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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도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저/임홍빈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글쓰기의 목적을 네 가지로 나눠보면 어떤 종류의 글이건 대부분 그 안에 넣어 구분하는 게 가능하다. 작가가 네 가지 목적 중 특히 어느 한 가지를 꼽아서, 이를테면 '나는 미학적 열정을 글로 풀어내기 위해서 쓴다'라고는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읽는 이의 느낌과 감상을 근거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작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말이다.

 

많이 알려져 있는 '조지 오웰'선생의 <나는 왜 쓰는가>에 글쓰기의 네 가지 목적이 나와 있다. 오웰 말고도 다른 전문가가 글쓰기의 목적을 분류해 놓았을 수는 있겠으나 아마 다른 목적을 찾아낸다고 해도 조지 오웰이 꼽은 넷 중 한 가지 목적에 일부가 포함되거나 여러 개에 중복으로 걸쳐있는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미학적 열정과 돋보이고 싶은 인정욕구, 역사에 무언가 남기고 싶은 충동, 그리고 정치적 목적, 이렇게 네 가지 이유로 모든 작가들은 글을 쓰게 된다. 나는 조지 오웰의 책을 세 권정도 읽었는데, 그의 글이 주는 재미와 매력에 푹 빠질 기회를 갖지는 못했다. 소설이 참신하고 흥미로웠다고 말할 정도의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지 오웰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는 모든 글을 정치적 목적으로 썼다. 적어도 1936년 이후에는 말이다.

 

정치적 목적이라는 게 그리 거창한 이념이나 혁명적 행동을 선동하는 그런 글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하게 말한다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글. 이것이 정치적인 목적의 글이다. 좋은 세상에 대한 모양과 색깔은 저마다 제각각일 테니, 정치적 글이라고 해서 모두 숭고하거나 존경할 만한 글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정치적 목적의 많은 글들이 공론의 장으로 나오고 그것이 저마다의 논리와 장점을 가지고 서로 일합을 겨루어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미학적 열정은 자신이 보고 느낀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험을 글에 담아 사람들과 나누려는 욕망이다. 예술적 글쓰기라고 말한다면 크게 틀리지 않을 거다. 존재의 근원을 묻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행위다. 생존과 번식에 유리해서 인간이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되었다는 진화적 관점이 전적으로 맞는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린아이조차도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특성인 것은 맞는 것 같다. 고통은 피하고 쾌락을 좇는 것처럼 말이다.

 

하루키의 글은 '미학적 열정' 쪽에 가까운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소설을 오래전에 몇 편 읽은 기억이 있는데, 그때의 감상을 복기해 보면 소설도 그랬던 것 같다. 한 개인이나 어떤 현상, 또는 특정 사건은 저마다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대개 겉으로 드러난 표면적인 모습만 보게 되고 더 깊게 보려는 노력을 특별히 기울이지는 않는다. 하루키는 한 발자국 더 다가서서 깊게 그리고 오래 보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쉽게 보지 못하고 놓치는 의미와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그런 글이다.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서 그리고 달리는 행위에 대해서 넓게 그리고 오래 들여다보고 거기서 의미와 아름다움을 발굴해낸다. 나는 하루키와 같은 '미학적 열정'의 글을 좋아하고 즐겨 읽는다. 예술품을 감상하고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종 특성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거니까. 그러나 나는 조지 오웰과 같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글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도 생각한다. 본능이 인간을 지배하지만, 이성이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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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꼼쥐

    하루키의 열렬한 팬이라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이 책에 대해서도, 그의 소설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그건 차치하고, 저는 현실에서 스트레스가 쌓일 때 하루키의 책을 읽곤 합니다. 하루키의 소설은 현실과 판타지 사이의 좁은 외길을 걷는 듯한 느낌입니다. 소설이 현실의 재판이라면 소설을 읽는 독자 역시 현실의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죠. 그러나 그의 소설은 현실을 배제하지 않은 채 판타지 쪽으로 살짝 한 발을 걸쳐 놓은 듯한 느낌이어서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는 듯합니다. 이 책처럼 에세이는 아주 솔직하고 담담하지만... 괜히 주저리주저리.

    2022.02.19 10:16 댓글쓰기
    • 짱가

      하루키의 오랜 독자 꼼쥐님의 글을 읽으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소설은 오래전 읽어서 감상의 느낌이랄것이 또렷하지않네요. 역자의 글을 읽고 저도 그렇게 느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2022.02.19 14:11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