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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모자 좀 벗겨줘

[도서] 녹색모자 좀 벗겨줘

둥시 저/이영구,이민숙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예상했듯 바이든 시대가 되도 미·중 간의 헤게모니 싸움은 변화가 없다. 부상하는 신흥강국과 이를 경계하는 기존 강국 간의 싸움을 말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이번에도 틀린 것 같지 않다. 이 대결을 두고 많은 이들은 이제 노골적으로 어느 편을 들어야 한다는 말도 한다. 물론 상대적으로 미국 편을 들자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코로나 팬더믹 이후 중국의 편을 들자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있어야 중립을 말하는 정도다. 최근 출간된 이장훈 칼럼니스트도 근작 <미국과 중국의 대격돌>에서 미국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위해 독일 제국의 황제로 1차 대전을 이끌었던 빌헬름 2세와 시진핑 주석을 비교하면서 시진핑의 몰락을 예고한다.

그런데 근대의 시작점의 사례를 곧바로 지금의 미중 관계로 대입하는 것은 적잖이 위험해 보인다. 우선 누가 더 개방적인 국가인가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체제상으로는 미국이 자유민주주의를 주창하고, 국제간의 개방을 말하지만, 실질적으로 자유시장 경제를 가장 흐트러뜨리는 측은 미국이다. 보호무역주의의 극단을 달리면서 중국산을 막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화웨이의 5G를 대표적으로 막는 데 쓴 기밀 유출이다. 역시 자신들이 이런 정보 해킹을 해 본데서 오는 독선이다.

이런 흐름은 바이든 시대에도 더더욱 확산되는 분위기다. 트럼프가 자신의 취향에 따라 막무가내식이었다면, 바이든은 예의 냉철한 국가시스템을 바탕으로 대중국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싸움이 막연히 힘의 대결로 끝날 수는 없다. 과거라면 힘으로 굴복시킬 수 있었지만, 중국의 전략 무기 체제가 이미 미국을 위협하는 만큼 힘으로만 밀어붙일 수 없다.

힘으로 안되면 과거 플라자 합의 등을 통해 일본 등을 굴복시키던 국제 무역 질서의 조율자의 역할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어떤 카드를 내놓아도 중국은 유연하게 그 방법을 넘어서고 있다. 특히 EU나 러시아, 스탄 국가, 아프리카 등을 우방으로 확보해 가면서 더 자유로운 무역의 선구자처럼 보이는 전략을 쓰고 있다. RCEP 등 광범위한 국제 자유무역 결연체로, NAFTA 조차 지지부진한 미국을 위협한다.

이렇게 갈 때 무엇이 진정한 미래의 판세를 결정할까를 생각한다. 어떻든 가장 큰 힘은 국민들이 얼마만큼 자존을 갖고 그 나라를 따르느냐가 될 것이다. 그런 힘이 문화면서 결국 그 나나를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 민족의 애환을 잘 담아내는 소설은 그 나라의 현재를 읽는 가장 흥미로운 척도 중에 하나다. 근대 미국이 성장할 때는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스콧 피츠제럴드, 존 스타인벡, 허먼 멜빌, 마크 트웨인 등이 미국 민초의 마음을 어루만져 줬다.

하지만 당대 미국 작가 가운데 민중의 삶에 근접한 작가는 찾기 힘들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시절에 애독하던 폴 오스터 정도가 눈에 띤다. 그런데 정부로부터 탄압받았을 것 같은 중국에는 만만치 않은 작가들이 있다. 위화, 옌롄커, 모옌, 츠쯔젠, 류전윈 등은 모두 농민, 농민공, 도시 빈민들에게 따스한 시선을 던지는 작가들이다. 쑤통, 차오웬쉬엔 등도 좀 어린 층을 대상으로 하지만 민중의 힘을 바탕에 깔고 작품을 쓴다.

그런 작가 중에 요즘 눈에 띄는 인물이 둥시(東西). 둥시는 1966년생이 소설가 톈다이린(田代琳)의 필명이다. 그런데 이 둥시라는 뜻이 우리 말로는 물건이라는 뜻인데, 중국에서는 욕설로 . 자식. 새끼라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결국 스스로의 필명을 낮추려는 작가의 의도가 보인다. 작가는 그의 소설의 배경에도 많이 나오는 중국 광시성 서북 톈허현(天峨?)의 산촌 태생이다. 다행히 공부에 소질이 있어 1985년에 허츠사범학교(河池??)를 졸업하고, 고향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는다. 그런데 학교에 머무르지 않고 현 선전부 직원, 비서, 농민을 거친 후 1995년부터는 광시일보(?西日?) 기자를 거쳐서 작가로의 길에 접어든다. 작가로서 그는 데뷔이후 상당히 주목을 받았다. <언어없는 생활 ?有?言的生活>로 루쉰문학상 중편문학상으로 시작으로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특히 그의 소설은 이야기 구조가 독특해 영화나 드라마로 20여편이 제작될 만큼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는 2008<언어없는 생활><미스터 후회남>(원제:后悔?, 2005년 출간) 등이 번역되어 주목을 끌었는데, 이후 다른 작품이 소개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금년 2월에 14년의 공백을 깨고, <녹색모자 좀 벗겨줘>(원제 ?改的命, 20155월 출간)가 번역 출간됐다.

원제는 <운명 바꾸기>인데, 제목을 <녹색모자 좀 벗겨줘>라고 한 것은 중국에서 녹색모자가 낮은 계급, 하층민을 뜻하는 색으로 일반인들이 터부시하는 데서 따왔다고 한다.

<녹색 모자 좀 벗겨줘>의 가장 큰 매력은 술술 편하게 읽힌다는 점이다. <미스터 후회남>만 해도 인물을 따라가다보면 혼란스러워 책장이 쉽게 넘겨지지 않는다. 반면에 이번 소설은 한 가족에게 펼쳐지는 3대의 가족사를 연차적으로 다루고, 이야기 전개도 빠르기 때문에 금방 책장이 넘어간다. 10부작 정도로 방송되는 드라마처럼 빠른 이야기 전개가 특징적이라, 45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이지만 하루면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소설은 주인공 왕창즈가 대학에 떨어지고, 시장대교 중간에서 떨어질 것을 고심하면서 시작된다. 교육 당국은 그가 베이징대나 칭화대 등에 먼저 지원하는 바람에 지역 대학에 입학을 기회를 놓쳤다고 한다. 커트라인을 20점 넘게 점수를 얻고도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이 소설 마지막에서 가장 쓰라린 결론으로 연결된다.

고심 끝에 죽지 않고, 집에 돌아가자 아버지 왕화이는 탄원을 위해 교육국에 찾아가 항의를 시작한다. 그런데 교육당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결국 왕하이는 건물 가장자리에서 목숨걸고 항의를 하다가, 떨어져 반신불수가 되고 만다. 고향 집에 돌아온 왕하이는 자신의 힘든 삶이 자식에게 다시 연결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왕창즈를 현으로 보내면서 말한다. “자식이 출세만 할 수 있다면 부모가 겪는 고통은 다 훈장이다

그런데 왕하이가 시위할 때, 재수할 돈을 주겠다는 교육국장의 말은 허언이었다. 죽기살기로 학원을 들어보려 하지만 일하는 몸으로 수업을 감당할 수 없었다. 왕창즈는 서서히 현에서 일하는 농민공으로 적응해 간다. 더욱이 작업반장인 허구이의 장난에 속아 임금마저 떼이자, 결국 부동산회사 사장 린쟈보를 대신해 감옥살이를 하기도 한다.

그 시간 고향 마을에는 이웃의 중매로 허샤오원이 민며느리로 들어와 창즈의 부모와 생활한다. 몇 번의 곡절이 지나고 둘은 현으로 나와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살림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데, 아이까지 생긴다. 그때 왕창즈의 고향 친구인 마사지 샵 주인 장후이가 허샤오원에게 같이 일할 것을 제안한다. 마사지 일은 자연스럽게 매춘으로 연결된다. 서서히 왕창즈도 그 현실을 알지만 매춘 한번으로 자신의 월급 300위안을 버는 것을 알기에 애매모호한 자세를 취한다.

아들 부부와 손자의 탄생이 걱정되는 왕하이 부부는 결국 현으로 나와서 구걸 생활을 한다. 거기에 왕창즈는 건설 현장에서 떨어져 피투성이가 된다. 다행히 회사는 그에게 위로금 2만위안을 준다. 왕창즈로는 신비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친구 류젠핑의 제안으로 이미 힘을 잃은 남성 기능도 피해보상을 받기 위해 작전을 시작한다. 그런데 현에서 한 DNA 검사에서 아들 왕다즈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결과를 받는다.

이제 수많은 고민들의 연속이다. 성으로 가서 다시 큰 돈을 들여서 다시 검사를 받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여의치 않자, 왕창즈는 자기 아들을 부유한 집에 입양 보내는 방법을 고민한다. 그리고 그 대상이 나오고, 어렵사리 그 일을 시작한다.

중간까지만 들어도 우리는 왕하이, 왕창즈 부자의 지긋지긋한 가난에 동정이 간다. 그들에게 가난은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굴레로, 부자가 교육국이나 법원에 항의를 갈 때 들고가는 작은 걸상 만큼이나 처량하기도 한다.

결국 부자집에 보낸 3대인 왕다즈는 그런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아들을 보낸 후 아내 허샤오원마저 떠난 왕창즈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소설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허삼관 매혈기에 나오는 지긋지긋한 빈민들의 삶이 기억난다. 또 옌롄커와 류전윈 소설에 등장하는 농민공들의 애환도 떠오른다.

그런데 나는 이런 소설 속 주인공들의 모습이 결과적으로 중국을 버티는 힘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개인적으로 사람들에게 중국 소설을 읽으라는 말을 많이 한다. 우선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페이소스와 유머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소설 역시 왕하이와 왕창즈 부자가 삶을 견뎌내가는 비장미를 느낄 수 있다. 위화의 추천사가 앞에 있는데, 그도 해바라기 껍질을 밟았을 때 들었던 생기발랄한 소리를 떠올리며 작품의 어휘에 맞는 적절한 어휘를 찾아내고 싶었다. 생기발랄, 그래 생기발랄이 딱 어울린다며 이 작품이 가진 특징을 짚어냈다. 두 번째는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역사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는 역사랄 것은 없지만 중국의 도시화에 대한 도시민과 농민들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세 번째는 중국인의 천성을 알 수 있다는 것인데, 이 소설속 주인공들이야만로 그런 가장 좋은 예다. 또 작가에 따라 각 지역별 사람들의 습관과 문화를 알 수 있는데, 이 설은 광시성의 낙후된 현(한국의 군 단위)의 문화를 잘 알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중국은 미국과 피터지는 헤게모니 쟁탈전을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들의 힘이 어디에 있는가를 가끔씩 고민한다. 그런데 그 힘이 이렇게 가난에 쩔고, 권력에 짓밟히고, 억울한 민중에게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니체는 "역경을 걷는 것이 선이다"라고 말한 것도 그런 의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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