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엄마의 말뚝

[도서] 엄마의 말뚝

박완서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어렸을 때 가난한 동네에 살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같은 반 친구 아이들도 모두 없이 사는 처지라 가난이 무엇인지 잘 알지는 못했다. 다들 그만그만하게 비슷했으므로...

 

그 무렵의 기억이 거의 사라졌지만 또렷이 기억나는 일화가 하나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불우이웃 돕기 성금이나 물품을 걷어 반에서 가장 어렵게 사는 친구에게 전달하는 행사가 있었다. 가난을 겨루는 방법은 다름 아니라 집에 무엇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서 학생들을 추리는 방식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아이가 영광의 '가장 가난한 학생'이 되어 불우이웃 돕기 물품을 집에 가져갈 수 있었다.

 

선생님이 집에 티브이가 없는 사람 손을 들라고 하니 학급 인원의 반 정도가 추려지고, 그다음은 냉장고, 전화 등의 순서로 계속 좁혀나갔다. 나도 거의 대여섯 명이 최종 겨루는 단계까지 남을 수 있었고 옆 친구보다 조금만 더 가난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으면 '불우이웃 돕기 물품'은 나의 차지가 되는 거였다. 나는 설레고 긴장되었다.

 

나는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탈락했는데, '엄마와 아빠가 둘 다 일하는 가정'을 물었을 때였다. 사실 그때 아버지의 벌이가 여의치 않아, 어머니도 일거리가 있을 때마다 날품을 팔던 때였다. 선생님의 물음에 외벌이를 선택할 수도 있고, 맞벌이도 반은 맞는 말이었다. 나는 사실관계의 정확성을 따지기보다는 경쟁에서 이겨 물품을 집에 가져가고 싶은 욕망이 앞섰다. 어떻게든 가난함을 증명해 보이는 답을 선택하고 싶었다.

 

나는 아버지 혼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외벌이'를 선택했고, 그 선택으로 인해 최종 단계에 오르지 못하고 탈락했다. 어린아이의 셈법으로는 혼자 버는 집은 당연히 둘이 버는 집보다 수입이 적으니 가난을 경쟁하는 최종 후보에 들어가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가난 겨루기 대회에서 탈락하게 되었고, 하교 후 어머니께 '불우이웃'이 거의 될 뻔했다고 무용담처럼 말씀드렸던 기억이 난다.

 

몇 년 지나지 않아, 가난은 정 반대로 나를 공격했다. 나는 갑자기 가난이 창피하고 감추고 싶은 치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빈한하게 사는 모습을 친구에게 보이기 싫어서 사는 곳을 감추기도 했고, 가난을 숨기기 위한 거짓말도 여럿 했다. 우리나라 학교에서 조사하는 목록에는 왜 그리 적기 싫은 항목들이 많았던지...

 

세상에는 감추기 어려운 세 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재채기, 사랑, 가난이다. 아마 내가 창피하고 부끄러워했던 가난을 나는 성공적으로 숨겼다고 생각했으나 꼭 그렇지는 않았으리라. 적어도 지금 내 기억과 마음속에 어떤 흔적과 상처를 남겼으니, 가난을 숨길 수 없다는 말은 정말 사실이다. 세상에 누구도 가난으로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그냥 가난에 반대할 뿐이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