ‘시간’의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살쾡이와 인간의 공존은 기원전 35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서아시아의 고양이들은 그보다 두배 이상 앞선 기원전 7500년경에 이미 인간과의 공생을 시작하고 있었다. 더 오랜시간 인간과 접촉한 고양이는 인간에게 친화적인 방향으로 진화할 시간이 많았다. p 048

 

 

중국 남북조 시대의 역사서인 《후한서》에는 한반도 고대국가인 ‘부여’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이 기록이 한반도에 사는 고양이(또는 삵)의 최초 기록이다.

 

아쉽게도 고대 한반도의 사람들이 살쾡이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 직접적으로 증언하는 사료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중국의 《후한서》에는 부여의 특산물로 ‘?(놜)’이라는 동물의 가죽이 나오고, 이 동물은 표범과 비슷하지만 앞발이 없는 짐승이라는 주석이 추가되어 있다. 주지하듯 삵은 가죽의 점박이 무늬가 표범과 비슥하기 때문에 ‘놜’은 바로 삵을 가리킨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앞발이 없다는 주석은 삵이 앞발을 감추고 앉은 자세에서 비롯된 오해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것은 ‘식빵자세’라고 부르는 모습에 대한 가장 오래된 언급일 것이다. p 066

 

한반도의 고대국가 부여는 고구려보다 더 위에 위치해있는, 지금의 만주지역에 있다. 적어도 중국 2세기 저서에 삵에 대한 언급이 된 것으로 보아, 이미 같은 대륙에 위치했던 부여에 삵이 있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무엇보다 부여의 특산물이 삵이 가죽이라고 하니, 삵은 꽤나 자주 출몰하는 동물이었다. 물론 지금과 같은 반려묘같은 인식이 아니라, 그저 사냥당하는 동물에 불과했지만.

 

 

이제 고양이가 어떻게 신라로 들어왔는지 설명 가능할 것 같다. 9세기 전반, 장보고 선단이 이끄는 중국, 신라, 일본인의 교류는 이전까지와 달리 전방위적이고 무제한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에 살던 고양이 일부가 빈번하게 해상을 넘나드는 상선을 잡아타고 신라와 일본으로 자연스럽게 넘어왔을 것이다. 특히 다자이후는 장보고 선단이 일본과 교역하는 창구였으니, 우다 덴노의 일기에 언급된 고양이가 이 다자이후에서 왔다는 말은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또한 신라와 일본의 귀족들은 중국에서 들어온 물건이라고 하면 가산을 탕진할 정도로 수요가 컸기 때문에 중국에서 온 고양이도 덩달아 큰 사랑을 받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p 074

 

 

고양이에 대한 한국 최초의 기록은 김부식이 남긴 “아계부”라는 시다. 아침이 되어도 욹지 않는 닭을 꾸짖은 이 시에는 삵과 고양이가 서로 다른 짐승으로 나뉘어 등장하고 있으며, 고양이는 개와 대구를 이루어 대등한 짐승으로 나열되어 있다. 곧 고양이가 살쾡이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손목과 김부식의 글 가운데 무엇이 더 먼저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두 사람의 기록이 한반도에 살던 고양이에 대한 가장 이른 시기의 언급이라는 점이다. p 077

 

 

그러나 김부식의 시는 직접 고양이를 길렀다는 사실이 아니라, 누군가 고양이를 기른것으로 짐작게 하는 방증만을 전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고양이에 대한 한국 최초의 ‘증인’은 될 수 있지만, 그 자신이 ‘집사’는 아니었던 것이다. 따라서 역사에 분명히 이름을 남긴 한국 최초의 집사는 그보다 한 세기 뒤의 인물인 이규보가 된다. 그가 남긴 글을 모은 《동국이상국집》에는 “검은 아기 고양이를 얻다”라는 시가 실려있는데, 자신이 기르는 고양이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묘사한 것이 일품이다. p 079

 

 

우리나라 최초의 고양이 기록은 《삼국사기》 편찬으로 유명한, 고려시대 학자 김부식이다. 그가 최초로 고양이를 언급했다. 키웠다는 게 아니라, 단순히 ‘언급’만 한 정도였다. 반면에 고양이를 키웠다는 최초의 기록은 김부식과 같은 고려시대의 문인 이규보의 시에서 나타난다. 적어도 기록상으로 언급된 우리나라 최초의 고양이 집사는 ‘이규보’ 다.

 

검은 아기 고양이를 얻다 -이규보

 

가닥가닥 털이 파랗고

동글동굴 눈은 푸르고

모습은 범 새끼 같으며

울음은 사슴을 겁준다

붉은 끈으로 매어 두고

누런 참새로 먹이 주니

발톱 세워 들쑤시다가

꼬리 치며 점차 따르네

 

 

 

 

 

외환 -이색

 

추위 두려워 손님을 돌려보내고

불가에서 고양이와 친하노라니

득실이 서로 절반이어서

중화가 절로 새로워지네

 

위 시는 고려말 유학자 목은 이색이 지은 시다. 

 

이색이 1381년 겨울에 지은 이 시에서 고양이는 단순히 쥐 잡는 짐승에 머무르지 않는다. 손님을 돌려보낸 아쉬움과 고양이와 노는 즐거움이 서로 상쇄된다는 표현으로 미루어 봤을 때, 이색은 고양이를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 나아가 고양이와 교감하여 중화, 즉 하늘의 순리에 따르는 마음을 새롭게 빚을 수 있다고 예찬을 한다. 그에게 고양이는 존재 자체로 일상 속에서 기쁨을 주는 친구였던것이다. 이규보와 이제현 같은 앞선 시대의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이색의 관점은 고양이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의 등장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으며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애묘인’이라 부를 만한 수준이다. p 101

 

 

고려 말 사대부들의 구심점이었던 이색이 애묘인으로서 보인 모습은 그의 제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짐작된다. 예컨대 이색의 문객을 자처하면서 정몽주나 권근과 가깝게 교류하던 쌍매당 이첨이 집에서 고양이를 몇 마리 길렀는데, 한번은 이 고양이들이 공동으로 새끼에게 젖 먹이는 광경을 보고 시를 지었던 모양이다. 그 시를 읽은 권근은 이첨에게 새끼 가운데 한 마리를 주길 부탁하는 시를 써서 보냈다. 이것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확인되는 고양이 분양 기록이다. p 103

 

고려 중기 문인인 이규보에 이어서, 목은 이색까지. 고려말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점차 애묘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사극에서 제일 많이 접하는 시대가 바로 고려말, 즉 여말선초인데...당시 고양이에 대한 기록을 남긴 고려말 학자들은 사극에서 정말 많이 보았던 사람들인데!!! 그들이 애묘인이었을 거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치 못했다. 

 

 

이쯤되면 사극에서 목은 이색, 이인임 같은 당대 사람들이 고양이를 쓰다듬거나, 궁디팡팡하는 장면이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노릇이랄까. 당대 기록에 고스란히 남아있으니 말이다.

 

고려를 지나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고양이에 대한 기록도 점차 들어난다. 심지어 고양이 중성화, 고양이 입양에 대한 기록까지 나타난다. 물론 고양이를 사고파는 사람들이 ‘애묘인’으로써 사고판건지, 아니면 단순히 ‘가축’의 의미로 사고팔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말이다.

 

이 기록에서(선택요략, 이순지) 우리는 조선 초부터 정묘라는 이름으로 고양이의 중성화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고양이를 거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양이 구매와 고양이 들이기가 서로 구분되어 있어 전자는 ‘매매’이고 후자는 ‘분양’이라 짐작하기 쉽지만, 말과 소도 구매와 들이기가 따로 있는 것으로 미루어 둘은 지금의 ‘계약’과 ‘인수’에 상응하는 단어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거래절차가 있었을 만큼 당시 고양이를 사고파는 일이 활발했던 것이다. 고양이 매매와 중성화의 존재는 고양이를 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특정한 고양이를 골라 기르고 번식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p 115

 

 

조선에서 고양이가 지닌 의미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확대되었다. 재산을 지켜 주는 동물이라는 기본적인 인식에서 재산을 불러오는 동물로, 더 나아가 행운을 가져오는 존자개 되기에 이른 것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 가깝게는 일본의 마네키네코가, 멀리는 유럽의 장화신은 고양이 민담이 이러한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p 127

 

 

놀라운 사실은 고양이가 재산을 지켜주는 동물이라는 인식이 깔려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지, 재산이 많은(^^) 경복궁이나 창덕궁에도 고양이가 많이 돌아다녔다고 한다.

 

 

 

재산을 지켜주는 동물로 추앙받던 고양이지만, 그 반대로 고양이를 이용한 저주행위도 조선에서 왕왕 이루어졌다. 재산을 지켜주는 동물이 저주를 위한 재물로 이용되는 아이러니한 이야기라니.

 

한국에서 고양이 저주는 광해군 시기 계축옥사의 일환으로 처음 나타난다. 광해군의 이복동생 영창대군이 언급된 역모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영창대군의 보모 덕복, 덕복의 조카 김순복, 다시 그 아들 김응벽이 줄줄이 국문장으로 끌려오게 되었는데, 김응벽이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충격적인 자백을 토해낸 것이다. p 155

 

 

다른 미신도 대체로 쥐와 고양이의 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도둑’이라는 말일 것이다. 조선 후기의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고양이를 쪄서 도둑을 저주한다는 속설이 기록되어 있는데, 아마도 귀신이 된 고양이가 쥐로 비유되는 도둑에게 붙어서 괴롭히길 바란 듯 하다. 여기서 “고양이를 찐다”는 문구가 고양이를 산 채로 가마솥에 넣어서 죽인다는 뜻인지, 아니면 죽은 고양이의 시체를 구해다가 찐다는 뜻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전자라면 고양이 귀신이 도둑보다 자신을 해코지한 사람에게 먼저 달라붙지 않았을까? p 164

 

심지어 고양이를 이용한 조선판 짝퉁사건(사기극)도 있었다.

 

성종 25년에 웃지 못할 사건이 일어났다. 지방에서 공납품으로 올라온 삵 가죽 사이에 고양이 가죽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 삵의 가죽은 선사시대 인류의 사치품이었고, 조선시대 공납품 목록에 들어갈 만큼 가치 있는 물건이었으나, 고양이 가죽은 그렇지 않았다. 1295년에 고려가 몽골에 바친 물건 가운데 노란색 고양이 가죽이 등장하지만 이것은 일회적인 사건이었을 뿐이다. 서로 비슷한 동물인 삵과 고양이의 가죽이 이토록 가치가 다르다 보니, 지금으로 따지면 ‘조기’를 ‘굴비’로 둔갑시켜 파는 식의 사기가 당시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p 174

 

한반도 고대국가였던 부여의 특산품의 삵의 가죽이었듯, 조선에서도 삵의 가죽은 사치품으로 인기가 있었나보다. 다만 야생에 사는 삵을 잡기가 어려우니, 고양이 가죽을 삵의 가죽으로 둔갑시키는, 일종의 짝퉁판매가 생겨나곤 했다.

 

 

조선 후기로 넘어가면 ‘애묘’를 넘어선, 실학자들의 고양이 관찰에 대한 기록도 보이기 시작한다.

 

이익의 탐구가 언제나 관찰과 비판에 입각한 것은 아니었다. 이익은 고양이의 눈동자가 묘시(5시~7시)와 유시(17시~19시)에 둥글어지고, 오시(11시~13시)와 자시(23시~1시)에 가늘어진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고양이의 동공은 낮이 되면 감지하는 빚을 조절하기 위해 작아지고, 밤이 되면 최대한 많은 및을 감지하기 위해 커진다. 따라서 깊은 밤인 자시는 고양이의 눈동자가 가늘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장 커지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이익이 그답지 않게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적은 건 밤중에 고양이의 눈을 관찰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일 밤에 고양이를 관찰하더라도 주위에 등불을 켜 두었을 테고, 따라서 고양이의 눈동자는 일정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으리라. p 189

 

물론 지금처럼 과학적인 관찰까지는 어려웠겠지만, 당대에서는 고양이 눈동자 파악에 대한 획기적인 성과였을 것이다.

 

 

거기다 고양이가 사랑해 마지않는 캣닢에 대한 기록까지 있다. 특히 이 캣닙에 대한 기록은 조선을 훌쩍 지나 1100년, 우리 역사로 따지면 고려 초정도의 시기에 중국 송나라의 기록에서 발견된다.

 

흥미로운 점은 동아시아 사람들이 이미 오랫전부터 개박하(캣닢)의 효과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1100년경, 송나라의 한자사전인 《비아》에서 처음으로 “박하가 고양이를 취하게 한다”라는 말이 등장하고, 이 정보는 반세기 뒤에 일상생활의 각종 지식을 모은 《분문쇄쇄록》에 다시 한번 수록되었다. 조선사람들도 이 책을 읽으면서 고양이의 특별한 개박하 사랑(?)을 알게 되었다. 조선 의학을 대표하는 《동의보감》과 그보다 앞서 편찬된 《의침촬요》는 모두 이 책을 근거로 “고양이가 박하를 먹으면 취한다”라고 기록한다. p 194

 

고양이가 캣닙을 좋아한다는건 비교적 근대에 들어와 확인된 거라 생각했던 내 편견을 반성한다^_T...

 

묘마마라는 말은 ‘고양이 마님’ 또는 ‘고양이 엄마’ 정도의 뜻이어서 지금의 캣맘이라는 말과 정확히 일치한다. 실제로 묘마마가 돌본 이 고양이들은 그녀가 집안에서 키운 것이 아니라 도시의 밤거리를 자유롭게 떠돌던 길고양이였다. 이 점은 묘마마의 죽음으 ㄹ애도한 고양이가 집 안에서 밖을 향해 떠난 것이 아니라 집 밖에서 떠났다는 문구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조선의 가옥은 완벽히 닫힌 공간이 아니었으니, 묘나나는 자신이 사는 곳에 찾아온 길고양이를 융숭히 대접하고 고양이들은 집 안팎을 넘나들면서 그녀와 살았을 것이다. 묘마마의 이야기는 고양이 애호 문화가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모습과 함께 고양이로 넘쳐 나던 도시 풍경을 상상하게 한다. p 240

 

더 충격적인건.............캣맘이 조선시대에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와 이건 좀 충격. 여튼 이렇게 이땅에서 아주 오랜시간 사랑받던 고양이였는데 말이다. 하지만 불과 몇십년전만에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고양이를 요물로 보고, 가까이오면 멀리 내치고 그랬을까? 내 어릴적 기억속에 있는 할머니들도 고양이를 좋게 보지 않았고 말이다.

 

 

고양이, 골칫거리가 되다.

 

조선의 모든 사람들이 고양이를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고양이를 교정하려 했던 박인의 글에 묘사되는 것 처럼 “닭을 잡아다가 뜯어먹는” 고양이는 때론 “집안사람들이 괴로워하며 회초리로 등을 때리는” 동물이었던 것이다. 《성호사설》을 비롯한 여러 글에도 사람들이 도둑고양이를 잡아 죽이려 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녀석들에 대한 적의는 몇몇 사람에 국한되지 않았다. p 262

 

하긴 현대에도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조선이라고 오죽했을까. 나만해도 랜선으로 고양이를 보는 것은 좋아하지만, 내 눈앞에 고양이가 있는건 딱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니 말이다. 옛날엔 눈 앞에 고양이가 있으면 눈맞춤도 하고 그랬는데 하. 그런데..그도 그럴것이...‘캣맘’ 때문이라고 해야할까? 어쩌다 한두마리 길고양이가 보이는게 아니라, 캣맘들이 지네집도 아닌 공간에 길고양이들 밥준다고 고양이를 불러 모으면서 시작된 것 같다.

 

 

어느새 고양이 천국이 되고, 밤마다 고양이 울부짓고, 특히 고양이 짝찟기 철엔 와.. 그 소음이 소음이 진짜. 그뿐만이 아니다. 캣맘들이 방방곡곡에 있는 길고양이들을 불러모은 덕택에, 겨울마다 내 차 속에 고양이가 들어가진 않았을까 걱정꺼리도 한가득. 아니, 정말 길고양이 밥챙겨주는건 좋은데, 그럴거면 지네집앞에서 해야지 왜 공적인 공간에서 그러는걸까? 심지어 남의 집앞에서도 그러고. 신축아파트에 살면 좀 나아지겠거니 했는데, 왠걸? 맘같아서는 면상을 보고싶은 캣맘이,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고양이밥그릇, 물그릇을 가져다놓았다. 내참, 길고양이 챙기는 것도 상식선에서 챙겨야지. 휴.

 

 

결국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일부 몰상식한 인간들이 고양이를 사랑한다는 핑계로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어서 그런게 아닐까. 개를 싫어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이유도, 역시나 일부 몰상식한 개주인때문이고. 정말 개든 고양이든 사랑하는건 좋은데, 제발 상식선에서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조선 후기 고양이를 배척하는 현상이 두드러진 것은 단순히 개체 수가 증가해서만이 아니었다. 인구가 밀집되며 도시라는 하나의 거대한 소비 주체가 등장한 뒤 창고의 쌀을 갉아먹는 쥐의 심각성도, 그 쥐를 잡아 주는 고양이에게 느끼는 고마움의 크기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쌀이 귀중한 노동의 산물이자 생계였던 농촌에서와 달리 도시에서 쌀이란 돈을 주고 사면 그만인 상품이었다. p 268

 

 

여러 요소가 중첩되면서 고양이는 한때 누군가의 사랑을 받은 사실조차 잊혀진 채 사람들 곁에서 점차 사라져갔다. 심지어 개항기에 이르면 단순한 도둑을 넘어 요물이자 괴물로까지 인식되었고, 한 시대를 풍미하던 고양이 사랑은 흔적조차 찾기 어렵게 된다. p 270

 

흠흠.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캣맘으로 인해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현대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일이니, 이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고양이를 싫어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결국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고양이를 싫어하게 된 이유는 사회가 발전함에 따른 부작용이었다. 본디 고양이는 농촌에서 쌀을 갉아먹는 쥐를 잡기 위해 들여오기 시작한 동물이다. 헌데 도시화로 인해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농촌이 점점 쇠퇴했다. 반면에 도시화로 인한 상공업이 발달하며, 쌀을 돈주고 사먹는 시대가 왔다. 힘들게 농사지어서 쌀을 얻는게 아닌, 손쉽게 돈으로 쌀을 사는 시대. 그런 시대가 되니 쌀을 갉아먹는 쥐가 있더라도, 굳이 힘들게 쥐를 잡는대신 쌀을 다시 사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고양이가 필요 없어졌다는 뭐 그런 이야기랄까.

 

 

참 다행인 사실은 우리 역사속의 고양이는 서양에 비하면 잔혹한 참상은 없었다는 사실이다.(ex 마녀사냥;고양이는 마녀의 종). 다만 서양처럼 시대에 따라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좋은 가죽을 얻기위한 일종의 사냥동물에서, 농사를 망치는 쥐를 잡기위한 보안책으로, 이후 무료함을 다스리기 위한 반려동물의 위치까지 올랐다가, 도시화로 인해 다시 냉대받는 위해동물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고양이는 역사상 수많은 집사들에게 사랑을 받고 또 한편으로는 엄청한 혐오를 받고 있기도 한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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