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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꺄디숑

[도서] 당나귀 꺄디숑

세귀르 백작 부인 저/오라스 꺄스뗄리 그림/원용옥,손성림 역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이런 작가가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왜 여태 몰랐을까?  보니 꽤 유명한가본데. 안델센이나 그림이나  뭐... (두 명밖에 생각안나네.)  어릴 적에 동화깨나 읽었던 게 아니었던가? 모르겠다. 아뭏든 처음 만나는 작가다. 글은 죄다 초등학생대상으로 해서 번역되어 있다. 작가에 대한 것이나 시대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다. 문제가 아닌가? 초등학생이라고 그것들을 몰라도 될까? 번역자체는 잘 된 것이겠지. 불어 전공자들이 번역했으니... 

 

당나귀 꺄디숑의 삶의 여정.

 물론 소설(동화?) 속의 당나귀는 당나귀가 아니라 당나귀로 태어난 사람인 것이 틀림없다. 어쩌면 반은 당나귀 반은 사람,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인간의 인식 속에 심어져온 당나귀에 대한 전통적 인식이 반영되어 있고, 운명에 대한 순응과 거역이 공존한다. 물론 동화적 서술이다 보니 순화되어 있다. 인간과 관계를 가진 후 수천년을 이어내려오는 가혹하고 슬픈 생존. (물론 이런 메세지가 이 책에 있다는 것은 아니다. 나의 오바일 뿐. 그걸 염두에 두고 읽으면 또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당나귀가 주인공이라는 점. '당나귀'라는 용어 속에 그러한 무의식이  분명 작용한다는 점.

 

 슬프고 고독하고 가혹한 당나귀의 삶을 그린 영화가 있다.

 <당나귀 발타자르>, 프랑스 영화, 1960년대에 만들어진. 뇌리에 오래 남아있는 특이한 영화다. 벗어날 수 없는 숙명같은 삶이 발타자르의 슬픈 눈망울을 통해 투영되는 영화. 그런 삶을 살아낸 발타자르의 죽음은 성자(聖者)적이다. 수백마리의 양들이 둘러싼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는 발타자르의 모습은 장엄하다. 성스럽다. 

 

동시대 삽화가에 의해 그려진 삽화가 인상적이었다.

 지금시대하고는 별반 맞지 않는 그림이거나 틀린 그림도 꽤 많다. 하지만 거기에서 종종 고고학적 사실을 발견한다.  이 책의 삽화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말, 당나귀, 노새를 타고 다니던 시대의 글들에서 여성들의 승마모습이 나오는데 그 궁금증을 일거에 해소하는 그림이 있었다. 여성들이 말을 타는 게 제한되어 있었고 귀족 여성들이 타기는 했다고 한다. 성격이 순한 노새를 주로 탔다고 하는데 (물론 서민 여성들이 당나귀를 타는 모습도 나오고) 똑바로 앉아서 탄 게 아니라 옆으로 앉아서 탔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옆으로 탔다는 말인가?  바로 꺄디숑의 등에 얹혀진 안장이  완벽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옆으로 앉게 되어 있는 안장. 삽화가 그 궁금증을 해소 해 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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