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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도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저/정영목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사랑에 빠지다

우리나라 말이나 영어로나 사랑이라는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을 때 사랑에 빠진다라는 말을 쓴다. 물에 빠지거나, 수렁에 빠지거나, 도박에 빠지는 등, 어디에 빠진다는 것은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다. 잠깐 발담그거나, 뭐가 묻으면 툭툭 털고 일어나면 되지만, 뭔가에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은 그림이 그려진다. 따라서 사랑도 빠진다는 것의 특성상 비정상적이라 할 수 있는 상황에 자발적이든 타의에 의해서든 깊숙이 들어가버리게 되는 것이고, 평소의 감정이나 일상의 자연스러운 평화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멀리서 객관적으로 지켜보면 마치 코미디처럼 보일 수 있는 요소가 많은 것이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유체이탈 할 수 있는 스위치가 있다면 미래로 간다거나, 2미터 정도 위에서 내려다보면 좀 더 그럴 듯 하게 상황을 컨트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영화나 책에서의 관찰자 시점이 아닌 다음에야 자신이 몸소 경험하는 사랑은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이 서툴다.

 

사랑이란 그런 건가?

사랑이란 단어는 처음 연애를 경험하는 서투른 연인에서부터 수십 권의 소설을 쓴 이야기 꾼과 천상의 아름다움을 글로 엮어내는 시인까지도 두루 즐겨 사용하는 말이다. 물론, 사랑이라는 말은 자신이 경험하는 범위 내에서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다. 사랑이라는 말을 가장 그럴듯하게 표현하는 소설가가 내가 언젠가 느꼈던, 그러나 말로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했던 미세한 감정까지 언어로 그려낼 때 가끔 머리가 쭈뼛해지는 흥분에 떨며, 바로 그게 내가 생각해왔던 사랑이라고 단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표현력에 한계를 느끼는 대부분의 경우 사랑한다고 말해버리는 경우에는 그 말을 내뱉자마자 내가 원래 생각했던 사랑이라는 느낌이 희미해지고, 본래의 높은데 있던 가치가 그것을 표현해 버림으로 인해서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책에서는 주인공이 그녀에게 사랑이라는 말 대신 나는 너를 마시멜로우한다라는 말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느끼는 사랑은 뭔가 일반적인 보통의 사랑과는 다르게 특별하니까.

 

모든 사람의 이야기이나 그리 평범하지 않은.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줄거리만 보자면, 남녀간의 전형적인 사랑 이야기다. 운명처럼 만나서 첫눈에 빠져들고, 갈등하고, 식어가며, 헤어진다. 반전이 있다면, 처음에 만나서 사랑에 빠져들 때쯤 마치 주인공 남자가 여자에게 마음이 먼저 식어 여자를 차버릴 것 같았으나, 반대의 결말이었다는 것 정도가 예상에서 어긋났다고나 할까? 일생에서 경험하는 사랑이 여러 번 있다면, 대개 젊은 시절의 풋사랑의 느낌과 많이 닮아있는 연인들이다. 나이대도 그 정도 되는 것 같다. 저자도 20대 초반에 이 책을 썼다고 하니, 실제 경험상으로 다양한 사랑의 경험은 좀 부족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주인공들이 갖는 생각들과 묘사들 그리고 철학적 설명들이 너무 단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문화가 다르거나, 연령이 다를 경우 또는, 연애의 경험이 많고 적음에 따라서도 공감도와 감정이입의 정도가 차이가 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뒤에서 좀 언급되는 부분이지만 조금 더 성숙한 사랑이나, 성숙과 풋사랑의 중간 정도 아니면 그 사이 어느 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다양한 사랑의 경우를 생각한다면, 이 책의 여러 담론들이 그대로 들어맞는 성격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한다. 20대 초반의 철학과 인간의 심리를 많이 공부한 작가, 그러나 다양한 실제 사랑은 경험해보지 못한 작가의 글 같다는 느낌이랄까. 물론, 철학적 경구의 인용과, 심리의 묘사, 어느 평범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야깃거리로 풀어내는 능력은 내가 읽은 어느 작가보다도 뛰어난 듯 하다. 매우 독특하고 재미있는 형식의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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