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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도서]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저/권미선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알지도 못하는 남미의 모든 것들이 화려하고 열정적이고 이국적으로 보이지만, 그 중 가장 궁금하고 끌리는 것은 역시 음식이다. [운명의 딸]에 이어 두 번째로 남미 소설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토록 황홀한 맛과 감각의 세계라니!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도록 자유롭고 감각적인 작가의 문장들에 그저 허허 웃으며 끌려가 한참 살다온 것만 같다.

1910년 경의 멕시코, 세 딸 중 막내딸로 태어난 주인공 티타는 '막내딸은 죽을 때까지 어머니를 돌봐야한다'는 전통 때문에 사랑에 빠진 페드로와 결혼하지 못한다. 심지어 페드로는 티타와 가까이 있고 싶은 욕심에 티타의 어머니가 제안한 그녀의 언니 로사우라와의 결혼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들의 사랑은 오히려 마음을 듬뿍 다해 만든 요리를 통해 더 강렬하게 타오르고 마법처럼 그 요리를 먹은 사람들은 그리움과 슬픔과 열정에 휩싸이게 된다.

난폭한 독재자처럼 느껴지는 마마 엘레나와 불행해 보이는 로사우라의 삶은 우리에게도 그리 낯선 모습이 아니다. 그녀들의 삶은 왜 이리 처참하게 억눌려야 했고 나중엔 주변 사람들까지 억압하며 고통을 주도록 이어지고 말았을까. 그들은 분명 시대와 상황의 희생양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과연 억압되고 표출되지 못한 욕망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일까. 내 안에서 나를 행동하게 하는 이성과 판단의 근거는 과연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일까. 내 삶에서 나도 모르게 나 스스로 억압해온 것이 뭐가 있었나 돌아보게 되었다.

이야기는 한참이나 불행하게 흘러간다. 동생이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한 언니, 티타가 자기를 죽을 때까지 돌보기 싫어 분명 페드로와 도망치거나 몰래 만나고 말거라 의심하는 마마 엘레나, 결혼 했기에 의무를 져버리지도 못하고 티타를 사랑하는 마음은 점점 더 커져가는 페드로와 저절로 마음이 페드로에게 향하는 티타, 그런 티타를 한결 같은 태도로 사랑하게 되는 의사 존.

왜 결혼 전 로사우라와 티타는 서로의 마음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을까.
페드로와 티타는 서로 의논하지 않았을까.
마마 엘레나와 대화가 가능하진 않았겠지만 티타나 페드로는 왜 그녀를 설득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그 앞에서 강력하게 주장했더라면 어땠을까.

티타가 열 다섯의 어린 나이였기에 무조건적인 복종 외에 다른 방식을 전혀 몰랐다면 본인이 원하는 것들은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 찾아야 하는걸까?

티타가 원했던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어머니의 진짜 사랑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사랑이란, 그들의 부족한 욕구를 채워주는 일을 먼저 해야하고 요구되어진다고 생각된다.

티타는 물론 수많은 의문을 품기도 한다. 욕망과 관습과 복종에 무조건적으로 반응하지 않기 위해 그녀는 자주 생각하기는 하지만 적극적으로 답을 찾지는 않은 것 같다. 티타가 몇 가지 선택지 중에서 소극적으로 선택했던 것 같고, 또 그녀의 삶이 끝까지 부엌을 떠나지 못한 채 수동적으로 이어진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그럼에도 이 책에선 여자들의 에너지와 욕망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있어 '요리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인 작가에게 큰 점수를 주고 싶다.

그들 중에 가장 빛났던 인물은 존이다. 그의 할머니 새벽빛은 그녀를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는 가문의 사람들을 행동으로 진심으로 감동시켜 변화를 일으켰다. 비록 티타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의 사랑은 티타를 통해 훨씬 커다란 사랑으로 오래 오래 남을 것이다. 한 사람의 영향은 그토록 큰 변화를 끌어올 수도 있는 것이고 그 힘은 분명 그의 젊은 시절의 경험과 열정으로 얻은 사랑에서 온 것이리라.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 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다시 말해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자신의 불씨를 지펴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 권미선 옮김. 민음사, 125쪽



'내 안의 불꽃을 꺼뜨리는 것', '나를 활활 타오르게 하는 불꽃'에 대해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많은 것을 알고 싶다. '차가운 입김을 가진 사람들'이나 사물들, 존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려 한다.
이제는 내 내면의 불꽃이 얼마나 고귀하고 소중한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티타가 하는 요리들, 우리가 식사를 하고 요리를 하는 방식이 어쩌면 행복과 불행을 대하는 태도는 아닌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재료나 부엌 환경을 탓하거나 마구잡이로 대충 하는 요리사가 있고, 명상하듯 정성스런 마음으로 요리를 준비하는 요리사도 있다. 난 평소에 레시피를 찾아보고 모든 것을 갖춰 정식으로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요즘은 이것 저것 섞어 창조해낸 퓨전요리도 좋고, 대체 재료도 제법 잘 찾아낸다. 나쁘지 않은 방식이다. 요리 하는 방식이 내 인생에 대한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

읽는 내내 행복하고 소중한 기분이 들었다. 반드시 집을 나가야 혁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야기라는 고정관념을 툭툭 깨고 울타리 밖을 말을 타고 달리듯 (헤루트루디스처럼!) 나다니는 해학적인 이야기가 주는 카타르시스도 있었다. 주인공들 대부분이 속 시원히 모든 걸 뒤집고 원하는 대로 살진 못했지만, 티타는 분명 자신이 원하는 것을 깨닫고 표현해가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투쟁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죽는 날까지 우린 성장하며 사랑하며 또 요리 하며 산다.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건 사랑하는 이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란 충고는 아니었을까. 많이 웃기도, 놀라기도, 슬퍼하기도 하며 읽은 책이라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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