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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왕후전

[도서] 인현왕후전

작자 미상 /조재현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오늘의 서평은 서해문집에서 출간된 고전문학인 ‘오래된 책방 시리즈’ 중 15번째인 #인현왕후전 이다. 서해문집에서 출간되고 있는 ‘오래된 책방 시리즈’ 내 개인적으로도 애정하는 시리즈라, 매번 신간이 나올 때마다 꾸준히 구입하고 있다. 참고로 오래된 책방시리즈는 고전소설(또는 고전문학)의 원문을 현재를 사는 우리가 읽기 쉽게, 우리글로 옮겨서 출간한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시중에 나와있는 『인현왕후전』에 대한 책을 보면 원문에는 없는 MSG가 첨가되어 있는 경우가 아주아주 많다(대표적으로 장희빈이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다는 내용이 아주 자세하게 쓰여있는 뭐 그런 이야기?). 뭐, 인현왕후전 자체가 일종의 ‘소설’이기는 하나, 그래도 당대에 기록된 사료이기도 한데, 여기에 더 많은 MSG를 뿌린 것이 시중에 널려 있는 『인현왕후전』이랄까? 예를 들자면..... 진수의 정사 『삼국지』를 보고, 나관중이 MSG를 미친듯이 첨가하여 소설 『삼국지연의』를 집필한 것과 같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원문을 그대로 우리글로 옮긴 것이기 때문에 책이 상당히 얇은 편에 속한다. 뭐 오래된 책방 시리즈가 대체로 책들이 얇다. 『고대일록』이나 『서유견문』, 『매천야록』처럼 우리 글로 옮겨도 페이지수가 방대한 고전도 있긴 한데, 뭐. 아무리 두꺼워봐야 벽돌책정도는 아니니 역시나 읽을만 하다. 여기서 함정은...내가 오래된 책방 시리즈를 계속 사는 것과는 별개로, 읽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 지금까지 읽은거라곤 오늘 서평을 쓰는 『인현왕후전』을 포함하여 『발해고』, 『하멜표류기』, 『동도일사』, 『징비록』 총 5권이다. 지금까지 이 시리즈가 24권까지 나왔는데, 독서 진척률이 너무 저....저조하다. 허허허. 이거 참. 출산하기 전까지 전 권 다 읽을 수 있겠지...ㅋㅋㅋㅋ

 

 

 

인현왕후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조선의 왕비중 한명이다. 그도 그럴것이 수많은 드라마에서 숙종과 인현왕후, 장희빈의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간혹 여기에 숙빈 최씨의 이야기까지 들어가는 경우도 있긴 하다. 뭐, 주연이 셋이든 넷이든 우리가 알고 있는 인현왕후의 이야기는 동일하다.

 

 

숙종이 장옥정이라는 나쁜 요녀에게 빠졌다. 옥정이 아들을 낳자, 그 아들을 세자로 봉하고 옥정은 희빈에 봉해진다. 장희빈에게 빠져있는 숙종은 결국 착하디 착한 본처 인현왕후를 쫓아내고 장옥정을 중전에 앉힌다. 그렇게 6년의 시간이 흐른뒤, 숙종이 본인의 잘못을 깨닫고 장옥정을 희빈으로 강등시키고, 쫓아냈던 인현왕후를 불러와 다시 왕비로 복권시킨다. 왕비로 복권된 인현왕후는 장희빈의 저주로 인해 오래 살지 못하고 죽는다. 숙종은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린다. 

 

 

이렇게 숙종은 요녀에게 빠진 로맨티스트, 장희빈은 요녀, 인현왕후는 현모양처로 그려지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숙종은 재위기간 내내 왕권강화를 위해 조정에 수많은 피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우리가 국사시간에 배우는 ‘환국’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환국’이란, 대충말하자면 숙종이 서인과 남인으로 갈려있는 신하들에게 권력을 줬다가 뺏는 등 본인의 입맛에 맞게 신하들을 좌지우지 한 것이라고 보면 쉽다. 바로 이때 서인측의 사람이 인현왕후였고(+숙빈 최씨), 남인측의 사람이 장희빈이다. 숙종은 장희빈을 예뻐하며 남인에게 권력을 주고, 서인을 대거 숙청시켰다. 그와 함께 인현왕후는 폐위. 6년 뒤  인현왕후가 복권되면서 서인이 권력을 잡고, 남인이 대거 숙청되었다. 그와 함께 장희빈은 사약. 숙종 사후에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이 왕이 되긴 하였으나, 이미 서인 세력이 조정을 잡고 있은 뒤였다. 경종은 후사가 없었고, 이복동생인 연잉군에게 왕위를 넘겨주니 그가 바로 영조다. 연잉군은 숙종과 숙빈최씨의 아들이다. 숙빈최씨도 인현왕후와 함께 서인측의 사람이었다. 이후의 역사는 모두가 알다시피 계속해서 서인이 권력을 잡았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인현왕후전』은  어디까지나 서인, 즉 승자의 기록이다. 정말 장희빈이 그토록 악녀였고, 요녀였는지 이 책만으로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뭐, 실록에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긴 하지만, 결국 실록자체도 승자의 기록임으로. 무엇보다 왕실 내의 저주행각이야 뭐 드문일도 아니었고. 아니 그것보다 저주한다고 정말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니.........아, 이건 요즘의 가치관이니 패스!

 

《인현왕후전》은  《인현성모민시덕행록》과 《인현왕후성덕현행록》 두 본으로 나눌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사건 전개나 내용의 흐름, 문장 표현까지 흡사하다. 다만 《인현왕후성덕현행록》은 인현왕후를 폐출하는 일을 두고 강하게 반발한 ‘박태보’를 자세히 기술해, 작품 전반부에는 내용의 중심이 인현왕후보다 오히려 박태보에 기울어지는 느낌이다. 《인현왕후성모민씨덕행록》은 박태보에 관한 내용이 소략한 대신, 작품 말미에 다시 박태보를 언급함으로써 박태보의 충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 《인현왕후전》을 누가 썼는지 작자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작품을 읽어보면 인현왕후의 측근이 지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거의 모든 학자들이 인현왕후의 궁인이나 혹은 서인의 세력 후예라 추정한다. - 인현왕후전에 관해 中

 

내가 인현왕후전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초등학생때는 만화책으로 된 인현왕후전을 읽어보았고, 중학생때는 청소년용 인현왕후전을, 고등학생때는 무려 세로쓰기 였던, 그 옛날 울 엄마님이 읽었던 인현왕후전을 읽었더랬다.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대충 내용들은 기억이 나는데, 확실한건 내가 읽었던 모든 인현왕후전에는 수많은 MSG가  첨가되어 있었다는 것! 원문은 이렇게 짧고 간결한 것을...심지어 원문에는 어릴때 읽었던  책에는 없는 내용도 있었다. 바로 인현왕후전에서 충신이라 일컬어지는 박태보 이야기. 세상에, 이번에 읽은 원문 고전 인현왕후전은... 부제로 ‘충신 박태보전’이라 붙여야 할 정도로 박태보에 대한 이야기가 참으로 많았다.

 

슬프다! 예로부터 충신과 열사로 죽은 이도 많지만 박태보의 충성스러운 절개는 용봉과 비간 이후 으뜸이었다. 아름다운 이름이 세상에 가득해 천추만세 후에도 금석에 새겨 널리 전하게 될 것이니 어찌 죽었다고 하리오마는, 칠십되시는 부모님이 아직도 살아계셨으니 지극히 참혹한 일이었다. 박태보의 죽음을 보고 장안의 선비와 백성 중 울지 않는 이가 없으며, 간신이나 소인배마저도 감탄했다. p 075

 

 

아름답다! 박태보의 충성은 고금에 없는지라, 후세 사람들의 본받을 바로다! p 144 (인형왕후전 제일 마지막 문장^^)

 

분명 책 제목은 인현왕후전인데, 박태보에 대한 이야기를 몇 십페이지. 심지어 책을 끝내는 마지막 문장마저 박태보의 충성. 인현왕후전을 작성한 이가 인현왕후의 궁녀든, 서인세력이든 그 누구든 정말 확실한건, 박태보와 큰 인연이 있는 사람이거나 혈연이거나 둘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마저 든다. 분명 내가 읽은건 인현왕후전인데, 기억에 남는건 인현왕후의 폐위를 반대하다 죽은 충신 박태보와 박태보를 잔인하게 고문하는 숙종뿐..^_T

 

 

박태보를 빼고 인현왕후전을 논한다면, 뭐 책 처음부터 끝까지 인현왕후는 아주 신비롭고 성스러운 어린시절을 지나 아주 어질고 현숙한 왕비다. 반면에 장희빈은 그저 간사하고 교활하며 약삭빠르고 민첩한 요녀로 묘사된다. 그렇다면 두 여자 사이에서 저울질했던 숙종은 어떻게 묘사될까?

 

예로부터 위대한 황제와 총명한 군주(왕)라도 한번은 참소를 듣거니와, 숙종대왕의 성스럽고 신령한 덕과 문무를 겸비하신 뛰어난 자질로도 장씨의 유혹에 빠져 이토록 나라의 근본을 어지롭게 하심은 실로 의외였다. p 085

 

 

대장공주와 명안공주가 후를 뵙고 한편으로는 슬퍼하고 또 한편으로는 기뻐했다. 그리고 이것이 모두 전하의 은덕이며 중궁의 성덕임을 말하며 즐거워하셨다. 오로지 전하의 은혜를 감사드리며 축원할 뿐 지난 6년 동안의 고초에 대해서는 말씀을 내지 않으시고 모두가 전하께서 총명하신 덕탁에라 말했다. p 099

 

 

경자년 6월 초파일 묘시에 전하께서 경희궁 응복전에서 승하하시니, 이때 춘추가 예순셋이었다. 온나라가 망극하였으니, 그 성덕과 큰 도량, 신묘함과 문무를 견비하심이 만대의 뛰어난 군주셨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참소에 속은 군주는 많았으나, 오래지 않아 의혹을 풀고 분명히 깨달으셔서 밝고 환하며 올곧으셨던 분은 숙종대왕께서 역대 제일이셨다. p 141

 

아주 잠시 잠깐 요녀의 유혹에 빠졌을 뿐, 결국 그 모든것의 잘잘못을 깨달았으니, 밝고 올곧은 역대 제일의 대왕이란다. 애초에 밝고 올곧은, 사리분별이 똑바른 사람이었으면 요녀에 빠질일도 없지않았을까요, 허허. 이거 참. 하지만 뭐 어떡하겠나. 조선은 엄연이 유교국가이고,  왕이 다스리는 나라이며, 왕의 위엄이 굳건해야하니! 근데 숙종으로 인해 수 많은 서인들이 숙청당했으니, 서인 입장에선 이 문제를 어떻게든 집고넘어가야겠고, 근데 그러자니 왕을 상대로 ‘니가 잘못했잖아!’라고 하지는 못하겠고. 결국 그 책임은 오롯이 장희빈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던 것이다.

 

 

뭐, 장희빈의 아들이 왕(경종)이 되었다고 한들, 경종은 힘이 없었고 권력은 서인이 잡고 있었으니 장희빈을 악녀로 몰아세우더라도 서인 입장에선 부담이 1도 없기도 했고 말이다. 무엇보다 경종의 후계자는, 경종의 이복동생이자 서인측 사람인 숙빈 최씨의 아들 연잉군이었으니까.

 

이때 숙인 최씨가 왕자(훗날  영조)를 탄생하셨는데 이미 세 살이었다. 기상이 비범했으므로 전화와 후께서 매우 사랑하셨다. 후께서 밤낮으로 어루만지며 아끼시기를 마치 친자식처럼 하셨다. p 105

 

그러니 이렇게 숙빈 최씨의 아들 연잉군이 훗날 왕이 될 명분까지 만들어주지 않았겠는가. 정말 서인들의 치밀함이란!

 

서오릉에는 숙종과 숙종을 사랑하고 섬겼던 네 여인이 잠들어 있다. 결혼 뒤  채 2년도 못 살다 간 인경왕후는 남편 숙종을 얼마나 이해하고 사랑했을까? 두 번째 왕비인 인형왕후는? 인현왕후가 세상을 떠났을 떄, 숙종은 용포자락을 모두 적실 정도로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고 한다. 숙종은 인현왕후의 혼전앞에 서서 무려 네차례에 걸쳐 직접 지은 제문을 읽으며 통곡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자신이 죽은 뒤에는 인현왕후와 함께 있을 수 있도록 미리 인현왕후 봉분의 오른쪽을 비워두라 명한다. 그렇다면 인현왕후는 그토록 무섭게 자신을 내쫓아 6년 동안 치욕의 세월을 살게 한 숙종을 깨끗이 용서했을까? 세 번째 왕비로 들어와 전전긍긍하며 남은 세월을 보낸 인원왕후는 어땠을까?

 

 

무엇보다 명릉의 건너편, 키 높은 나무들에 앞이 막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대빈묘에 있는 그녀, 장희빈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약을 거부하는 자신을 모습을 보고, ‘숟가락으로 억지로 입을 벌린 뒤 약을 들이부어라’라고 궁녀들에게 명한 남편을 원망하지 않을까? 그보다, 죽어서까지 숙종과 인현왕후가 함께 있는 모습을 음지에서 지켜보도록 한 후손들에게 서운타 할지도 모른다. -옮긴이 머릿말 中

 

숙종은 인현왕후와 장희빈, 두 여인에게 휘둘리던 우유부단한 남자가 절대로 아니었다. 그는 태어나면서 서인과 남인의 예송논쟁으로 골치아파하던 부친 현종을 보고 자라며, 신권이 강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던, 왕권강화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왕이었다. 해서 어린나이에 즉위했음에도 정치오백단이었던 서인의 거두 송시열과 기싸움을 하던, 떡잎부터 다른 노련한 왕이었다. 그런 숙종이 왕권강화의 카드로 내밀었던게 바로 장희빈과 인현왕후, 두 여인을 사이에 두어 서인과 남인사이를 저울질 하는 것이었다. 이후에 추가로 들이민 카드가 연잉군(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였고.

 

 

뭐, 지금 관점에서 보면 숙종은 일종의 나쁜남자st일지도. 적어도 이후에 누군가 숙종과 인현왕후, 장희빈의 드라마를 만든다면(+숙빈 최씨), 서인 입장에서 쓴 그토록 뻔한 이야기는 지양했으면 좋겠다(심지어 질려!!!). 오히려 숙종에 포커스를 맞춰서, 그가 왕권강화를 하는 과정에서 궁중 여인들과 서/남인을 저울질 하던 모습을 그리는 것이 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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