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걸 소녀’ 오마이라가 가르쳐 준 희망
분쟁이 있는 나라에 가면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구걸하는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아프가니스탄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인과 돈이 좀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어김없이 달려들어 손을 내밉니다. 이들 대부분은 아이들이나 전쟁 중에 다쳐 팔다리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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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오마이라도 이렇게 구걸하는 아이들 중 하나였습니다.
나는 오마이라를 카불 임시 학교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유난히 열심히 공부하던 오마이라의 얼굴이 기억에 남았는데, 우연히 거리를 지나다가 그 아이가 구걸하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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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라의 집을 수소문해 찾아갔습니다. 아이는 다 쓰러져 가는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천장을 올려다보니 한쪽이 뚫려 하늘이 그대로 보였습니다. 전쟁 중에 로켓이 떨어져 지붕 한편이 날아간 것입니다.
오마이라는 그 집에서 몸이 아파서 거동도 잘 못하는 엄마와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전쟁 중에 돌아가셔서 오마이라가 하루만 구걸을 안 해도 식구들이 다 굶어 죽게 될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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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촬영을 하며 오마이라와 차츰 가까워졌습니다.
오마이라는 공부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사실 당시 아프가니스탄에는 여자가 학교에 다니는 것을 주제넘은 짓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오마이라의 엄마는 아이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오마이라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나 같은 인생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해 내 마음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김영미
열심히 공부해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하던 오마이라.
수줍은 듯 희망으로 빛나던 아이의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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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을 떠나기 전, 나는 오마이라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습니다. 너무 새것을 사 주면 혹시 남자아이들에게 빼앗길까 봐, 취재할 때 쓰던 A4지 뒷면의 여백을 쓰라고 손수 묶어서 노트 몇 권을 만들었습니다.
사실 얼마라도 돈을 주고 싶었지만 아이에게 그런 횡재는 오히려 더 해가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 복권을 아이 일생에 몇 번이나 맞을 수 있을까요.
아이는 내가 만든 노트를 받고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아줌마, 저 선물이라는 걸 처음 받아 봐요. 이렇게 좋은 노트, 감사합니다.”
아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흐뭇했고 감동이 몰려 왔습니다. 폐지를 노끈으로 묶어 만든 노트가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저리 좋아할까. 오히려 나는 그런 폐지들이 놀라운 선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오마이라에게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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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난 지금, 스무 살인 오마이라는 시골학교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편견에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한 덕분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은 결혼을 일찍 하는 터라 그녀는 벌써 예쁜 남매까지 낳았습니다.
척박한 땅에 태어났지만 꿈을 놓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극복해 나간 오마이라. 나는 그녀의 성장을 지켜보며 희망이라는 단어의 참된 의미를 알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