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서 자의로, 혹은 타의로 집에 있어야 하는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나 역시 대학생이지만 사이버 강의로 운영되는 수업과 계속되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온종일 집안에 갇혀 지내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아르바이트도 그만둬서 금전적으로 매우 쪼들리는 상태인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부모님과 함께 지내기 때문에 집세나 식비 등이 나갈 일이 없다는 것이다. 당장 주변에 자취하는 내 친구들을 보더라도 매달 나가는 월세에 학교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으며, 높은 보증금을 감당할 수 없어 고시원에서 지내는 친구도 있다. 그런 친구들을 볼 때면 지금의 나의 처지에 감사하면서도 앞으로 닥쳐올 내 미래의 모습이 걱정된다.
이 책에서 작가는 안전한 나만의 공간조차 가지기 어려운 현실의 해결방법이 ‘기본소득’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기본소득이란 ‘모두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이고 개별적으로 지급되는 현금 소득’으로, 공동체 내부 모든 사람에게 조건이나 심사 없이 지급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복지제도와 다르다. 비록 작은 돈이라도 이 돈으로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집을, 좀 더 나은 생활을,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에세이를 저술한 신민주 작가는 기본소득당에서 일하는, 페미니스트이다. 그런 점에서 페미의 시선에 쏠려 있는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기가 망설여졌다. 왜냐하면 성별을 기준으로 선을 가르고 상대방을 혐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요즘 같은 세상에 페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가 조금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페미니스트도 아니거니와 성별을 가지고 누가 더 힘든지 겨루기 보단 서로 화합하며 함께 힘든 것 극복해나가는 것을 지향하는 사람이기에 작가의 말을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조금 존재했다. 그럼에도 이 책이 괜찮은 책이란 것에는 이견이 없다. 여성의 어려움만을 부각한 것이 아니라 집이 없어, 방이 없어 힘들게 살아가는 세대들의 이야기를 잘 녹여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어려움을 겪는 ‘여성’의 입장에서 읽기보다, 집을 구하기 어려운 이시대의 ‘청년’들의 관점에서 읽어보도록 하겠다.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책의 가장 마지막 페이지에는 ‘기본소득’에 대한 것이 실려 있어 작가가 추구하는 세상을 한눈에 쉽게 들여다 볼 수 있다.
1부_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
1부에서는 돈이 없어 제대로 된 집 하나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얘기한다. 정말 그 말 그대로 요즘에는 자신만의 집을 가지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다. 무주택자들은 돈을 모아 집을 장만하기 위해 도시로 올라와 열심히 일을 하지만, 버는 돈은 그대로 대출과 월세로 나가게 된다. 모두들 집이 아니라 방에 살고 있는 것이다.
“나와 친구들은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를 퍽 좋아했다. 매년 500파운드의 돈이 있어야 돈 걱정 없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다는 말이 기본소득을 쉽게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자기만의 방에 대해 이야기 한 점도 좋았다. 나는 그 글을 여성이 자신의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뜻으로 읽었다. 자기만의 방은 공간적 의미 이외에 여성에게 주어지는 자유와 충분한 여가 시간, 삶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상징했다.”_21쪽
신민주 작가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의 내용을 가져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얘기한다. 나는 지금까지 ‘방’이라는 것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하나의 공간으로만 인식했었는데, 작가는 방을 우리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하나의 기회로 보았다. 그 말처럼 정말 우리는 우리만의 온전한 공간 속에서야 비로소 충분한 꿈을 꾼다.
“고시원 화재라는 특별한 불행이든 보증금 50만 원, 월세 18만 원짜리 방이라는 특별한 행운이든 ‘특별한 것’둘이 없어지는 게 나았다. 특별한 것들에 의존해야 한다면 평범한 행복을 만들긴 어려우니까. 우리가 바라는 것은 황금으로 만들어진 다리가 아니니까. 그보다야 발밑이 갑자기 내려앉지 않는, 평범하게 튼튼한 다리가 필요했다.”_30쪽
나는 정말 순수하게 이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늘 특별한 행운을 바라고 로또를 사지만 사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평범한 것들이다. 현질을 잔뜩 해서 쉽게 깬 게임이 금방 재미없어지는 것처럼, 우리네 삶은 이리저리 부딪히기 때문에 작은 것에서도 행복과 보람을 느끼며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작가는 ‘기본소득이’ 우리의 작은 행복을 좀 더 안정적인 행복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다리가 되어줄 것이라 말한다.
“가난이 낭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삶도 미담으로 소비돼서는 안 된다. (...) 더 이상 미담이 만들어지지 않는 사회가 우리에게 필요하다.”_45쪽
또한 가난한 사람에 대한 선행이 미담이 되어 퍼지는 것에 대해서, 애초에 선행을 베풀 가난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바란다고 했다. 아름다운 이야기보다는 모두의 삶을 보장해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소망하며, 가난한 인간이여서 받는 것이 아닌, 인간이기에 받는 ‘기본소득’을 주장한다.
2부_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이 파트에서 신민주 작가는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받음으로써 조금 ‘덜’ 일하고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아르바이트 경험이 다수 있는데, 비록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아르바이트로 조금 더 공부하지 못했고, 조금 더 내 취미생활을 즐기지 못했으며, 조금 더 잠을 자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돈을 ‘더’ 벌어야 했기에 조금 ‘덜’ 나은 삶을 살게 된 셈이다. 내 인생을 재밌게 즐기고 살기위해 돈을 벌고자 했지만, 돈을 벌음으로써 재밌게 즐기고 살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게다가 열심히 알바한 결과로 돈이 쌓였냐 물어본다면 내 통장은 현재 텅장이 되어 있다는 말 한마디로 정리될 것 같다.
“세상에는 돈이 되지 않더라도 소중한 일들이 얼마든지 있다. (...) 이들이 하고 싶은 ‘일’이 돈이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무가치한 것으로 취급받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돈이 되지 않는다고 아무도 노래하지 않는다면, 돈이 되지 않는다고 아무도 남을 돌보지 않는다면, 돈이 되지 않는다고 청소와 빨래, 설거지를 그만둔다면 아마 이 사회는 그대로 멈춰버릴 것이다. 혹은 매우 불행해지겠지”_73쪽
세상 모든 일의 기준이 돈을 받는 일과 돈을 받지 않는 일들로 이루어진다면, 돈을 받지 않는 일들은 무가치한 일들일까? 그 대답은 당연히 NO이다. 우리는 돈을 받는 일을 하면서 받은 돈을 가지고 돈을 받지 않는 일들을 한다. 이 말은 즉, 돈을 받지 않는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받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돈을 받지 않는 일을 하면서 많은 행복을 얻으며, 우리의 삶이 보살펴지고, 사회가 굴러가곤 한다. 물론 노동 그 자체에서 성취감과 대인관계 능력, 지혜 등을 얻을 수 있지만 노동만 한다면 우리의 삶은 지쳐버리고 말 것이다. 신민주 작가는 우리가 기본소득을 보장받음으로써 조금이나마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을 가져, 우리가 포기하는 부분 없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살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리고 나 또한, 포기보단 이루는 용기로 가득찬 삶을 살아가고 싶다.
3부_모두에게, 조건 없이
시대가 바뀜에 따라 성평등 의식이 높아지고, 세계화로 인해 서로 다른 문화들이 뒤섞인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이런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어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청소년에게도 어른에게도, 여성에게도 남성에게도, 한국인에게도 외국인에게도 살기 좋은 곳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민주 작가는 모두가 함께 잘 살기 위해서 나이, 성별, 국적 따지지 말고 모두에게 조건 없이 평등하게 소득을 지급하자고 말한다.
"한국의 미디어와 정치권은 끊임없이 난민들에 대해 이야기해댔다. 우호적인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 재난 지원금은 결혼 이주 여성이나 주민등록표에 기재된 외국인이 아닌 이들과 세대주가 아닌 여성에게는 지급되지 않았고, 이는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누구를 ‘모두’라 인정할 것인가,”_97쪽, 100쪽
한때 난민에 대한 논쟁이 뜨겁게 펼쳐진 적이 있다. 사람들은 피켓을 들고 몰려나가 난민을 손가라질 해댔고, 난민 수용을 찬성하는 연예인에게는 거센 항의가 빗발쳤다. 그리고 나 역시 난민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난민을 수용하게 된다면 한국인의 살 곳이 더욱 줄어들고 범죄가 증가할 것이라는 생각에 무심코 경계부터 했던 탓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나라 난민 인정률은 1프로도 되지 않으며 그마저도 나라의 지원에서 철저히 배재되었다. 살기위해 나라를 떠나왔는데 이들이 도착한 곳에도 그들의 나라는 없었던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난민을 비판했던 내 자신이 매몰차게 느껴졌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결국 집을 나와야 했던 청소년들은, 그래서 그 자체로 인정받지 못했다. (...) 안전하게 살 곳과 경제권이 보장돼야 하는 존재로도, 원하는 사람과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하는 존재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가출 청소년들은 더 취약한 계층이 될 수밖에 없다.”_110쪽
또한 작가는 보호자의 보호에서도, 제도적인 지원에서도 외면당한 가출청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청소년은 대부분이 투표권조차 가지고 있지 않으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결정을 법정대리인이 도맡아 한다. 그러나 법정대리인의 권력은 어떤 청소년들에겐 족쇄가 되고, 그 족쇄를 벗어나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고자 하는 청소년들을 기다리는 것은 차가운 현실이다. 이에 작가는 청소년들 통제하려는 사회를 비판하며 그들 또한 국민이기에 법과 제도적 권리를 보장하고 기본소득을 지급해 최소한의 경제력을 가지게 해야 한다 말한다. 취지는 굉장히 좋다만, 경제관념이 뚜렷하지 않은 청소년에게 경제권을 부여함으로써 과소비나 잘못된 곳에 소비하는 등의 역효과가 나타나진 않을까 우려된다.
4부_이상하고 아름다운 미래로
앞서 3개의 파트에 걸쳐 현대사회의 어려움과 소외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꽤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가고, 그 자신마저도 포기당한 사회적 약자 또한 존재했는데,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들은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다. 마지막 장에서 작가는 기본소득을 통해서 앞으로 바라는 사회에 대해 얘기한다. 그리고 그것은 ‘유토피아’와 같은 허황된 것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확신에 찬, 어쩌면 다가올 미래에 격앙된 그들에 모습에 매료되어 그 뜻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겨났다.
“때로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구제받는 것보다는 어려운 상황에 놓이지 않을 수 있는 기반이 존재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 운 나쁘게 놓이더라도 당연하게 벗어날 수 있는 사회가 좋을 수 있다.”_139쪽
“가족이 아니라 개인별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가족이 아닌 개인을 발견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개인별로 이뤄진 복지, 개인에 대한 연구, 통계, 그리고 고민들이 이어질 때 dfl는 개인이 꿈꾸는 관계가 얼마나 다양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_147쪽
“‘어떤 농부도 가뭄에 가장 마른 땅만 골라서 물을 주지 않습니다.’ 누군가 가장 피해를 입은 사람들만 골라서 지원금을 줘야 한다는 말에 우리는 그렇게 응수했다.”_154쪽
“가사노동에 임금을 지급하자는 주장은 오래된 주장이다. (...) 그러나 정화 씨의 반응처럼 때로는 돈으로 대표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그는 단 한 번도 돈을 받기 위해 명아와 명아의 동생을 돌보지 않았을 테니까. 많은 것을 돈으로 인정하자는 주장은 돈으로 쉽게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가린다. 그래서 그것은 정반대로 돈을 받지 않는 귀중한 일들의 가치를 훼손한다.”_162쪽
간접적인 소제목을 통해 직접적으로 전해지는 그들의 주장은 매우 일관되었다. 그들은 조건 없이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평등을 실현코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만 평등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에게는 굶주리지 않는 날을, 어떤 이에게는 배움의 기회를, 또 어떤 이에게는 건강한 신체를 주기도 한다. 작가는 생각한다. 기본소득이 당장에 세상을 밝게 만들긴 어렵겠지만, 한발자국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촛불이 되어줄 것이라고.
책의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아 읽는 데에 부담이 없었고, 각 대주제 아래에 소주제로 나누어져 전개되는 내용이 쉬운 문체로 쓰여 있어서 가독성이 좋았다.
이 에세이의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본소득’에 대한 것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나는 책을 통해서 ‘기본소득’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저런 제도가 있으면 참 살기 좋아지겠다 싶으면서도 과연 실행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더 가진 사람이 더 많이 내놓아 모두에게 나눈다는 것은 굉장히 바람직해보이나, 나는 더 많이 가진 사람이 흔쾌히 자신의 것을 내놓으리란 것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이다. 아마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텐데, 모두가 서로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애초에 지금의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임이 자명하다. 또한, 자수성가 한 사람의 경우에, 그 사람의 부는 그 노력의 산물임을 부정할 수 없기에 무조건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기본소득이 실행돼 정기적으로 돈이 지급된다면, 일하지 않아도 돈이 들어온다는 안일함에 빠져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기본소득으로만 살아가려 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기본소득에는 이러한 역효과가 존재하지만, 사실 이를 감안하고서도 한번 실행됐으면 싶은 제도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나 또한 ‘저런 사회’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걱정만 해서는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니 이제부터 난 응원이라도 해야겠다!
훗날 내 걱정을 비웃으며 기본소득으로 문화생활을 하고 있는 미래가 오길 빌어본다.
- 동녘서포터즈로서 출판사에게 해당 도서를 지원받고 쓴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