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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생각의 출현

[도서] 뇌, 생각의 출현

박문호 저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책을 읽다가 생각난 크리스 록과 윌스미스의 아카데미 시상식 논란으로 서평을 갈음함)

 

지난 3월 27일 개최된 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영화제 자체보다는 좀 색다른 이슈로 떠들썩했다. 입이 거칠기로 소문난 사회자 크리스 록이 여러 우스갯소리를 하던 중 윌 스미스의 아내이자 배우인 제이다 핀켓 스미스의 원형 탈모를 소재로 농담을 던졌다. 자리에 있던 제이다는 당황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 순간 그녀의 남편인 윌 스미스가 갑자기 단상으로 올라가더니 크리스의 뺨을 힘껏 올려붙이고 거칠게 욕을 했다. 크리스, 동료배우, 관객들 중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생방송 중에 발생한 돌발 상황이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뉴스와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크리스 록과 윌 스미스 중 누구의 잘못이 큰지에 대한 논란이 폭발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진보 성향 남초 커뮤니티인 '딴지일보'와 '클리앙'에 올라온 대개의 첫 반응은 크리스 록이 맞을 짓을 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다른 사람의 상처를 웃음의 소재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가족의 모욕에 대한 분노와 행동은 정당하다, 크리스 록의 개그는 기존에도 인종비하 논란이 있었을 정도로 시기가 문제였을 뿐 터질게 터졌다"라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물론, 윌 스미스의 대응이 더 잘못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런 주장은 대개 감정이 없고 현실감각이 결여된 냉혈한이라는 취급까지 받았다. 초기 반응은 9 대 1 정도의 수준으로 윌 스미스의 편이 압도적이었다.

 

시간이 이삼일 정도 흐르자 기류가 바뀌었다. 크리스 록을 향한 비난의 화살 세례로 잠시 숨을 고르던 반대 의견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폭력은 어찌 됐건 옳지 못하다.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은 참석자 누구도 예외 없이 농담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이 양해된 자리다. 슈퍼스타도 그렇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며, 겸손의 미덕을 한 번 더 상기시키는 행사다. 깔아준 판에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사회자로서의 자질 부족이다. " 등의 크리스 록에 대한 옹호와 더불어 "크리스 록이 원인 제공을 했지만, 윌 스미스의 대응이 더 큰 잘못이다"라는 윌 스미스의 잘못에 무게를 싣는 의견들이 나왔다. 이때의 반응은 3:7 정도로 윌 스미스의 대응이 과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미국에서는 사건 발생 처음부터 윌 스미스의 잘못이라는 의견이 많았고, 그는 결국 10년 동안 아카데미 참석이 금지되는 징계를 받았다.

 

나는 좀 궁금해졌다. 왜 진보적이라고 여기는 커뮤니티에서조차 이번 '모욕 vs 폭력'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른 걸까. 적어도 정치적 사안이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거의 한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의 의견을 갈라놓다 못해 서로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도록 만든 그 트리거는 무엇일까? 그래서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왜,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크리스를 옹호하고 반대로 무엇이 윌의 행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쳤을까? 우연일까? 아니면 무언가 그 미묘한 관점을 가르는 요소가 있는 것일까? 한국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가족이 지니는 의미, 이성과 본성, 도덕철학과 진화 심리학적 요소를 동원해서 아마추어적으로 두서없이 살펴보자.

 

가족주의와 대한민국

우리나라에서 가족은 특수한 성격을 갖는다. 서양은 근대화 과정에서 개인에게 미치는 가족의 영향력이 흐릿해졌다. 성인이 되기까지 필요한 것들, 즉 경제적 지원과 교육, 외부 위협으로부터의 보호 등 많은 부분을 국가가 맡게 되었다. 복지수준이 높은 국가에서는 부모의 경제력과 상관없이 한 개인이 성장해서 사회에 자리 잡기까지 모든 지원을 국가에서 담당한다. 편부모에게서 자랐거나 심지어 부모가 없어도 평균 수준의 교육과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나라에서 보장한다.

 

이와는 달리 압축적으로 근대화 과정을 통과한 한국은 가족이 가지는 의미와 역할이 여전히 그 힘을 잃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 영향력과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는 측면도 있다. 사회적 양극화가 심하고 복지수준이 낮은 사회일수록 개인의 성공은 자신의 능력과 부모의 지원에 달려있다. 개인의 능력도 경제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계발의 기회를 갖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과적으로는 어느 부모에게서 태어나느냐가 인생의 행로를 결정한다. 자칫 경쟁에서 뒤처지는 경우에는 사회가 보살펴주지 않는다. 낙오한 개인을 사회가 돌봐주지 못하니 믿을 건 다시 가족밖에 없게 된다. 가족을 위해서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고, 자식을 위해 또는 부모를 위한 희생이 당연시된다. 가족은 나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지이며, 최후까지 믿을 수 있는 보루다.

 

문제는 사회가 적절하게 부담해야 할 역할을 가족에게 떠넘기면서 가족은 경제공동체이자 생존 공동체가 되어버렸고 생존의 위협이 클수록 내집단에는 관용적이며 외집단에 배타적인 경향이 심해진다는 점이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와 갈등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불공정하게 배분하거나, 불평등하게 적용하는 데서 발생한다. 가족주의 문화가 뿌옇게 깔린 안개처럼 어디에서나 강하게 작동하는 한국 사회에서 내 자식을 조금 더 봐주고 편애하는 마음에서 혈연, 지연, 학연의 불공정한 관행과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기업지배구조, 족벌사학, 종교재단, 언론재벌이 가족을 중심으로 촘촘한 그물망처럼 연을 맺고 있는 것은 유독 우리나라와 같은 복지수준이 낮고 양극화가 심한 나라의 두드러진 특성이다.

 

물론 진화심리학적으로 가족을 위해 일하고 희생하는 것은 본능이다. 자식 두 명은 각각 아버지 유전자의 50%를 공유한다. 이론적으로 두 자식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는 진화적 관점에서 옳은 결정이다.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에는 자식 두 명을 살리는 게 유리하므로 나는 기꺼이 사자의 먹이가 되겠어.'라고 재빨리 계산해서 자식을 피신시키고 자신이 희생하는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개체가 살아남아 우리의 조상이 되었다.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의 계보를 찾아 올라가 보면 우리 내면에 숨어있는 본성과 만나게 된다.

 

본성과 이성의 경쟁

우리가 본능이라고 부르는 생물학적 특성은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에 가장 적합한 형질의 조합이다. 본능은 남성이 배우자가 아닌 여러 여성에게 성적 욕망을 느끼게 하고 여성이 능력 있고 믿을만한 배우자를 선택하게도 한다. 본능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상황에서는 쾌락을 느끼게 하고 반대로 불리한 상황은 피하도록 하는데, 그때 고통이라는 감각을 이용한다. 인간이 초콜릿과 성행위에 쾌락을 느끼는 근원적인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달콤함? 아름다움? 쾌감? 이런 것들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원시시대부터 이어져온 진화적으로 유리한 형질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독약에 달콤함을 느낀다면 생존과 번식에는 그야말로 독약일 테니까.

 

현대를 사는 각 개인은 하루에도 수백 번 선택의 기로에 선다. 우리는 보통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뇌과학이나 행동경제학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인간은 대개 직관에 의해 본능적으로 행동하고 그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성을 동원한다. 이성은 본성을 변호하기 위한 변호사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실제 하루에도 인간은 수백 번의 선택을 한다. '어느 길로 출근할까', '점심에 뭘 먹을까'하는 단순한 선택부터 시간을 들여 따져보고 계산해야 하는 복잡한 선택까지. 대부분의 선택은 어떤 의식이나 자각 없이 이루어진다. 본능은 우리가 진화한 생존 방식이기 때문에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그대로 발현된다. 화가 나고 기쁨을 느끼고, 호감이 가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감정들과 아무런 가외 노력을 들이지 않는 일상 선택들은 진화적 이점과 연결되어 있다. 대부분의 선택은 본능 즉 직관에 기댄다.

 

여러 가설이 있지만, 몇 가지를 조합해 보면 인간은 직립보행을 선택하면서 엄마의 자궁에 한참은 더 머물러 있어야 할 덜 자란 상태로 세상에 나온다. 육아의 수고를 떠안는 대신 양손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땅을 짚고 몸을 지탱하는 노역에서 해방된 양손은 도구를 만들고 불을 지피며 자신의 새로운 역할을 수행한다. 잡식성으로 발달한 인간의 이로 생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아래턱을 종일 움직여 씹어야 했지만, 불의 사용으로 익힌 음식을 먹게 되면서 퇴화된 하관이 밀려나고 그 공간에 뇌가 더 넓게 자리 잡으며 인간의 인지 발달에 기여했다는 주장도 있다. 도구의 사용과 사회적 관계 형성, 언어의 발달이 뇌를 발달시켰다는 연구도 있으나 충분한 지식이 없으니 패스.

 

뇌, 특히 전두엽의 발달로 인간은 생물 중 유일하게 또는 가장 지연된 반응이 가능한 존재로 진화했다. 동물도 일종의 기억에 의한 반응을 하지만, 그 기억이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고양이가 자신의 먹이인 생쥐를 쫓아가다가 조그만 구멍 속으로 숨어버린 생쥐를 기억하고 잠깐 그 앞을 서성일 수는 있지만, 금세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린다. "쥐가 들어간 구멍의 다른 출구가 없으니 언젠가 배고프면 다시 나오게 될 거야. 그러면 내가 모퉁이에 숨어 있다가 저 생쥐를 재빠르게 잡아야지. 그게 다른 쥐를 쫓는 것보다는 훨씬 효율적이야"라는 종류의 미래 예측과 그에 이어지는 계획을 고양이는 할 수 없다. 미래에 대해 상상하고 그것을 선택에 반영하여 행동하는 것은 인간이 유일하다. 이를 혹자는 숙고시스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래 생각하기, 지연된 선택 등을 한데 모아 대략 '이성'이라고 뭉뚱그려 말해도 좋겠다.

 

지금 당장 인간의 본능이 상실된다면, 인류는 머지않아 절멸될 것이다. 첫눈에 불꽃이 튀는 사랑도, 아이를 보호하고 양육하는 애정도, 경쟁에서 이기려는 호승심도 사라지게 될 테니까 말이다. 반대로 더 많은 이성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하는 충동도, 다른 아이보다는 내 아이를 편애하는 마음도, 승리를 위해 부정의한 방법을 동원하려는 욕심도 모두 본능에서 기인한다. 본능을 있는 그대로 다 발산하고 산다면 남은 일생을 감옥에서 지낼 가능성이 크다. 수백 만년 동안 인류는 거의 본능에 입각해 생존해왔으며, 이성이 본능을 제어하고 그 영토를 넓혀가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성은 본능의 발산이 공동체에 해가 된다면 억제하고 때로는 그 욕망의 물꼬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종종 엄하게 처벌하도록 한다. 전승된 지식과 교육은 짧은 시간 내 본성 우위의 어린아이를 이성적 시민으로 편입시킨다. 이성은 본성을 적절히 조정하여 생존과 번식의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인간의 더 나은 생존 방식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토록 한다. 번식의 관점에서 닭은 인류보다 낫지만, 생존의 방식은 비교할 바가 되지 못하니까.

 

과학적 사고, 정치적 상상력, 법과 도덕 같은 이성의 산물들로 현대 문명과 편익이 발생했다. 근대화로 이행되는 시기에 인간은 본능의 부작용을 제도와 과학의 힘을 빌려 적절히 제어해왔다. 전쟁은 잦아들고 결투와 사냥 대신 스포츠를 즐기게 되었다. 문화와 엔터테인먼트의 많은 요소들은 인간의 본능을 해롭지 않게 해소하는 창구의 역할을 한다. 날이 잘 선 장인의 칼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쓸만한 본능 조절 장치를 다듬는 칼인 '이성'을 인간은 적절히 활용해왔다. 이성은 본능이 개인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내리는 결정이 사회적 도덕적으로 올바른지 돌아보고 수정하도록 끊임없이 촉구한다. 이성은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 인간이라는 종의 존재방식을 고민하도록 독려한다.

 

나는 언젠가 인간이 자신의 쾌락과 통증을 스위치 하나로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외형적으로 아름다운 여성에게 욕망을 느끼는 본능의 조절장치는 감도를 좀 떨어뜨리고 싶다. 그리고 특정 시점에 내가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추장스러운 성욕의 스위치도 꺼두고 싶다. 범죄와 갈등을 낳는 본능의 스위치는 잠시 꺼두고 나와 동지적 관계의 존경할 만한 연인과의 달콤한 시간에 살짝 다시 켜놓는다면 어떨까? 어떤 사람은 강하게 반대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인간 존엄의 경계를 허무는 시발점이 된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 니체는 나약한 패배자의 넋두리라고 나무랄 수도 있겠지만...

 

폭력에 대하여

물리적 폭력은 본성이다. 원시시대 폭력은 거의 유일한 문제 해결 방식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힘 있는 개체가 폭력을 사용하면 생존과 번식이라는 진화적 효용을 가장 극대화할 수 있다. 지금도 많은 동물들은 무리에서 가장 힘센 수컷이 암컷들을 독점한다. 인간은 일부일처를 제도화했다. 약간의 가정을 보태어 얘기해 보자면, 인간은 뇌가 발달하면서 과거의 경험으로 미래를 예측하여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언어의 사용으로 협상을 통해 어느 한 쪽이 절멸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의 해결책도 가능하게 되었다. 힘 있는 개체가 암컷을 독점하면 그가 잠들었을 때 다른 수컷들이 힘을 모아 그를 제거할 수도 있다. 또는 그가 나이 들어 더 이상 폭력으로 다른 수컷을 제압할 수 없을 때, 젊은 수컷에게 공격당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가능성도 있다.

 

폭력이라는 수단 한 가지로 무리를 이끄는 것보다 언어를 사용하여 설득하고, 약간의 권리와 자원을 나누어 상대방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이문이 남는 통치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폭력은 언제든 다른 폭력으로 대체될 수 있고, 더 힘이 센 개체란 늘 있기 마련이어서 폭력으로 만들어낸 평화는 항상 잠정적이다. 구성원은 리더가 옳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두렵고 무섭기 때문에 그 상태가 유지된다.

 

물리력이 득세하는 부족과 이성을 적절히 사용하는 부족이 경쟁한다면 어느 쪽이 승리할지는 눈에 그려진다. 가장 힘센 자의 의견만 선택되는 부족은 아무리 구성원이 많아도 한 개체의 능력 이상을 발휘할 수 없다. 자유로운 의견이 억압받지 않고 서로 경쟁하여 더 좋은 답을 찾아내는 집단은 구성원 전체의 능력을 골고루 활용한다. 폭력적 해결이 집단의 생존과 지속적 번영에 해가 되는 것을 진화적 차원에서 해결하는 방식이 사형제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한 유전자는 종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므로 장기적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현생인류보다 물리적 능력 면에서는 훨씬 뛰어났던 네안데르탈인이 경쟁에서 도태된 것도 이성적 해결 능력의 부족 아니었을까.

 

힘을 통해서 상대방을 억압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자신의 선택이 최선이 아님을 자인하는 꼴이다. 누구라도 동의할 수 있는 좋은 의견이 있다면 굳이 힘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을 빌리자면 '어떤 생각을 억압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사람들에게 강도 짓을 하는 악행'이라고 했다. 새로운 의견이 옳다면, 잘못이 드러나서 최적의 답이 채택되어 돌아갈 이익을 빼앗는 행위가 될 터이고, 설령 제시된 의견이 틀리더라도 잘못된 의견과 옳은 의견을 대비시켜 진리를 더 생생하고 명확히 드러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놓지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체벌로 아이의 행동이나 생각을 교정하는 것은 특정한 결과를 내기 위해 두려움이라는 아이의 본성에 기대는 행위다. 아이는 옳고 그름을 따져서 자신의 행동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체벌을 당할까 무서워 행동을 수정한다. 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조금은 더 유용한 해결 방법인 무엇이 좋은지 따져서 선택할 수 있는 이성의 활용을 제한하는 것이다.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회의하여 진리에 도달한다는 교육의 본질에 비춰볼 때, 체벌은 오히려 비교육적인 사회인을 양성하는 훈육방식이다. 억압과 힘을 통한 훈육은 그 힘이 역전되면 언제든 깨지기 마련이고, 많은 의견이 부딪히고 겨뤄서 채택되지 않은 답이 좋은 해결책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충분히 논의되지 않고 선생과 부모의 의견이 옳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게다가 훈육으로서의 체벌과 감정적 폭력은 경계선이 흐리다. 둘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

 

정리, 개인적 의견

젊은 시절 독재 정권의 타도를 외치며 거리에서 돌을 던졌던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 극우 보수당의 선봉에 서고, 재벌 신문과 신자유주의를 앞장서서 비판하던 진보논객은 가장 극우적인 정권의 나팔수를 자청하고 있는 최근의 세태를 볼 때, 인간의 조금은 긴 관점에서 숙고하고 판단하는 이성의 힘은 눈앞의 달콤한 물질적 이익과 진화적 이득이라는 본능의 힘보다 한참은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자는 끊임없이 애써 성찰하는 가운데 가까스로 도달할 수 있고, 좀 느슨해지는 순간 다시 본능으로 회귀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이성은 의지와 체력과 젊음이라는 땔감을 계속 연료로 공급해 주지 않으면 쉽게 그 열기를 잃는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서, 좀 더 편하고 안락하고 기댈 곳을 찾기 시작하는, 육체적으로 기력이 쇠하는 시점에는 본성이라는 초깃값으로 회귀하는 게 아닐까. 물론, 나이 든 진보도 여전히 존재한다. 육체의 노쇠함과 본성의 달콤한 유혹을 극복한 그들은 신뢰와 존경을 받아야 마땅하다.

 

누구나 준비되지 않은 상황과 맞닥뜨릴 때, 인간은 본성에 입각한 대응을 한다. 수백만 년간 베팅했던 승률 높은 방식이니까. 환경과 세계를 알파 동물인 인간에 맞도록 변화시켜온 현재의 인간은 더 괜찮은 경기의 방식과 존재의 의미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본성의 정체도 대략 파악하게 되었다. 그래서 힘으로 밀어붙이면 잠깐 본성에 기울기도 하지만, 조금은 뒤늦게 찾아드는 이성의 힘으로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을 한다. 인간이 세계의 존재에 위해되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존재에 기여하는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면, 이 모든 균형을 찾는 행위는 누적되고 전승되어 더 나은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폭력은 현재도 도처에 발생하고 있으며, 손쉬운 해결책으로서의 폭력은 유용하고 효과적일 수 있다. 모든 폭력이 나쁘다는 주장도 나름 그 근거를 갖고 있지만, 유한한 시간과 공간에서 폭력이 효율적인 해결책이 되기도 한다. 본능은 때로는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것으로 판명되기도 하지만, 본능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에, 모든 본성을 악으로 이성을 선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다만, 이 모든 것을 열린 공간에 던져두고, 무엇이 더 좋은 해결책이고 더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지 토론하고 결정하는 방식이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더 좋은 해결책에 도달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를 통해서 때로는 잘못된 사실이 발견되어 더 올바른 진실로 대체되기도 하고, 나쁜 의견이 도태되기도 하면서 느리지만 꾸준하게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를 진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덧붙임. 도덕 기반 이론, 인간은 어떻게 선택하는가.

조너선 하이트가 쓴 책 <바른 마음>에 등장하는 도덕 기반 이론에 의하면 사람의 마음에는 여섯 가지의 도덕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배려, 자유, 충성, 권위, 공평, 고귀함이 그것이다. 이 여섯 가지 도덕은 배우거나 깨닫는 것이 아니라 직관이라는 본능에 내재되어 있는 측면이 큰데, 경험이나 훈육에 의해서 개인마다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의 선택과 행동은 이 여섯 가지 도덕에 기대고 있으며 진보적인 사람과 보수적인 사람의 본성, 즉 도덕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특성이 다르다는 이론이다. 진보는 배려, 자유, 공평성(평등 개념)의 도덕에 기반을 두며, 보수는 여섯 가지 모두를 기반으로 판단한다. 여러 도덕이 충돌할 때 보수는 배려, 즉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를 희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나는 보수의 도덕인 충성, 권위, 고귀함은 진화적 본성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지만, 진보의 도덕인 배려, 평등 개념의 공평성은 집단적 생존과 번성을 위해 문화적으로 전승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불쌍한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과 차별에 화가 나는 마음이 이성적으로 숙고하여 떠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개체의 생존과 번식과 직결되어 있지는 않다. 진화적 오인 또는 학습된 후천적 직관이라고나 할까. 진보는 보수의 도덕인 권위, 충성심, 고귀함을 오히려 사회적 정의 실현을 저해하는 타도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대중의 마음을 사는 데는 항상 한계가 있다. 반대로 보수는 여섯 가지를 모두 도덕적 기반으로 삼는다. 진보가 설탕(배려)과 소금(공평)만을 가지고 맛을 낸다면, 보수는 여러 다양한 양념을 사용하여 미각에 호소하므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는 보수의 가치가 유리하다.

 

정의당이 진보에 가깝고, 국민의힘은 극단에 가까운 보수이며, 민주당은 진보와 보수가 섞여 있는 정치세력으로 보인다. 정의당은 평등과 배려를 도덕으로 보지만, 그 가치로 인해 충성과 권위, 통합을 중시하는 시민들로부터 외면을 받는다. 보수정당의 정치인들도 개별적으로는 진보의 도덕을 존중하고 이성적인 사람들이라는 말도 듣곤 하지만, 배려와 권위가 충돌할 때는 배려를 희생하고, 공평과 충성심이 부딪힐 때는 충성의 손을 든다. 그래서 기득권의 논리를 대변하고 약자를 희생하여 강자의 이익을 추종하는 결정을 내린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진보라고 생각하지만, 여섯 가지 도덕이 부딪힐 때 자신이 어떤 가치에 손을 들어주느냐를 생각해 보면 본인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알 수 있다.

 

동성애, 이민, 낙태, 안락사, 남북관계와 같은 여러 도덕이 부딪히는 이슈들도 많다. 진보의 도덕은 자유와 배려를 중시하므로, 위 사안들에 대해서는 모두 찬성하거나 지지하는 입장이다. 반대로 보수의 도덕으로 보자면 서로 다른 가치들이 충돌한다. 자유의 도덕은 안락사를 허용하라고 하지만, 권위와 신성성의 관점에서는 올바르지 않으며 이럴 때 보수는 자유와 배려를 희생한다. 동성애와 낙태 문제는 진보가 늘 찬성하는 이슈지만 보수의 도덕 기반인 신성성, 충성의 관점에서는 신이 주관하는 생명과 성을 경시하는 행위다. 모든 개인이 진보와 보수로 선명하게 편을 나누어 입장을 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기도 한다. 특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발전과 근대화 과정은 여러 곡절을 겪고 압축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진보와 보수의 도덕이 한 개인에게도 혼재되어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초기의 생각들

1. 가족의 해체라는 근대화의 특성과는 다른게 변화해온 한국에서의 가족의 의미와 역할이라는 특수성. 진보적인 사람들의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대개 자유, 배려, 정의, 평등을 옹호하지만, 자유와 전통적 가치가 부딪힐 때 전통적 가치와 신성성에 무게를 두는 사람들도 있다는 거다.

 

2. 인간 의식의 반응 형태는 즉각적인 반응이 있고, 숙고된 반응이 있다. 뇌는 95%가 무의식적인 신경 반응을 처리하고 5%의 의식을 처리하는데, 익숙하고 본능적인 것에 대한 반응은 무의식적인 반응이 담당하고, 과거의 경험의 목록을 뒤져서 정제하여 미래를 예측하거나 상황을 그려보고 판단에 대입해 보는 것은 숙고의 반응이다. 일종의 반응 지연이 일어날수록 이성과 학습의 뇌를 활용하는 결정에 가깝다. 그렇다고 본능적 감각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느낌이 있다. 감이 있다는 것은 무의식의 95%의 신경세포의 반응을 반영한 것이다. 다만, 이것은 고정관념에 가까워서 새로운 기억과 학습을 통해 지속적으로 열린 관점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3. 폭력의 문제에 대한 관점으로 생각해 보자. 인간은 폭력을 억제하고 대화와 타협 논리를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여성적인 것이 우수하고 미래에는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완전히 뒤바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사형제도도 남성적인 폭력과 힘을 억제하기 위해 생긴 제도라는 의견도 있다. 이유는 그게 근대적인 것이고 합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은 아직도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힘을 갖는다. 폭력에 예외를 두는 것에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가족의 모욕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는 마음에 대비하여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극악한 모욕에 대해 훨씬 더 큰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다른 이유가 없다.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근대적인 합리적 인간의 태도에는 적합하지 않다. 폭력으로 대응하기에는 너무 멀고 행위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그렇다면, 아베가 호텔 만찬장에서 농담 삼아 위안부에 대한 망언을 했다 치자. 근거리에 있었으며, 충분히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러나 내가 폭력을 행사하면, 주위 경호원들이 나를 완력으로 제압할 것이며, 잘못하면 그 자리에서 훨씬 더 큰 물리적 반격을 받을 수 있다.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운이 좋아서 신체의 손상을 받지는 않았지만 기나긴 소송에 휩싸여서 감옥에 몇 년간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폭력을 선택하겠는가? 만약 위안부 할머니가 아니라 당신의 아내라도 정말 그렇게 하겠는가?

 

상대방의 지위 여하에 따라 또는 행동으로 인한 나의 불이익과 처벌의 정도에 따라 행위가 결정되는 것은 어쩌면 본능적으로는 당연한 일이지만, 옳고 그름의 영역에서는 그렇지 않다. 옳은 일이라면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행해야 한다. 상대에 따라 바뀔 수 있는 행동이라면,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우리가 흔히 비난하는 유형과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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