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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질보다 따끔함

[도서] 발길질보다 따끔함

사뮈엘 베케트 저/윤원화 역

내용 평점 2점

구성 평점 2점

  윌리스 파울리의 <A READING OF DANTE'S INFERNO>(쉽게 풀어쓴 단테의 신곡)에 사뮈엘 베케트의 <단테와 바닷가재>가 몇 번 언급되어 있었다. 그래서 어렵게 검색을 하였다.

  <단테와 바닷가재>는 책 이름이 아니었고 이 책 <발길질보다 따끔함> 속에 들어 있는 첫번째 단편이었다. 단편소설로 보이기보다는 내 눈에 아무래도 연작 장편소설로 보이는데...

  

문제는 베케트의 소설이 내게 너무 난해하다는 것. '이해도 못하는 걸 대체 내가 왜 읽어야 하나'하는 의문 혹은 자괴감이 든다.  요즘 내가 읽는 책들이 특히 단편들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뇌에 고병변 백질이 생겨서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단편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고도의 감춤, 미궁, 꼬움, 현란함 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차라리 <반야심경>을 외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싶다. 읽는 중간에 때려치울까하다가 그래도 혹시 이해할 수 있는 곳이 나오지 않을까하고 끝이 나올 때까지 읽었다. 물론 글을 읽은 것이 아니라 글자를 읽은 것이다. '글읽기가 아닌 글자읽기', 의미가 있을까? 

  

베케트는 단테에 대해 각별한가 보다. "너무 많이 봐서 너덜너덜해진  단테의 <신곡> 연구본"이라는 말이 나오고 단테 연구교수 윌리스 파울리도 자주 언급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대단한 수준인가보다. 

 소설의 주인공의 이름이 '벨라콰'인데  왜 벨라콰인가? 어쩌면 베케트 자신과 벨라콰가 오버랩되어서 일까? 읽는 동안 소설과 <신곡>이 겹쳐보이면서 괜히 혹은 선입견에 소설의 분위기가 음울하고 침침하게 느껴진다. 실은 그게 아닐지도 모르는데. 

 

소설속의 벨라콰가 아닌 <신곡>의 벨라콰는  누구인가?  Belaqua는 피렌체 출신이고 단테의 절친이었으며 악기제작업자였고 음악을 사랑하였다고 한다. 

      

         "오, 상냥하신 주인님, 저자를

         보세요. 게으름이 자기  누이라도 되는 

         것처럼 너무나도 게을러 보이는군요."

             .....

          "벨라콰, 너 때문에

         이제는 괴롭지 않은데, 말해다오. 왜

          여기 앉아있나? 안내자를 기다리는가?

          아니면 다시 예전의 버릇에 사로 잡혔나?"

           ......

          "...나는 끝까지 착한 한숨을 머뭇거렸으니

           살아서 그랬던 만큼 하늘이 돌 때까지 

           나는 문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네.

           은총 속에 사는 자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가 먼저 나를 돕지 않으면, 하늘에서 

           들어주지 않는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신곡>-연옥 4곡) 중에서

 

게으른 자 벨라콰는 게으름때문에 연옥에 머무르고 있다.

 베케트는 벨라콰의 무엇을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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