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겨울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쓸쓸하게 비만 뿌려도, 혹은 지나가 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뭉클거릴 때면, 창밖을 바라보며, 혹은 눈 감고 뮐러의 시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겨울 나그네>를 듣는다. 그러면 실연의 쓰라림을 안고 스산한 겨울 들판을
헤매는 한 젊은이가 보이는 듯하다. 쓸쓸함을 넘어 이내 아득해진다. 막막하다. 어둡고 차갑고 무겁고, 조금은 무섭다. 낭만적 광풍에 휩쓸린 청년의 방황. 방랑의 그 나그네 길에는 구원의
희망도, 성숙도 보이지 않는다. 겨울 들판의 끝에는 죽음
뿐이다. 아닌 게 아니라 <겨울 나그네>가 발표된 1827년에 서른 셋의 나이로 뮐러가 세상을 떠나고, 바로 그 이듬해 슈베르트도 외로이 눈을 감는다. 모차르트보다도 이른, 서른한 살의 요절이었다. 그나마 자신의 유언대로 그가 존경해 마지않던
베토벤 무덤 곁에 묻힌 것이 유일한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그의 손을 거치면 시는 노래가 되고 음악은 말을
했다. 잘 알려진 대로 <겨울 나그네>는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와 더불어 독일의 낭만주의 시인인 빌렘름 뮐러의 시집에 곡을 붙인 것이다.
스물한 살 시절 뮐러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멜로디를 내 힘으로 붙일
수 있으면 나의 민요풍 시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멋질 것이다. 그러나 확신컨대, 나의 시어에서 음률을 찾아 그것을 내게 되돌려 줄, 나와 비슷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바로 슈베르트였다. 슈베르트는 뮐러의 <겨울 나그네> 시 스물네 편 하나하나에 곡을 붙였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노래,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 <보리수>라는 데 별 이의가 없을 것이다.
성문 앞 샘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서
수많은 단꿈을 꾸었네.
보리수 껍질에다
사랑의 말 새겨 넣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그곳을 찾았네.
나 오늘 이 깊은 밤에도
그곳을 지나지 않을 수 없었네.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두 눈을 꼭 감아버렸네.
- 빌헬름 뮐러, <보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