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바그다드 최고의 맛집을 소개합니다

 

 

 

2002년 11월, 나는 전쟁이 나기 전의 이라크를 촬영하기 위해 바그다드로 향했습니다.

 

그때 나의 취재를 방해했던 가장 큰 요인은 사담 후세인의 철통같은 독재 정치였습니다. 통역이나 운전기사는 사담 정부가 정해 주는 정보요원들이었습니다. 어디를 취재하든 먼저 그들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감시 때문에 기본적인 취재도 힘들었고 특히 일반 시민을 만나기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가령 내가 시장에 가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싶다고 하면 그들은 인터뷰할 사람을 미리 대기시켰습니다. 처음 한동안은 미리 준비시킨 사람들인 줄도 모르고, 사실은 이라크 사람들이 사담 후세인을 무척 존경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러다가 사람들 대답이 하나같이 판에 박힌 듯 똑같다는 걸 알고는 눈치를 챘습니다. 무슨 질문을 해도 후세인 찬양부터 나왔고, 결정적으로 인터뷰이들 중 ‘겹치기 출연’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 + +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취재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는 다른 방법을 써 보기로 했습니다. 한국에서 맛집을 소개하는 방송을 했던 경험을 살리기로 한 것입니다. 바그다드의 맛집을 소개한다고 했더니 이라크 간부들도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간 곳이 바그다드 최고의 맛집으로 알려진 ‘아하마드의 아침밥’입니다. 티그리스 강변에 있는 이 식당은 한국으로 치면 청진동 해장국집 정도였습니다. 메뉴도 ‘바길라’라는 음식 하나였습니다. 삶은 콩 위에 소스를 뿌린 다음 계란 프라이로 덮은 건데, 이라크 사람들은 아침 식사로 즐겨 먹습니다.

 

직접 요리를 하는 식당 주인 아하마드는 2대째 손맛을 지켜 내려오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나도 먹어 보았는데 ‘대박 식당’답게 정말 맛있었습니다.

 

+ + +

 

아하마드의 아침밥은 이라크 서민의 생활을 한눈에 보여 주는 곳이었습니다. 나는 하루건너 한 번씩 아침 먹으러 온다는 명목하에 이 식당을 찾았습니다. 아하마드 씨를 졸라서 그들이 재료를 사 오는 시골 농장도 따라갔습니다.

 

이라크 간부들은 식당이나 농장 따위를 찍는 동양 여자를 별로 위험하게 여기지 않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틈틈이 정보요원들의 눈을 피해 “이렇게 장사가 잘되는데 전쟁 나면 어쩌죠?”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주유소, 옷가게 등으로 점차 영역을 넓혀 전쟁 전 이라크 서민들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 +

 

몇 개월 후 전쟁이 일어났고 바그다드는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잠시 한국에 나와 있던 나는 다시 바그다드로 들어가 아하마드의 식당을 찾았습니다. 예상대로 식당은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단골손님이 줄을 길게 서 있던 자리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습니다.

 

+ + +

 

며칠 뒤 물어물어 아하마드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맨발로 뛰어나올 정도로 반가워했습니다.

 

전쟁 나기 직전 그는 종업원들을 모아 놓고 고향으로 돌아가라며 여비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던 그는 곧 시름에 젖었습니다. 내가 찾아가기 전날 밤에 로켓이 식당으로 날아들어 건물 한쪽이 많이 부서졌다는 것이었습니다.

 

+ + +

 

2주쯤 지나 전투가 잠잠해졌을 무렵, 아하마드와 나는 식당을 보러 갔습니다. 그의 아내가 또 폭격이 있으면 어떡하느냐며 가지 말라고 애원했지만 그는 고집불통이었습니다.

 

식당은 로켓을 맞았다고는 해도 그렇게 많이 부서지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나름 안심이 되었는데 아하마드는 가슴을 움켜쥐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 식당인데, 아버지에 이어 40년을 지킨 나의 보물인데 이렇게 부서지다니….”

 

아하마드는 흐느꼈습니다. 나는 식당 앞에서 울고 있는 이 노인네가 안쓰러웠습니다. 그는 주저앉아 일어날 줄 몰랐습니다. 그 전에 나는 전쟁이 나면 죽고 다치는 것만 피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소시민이 일터와 재산을 잃어버리는 것이 더 큰 피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 +

 

그때 갑자기 식당 앞에 차가 한 대 서고, 운전석에 있던 남자가 창문을 열고 소리쳤습니다.

 

“어이 아하마드 씨, 언제 식당 문 다시 열어요? 당신이 만든 바길라가 먹고 싶어요. 전쟁은 전쟁이고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하마드와 같이 눈물짓고 있던 나는 순간 웃음이 나왔습니다. 지금 나라가 한창 전쟁 중인데 겨우 한다는 소리가 아침밥 먹고 싶다는 말인가?

 

그 순간, 아하마드의 눈이 반짝였습니다. “걱정 마요. 곧 문 열 거니까”라고 소리치고는 벌떡 일어나 가게를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사이 단골손님들이 여럿 식당 앞에 나타났습니다. 나는 손님들에게 “아하마드의 아침밥이 다시 문 열길 바라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아주머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같은 서민이 정치를 얼마나 알겠어요? 그저 전쟁이 나서 즐겨 가던 맛집이 로켓을 맞는 것이 슬플 뿐이에요. 빨리 전쟁이 끝나서 가족들과 아침 먹으러 오고 싶어요.

 

+ + +

 

전쟁이 앗아 간 것은 바그다드 사람들의 행복이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평범한 행복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행복, 학교 가며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행복, 단골손님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요리사의 행복, 맛집을 찾아 외식을 하는 가족의 행복….

 

 

                                                                                                                              ⓒ김영미

 

 

바그다드의 맛집 아하마드의 아침밥이 나에게 알려 준 것은 세상 누구나 이런 행복을 지킬 권리가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 + +

 

몇 개월 후, 아하마드는 식당을 다시 열었습니다. 종업원들도 고향에 남기로 한 한 명 빼고 모두 식당으로 복귀했습니다.

 

아하마드의 아침밥은 지금도 성업 중입니다. 이라크 전쟁은 2011년 미군의 완전 철수로 끝났지만, 이라크는 여전히 시름에 젖어 있습니다. 그래도 이라크 사람들이 아하마드의 바길라를 먹고 기운을 좀 냈으면 합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안녕하세요.

<사람이, 아프다> 연재를 읽어 주시는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성껏 달아주신 댓글은 소중하게 읽고 있습니다.

일일이 댓글을 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서 늘 아쉽고 죄송합니다.(__)

 

<사람이, 아프다>가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책 보러 가기

그래도 연재는 3회 더 남았으니까 계속 관심 가져 주세요.^^

 

감사합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19

댓글쓰기
  • bijousy

    http://blog.yes24.com/document/6126940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어느 곳이든 맛집은 꼭 있는 것 같아요.

    2012.02.28 22:48 댓글쓰기
  • Raye

    http://blog.yes24.com/document/6127036
    드디어 출간됐군요. 축하드립니다!

    "전쟁은 전쟁이고, 먹고는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에서 글의 분위기가 확 달라지네요.
    소소한 행복을 전부로 여기며 사는 이들에게 전쟁의 폐해는 가슴아프지만 또 그렇기에 소소한 행복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의 다음세대는 이 역사를 딛고 더욱 찬란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거라 희망합니다:)

    2012.02.28 23:43 댓글쓰기
  • 니코

    http://blog.yes24.com/document/6128800
    출간축하드려요~ 오늘도 가슴이 따뜻한 얘기 잘 읽고 갑니다^^

    2012.02.29 10:21 댓글쓰기

PYBLOGWEB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