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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도서] 파우스트

이반 투르게네프 저/김영란 역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유사한 컨셉의 세 가지 이야기가 엮여서 나왔네. 플로베르의 <세가지 이야기>는 작가의 의도적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이 단행본도 그런것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냥 유사성을 가진 세 이야기를 묶은 것 같은데.

 

뚜르게네프의 단편에 종종 그가 영향을 받은 작가들의 캐릭터가 나온다. 이 세 편의 이야기에서도 그것을 엿볼 수 있는데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돈키호테의 이상(理想)인 둘씨네아가 나오고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파우스트의 여인 그레트헨이 나온다. 물론 동일인물들은 아니고 추구하는 바가 그 여인들과 닮았다는 얘기다.  세 번째 이야기는 그런 게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잘 모르겠다. 이야기의 전개가 미스테리하고 신비스러운 면에서 유사성이 있다. 

 

두 번째 이야기 <파우스트>에서 그 서술 형식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의 서술 형식인 편지글 형식으로 되어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를 읽는 느낌이 약간 든다. 그렇다고 괴테를 모방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인간의 의식의 총체를 구성하는 것이 지능, 혹은  지식이라면 거기서 정신 혹은 영혼의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여자 주인공 베라는 그녀의 지적 성장과정에서 예술 특히 문학이 배제된 채로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그 어느 날 그 금기가 깨지고 괴테의 <파우스트>를 통해서 뇌리 속에 영혼이 채워지고 극심한 혼란을 느끼게 된다. 

 

첫 번째 이야기인 <세 번의 만남>은 <사냥꾼의 수기>의 연장선의 작품을 읽는 느낌이 든다. 러시아적 환경이 등장하는 면이 그렇다. 마치 꿈같고 짤막하고 강렬한 세 번의 만남, 그렇지만 결코 잊지 못하는   환상적인 여인의 등장은 돈키호테의 여인 둘씨네아에 비유하고 있다.  돈키호테는 둘씨네아를 결코 만나지도 못하고 마법에서 풀어주지도 못하고 평생 그리움의 대상으로만 남을 뿐이었다.

"나는 집안의 하인이 아니야. 나는 그 유명한 방랑기사,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라고. 평생동안 나의 둘씨네아를 찾아 헤맸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지. 그런데 당신이 자기 연인을 찾아내다니, 그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지."

 

소설은 아니지만 <세 번의 만남>을 읽는 순간 바로 떠오르는 글이 있다. 바로 <인연>, 피천득의 수필. 그래서 바로 피천득의 <인연>을 찾아서 읽었다. 소설과는 전개가 다르고 극적인 면이 부족하고 짧지만 리얼이라는 면에서 생각할 거리가 많다. 아사꼬와의 세 번의 만남, 어쩌면 아사꼬는 피천득의 둘씨네아였다. 예전에 읽었을 때는 그 유명한 마지막 문구에  무조건 공감을 했었다.

"그리워 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다시 읽으면, 과연 그럴까? 세 번째의 만남에서 아사코는 둘씨네아처럼 마법에 걸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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