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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인 작가의 산문집 출간에 대한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 꽤 많이 접했다.

그녀와 잘 아는 지인들이 사적인 추억이나 경험과 함께 올린 글들이었는데

그들의 글 속에 있는 이 작가가 너무 멋진 사람이라서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산문집을 낸 작가라 원래도 이런 소소한 글을 쓰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저자 소개를 보니 본래 직업은 평론가한다.

그런데 글을 읽은 기억이 없어 그런가 보다 했었는데
책 리뷰에 저자가 직접 글을 남겨주었다.

 

그 세심함에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져서 검색해봤는데

(그러고 보니 사람의 인연이란 게 참 신기하다.

사람들이 하도 많이 칭찬을 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작가 자신으로 인해 더더욱 호기심이 생겨서

적극적으로 찾아볼 생각까지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마흔 넘은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마흔 넘어서 사람이 궁금해지는 건 참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다. ^^;)
적어도 두 권의 책을 구입한 기억이 났다.

 

창비에서 나온 『충돌하는 차이들의 심층』과

실천문학사에서 나온 『타인을 읽는 슬픔』.


기억에도 없는 과거의 언.젠.가. 한두 편의 글을 읽고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책을 샀었나본데
워낙에 일들은 산적해 있고, 기억이란 흘러가든지 가라앉든지 하기 마련이라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솔직히 말하면 도무지 책들을 찾을 자신도 없었고 엄두도 안 났는데

(이 집에 이사온 게 책들 때문이었는데, 3년만에 또 포화가 되었다.

이미 노숙하는 책들이 꽤 많이 생겼는데 이 책들을 다 어떡해야 하나,

더 큰 집으로 이사를 또 해야 하나 고민중이다.)
벼르고 벼르다 작정하고 책을 찾아보기로 한 날,
운 좋게도 그녀의 첫 평론집인 이 책을 찾았다.

 

요즘에 나온 작가의 책들엔 '일반적인' 작가의 프로필이 전혀 공개되지 않아 궁금했는데
첫 책에는 기본적인 프로필과 아울러 작가의 사진도 실렸다.

 

(아마도) 20대에 찍은 사진 같은데

(추측의 근거는 단 하나. 눈썹이나 입술이 1990년대 중반쯤에 유행했던 화장법인지라.)
사진을 한참이나 들여다 보았다.

 

우선은 사진 속 여성이 너무 젊어서.

젊음이 뿜어내는 생명력과 에너지가 사진을 뚫고 나올 것 같다.

표정도 매우 당당하고 당차다. 자신감에 찬 얼굴.

 

컬러도 아닌 흑백사진이다보니
마치 전생처럼 머나먼 과거 같지만
생각해보면 겨우 짧게는 10여 년 길어봤자 20년 전의

우리의 모습이다.

 

돌아보면 우리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까마득해서 기억도 잘 안 나지만
이렇게 환하고 밝고 당찬 표정을 했던 때가
분명,
내게도 있었다.

 

그때도 죽을 만큼 힘들었고

삶은 늘 치사량의 고통으로 가득 차 있을텐데

왜 이제 와 그때의 사진을 보면

사진 속 우리는 자신감이 넘쳐나는 것처럼 보이는지,

모든지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무엇이든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건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너무 풋풋하고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삼십 대가 되고 사십 대가 되면서

종종 

그 많던 여성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걸까 생각하곤 했었는데

각자 이렇게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뭉클해진다.

 

나이가 들면서 유독 여성작가들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다.

여성 소설가, 여성 시인, 여성 화가, 여성 사진작가...

특히나 동갑내기나 비슷한 시대를 산 197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사름들에게는 유독 마음이 가는데

그런 뭉클함 때문일 것이다.

 

'생존자'가 '생존자'를 볼 때 와락 드는 감정들.

 

살아남아줘서, 살아있어줘서 고맙다는 마음,

앞으로도 쭉 그러하기를 바라기에 그의 삶을 간절히 응원하고 격려하게 되는 마음.

이런 감정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돌아보면 '여성으로' 사는 삶이 지난했기에

나처럼 그러했을 '또 다른 나'를 보는 마음이 애틋해질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 작가를 알게 된 게 너무 반갑고 고맙다.

앞으로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챙겨 보게 될 것 같다.

 

 

 

[덧] 서영인 씨는 나처럼 '영화 영'을 쓴다.
사실 우리 때만 해도 여자 이름에는 대체로 '꽃부리 영'을 많이 썼다.

부모들 입장에서 딸의 미래로 상상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이 꽃처럼 사는 것이었을까?

그런 측면에서 딸 이름에 '영화 영'을 쓴 부모들의 기대나 염원도 읽히는 부분이다.

어떤 면에서는 그런 부모들이 있었기에 우리 같은 '딸'들이 가능했던 것이란 생각도 든다.

'여자로서 행복한 삶'이 아니라 '주체적 여성'으로서 스스로 삶을 개척하고 인간으로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추구하고 꿈꾸게 만든 씨앗이 거기서부터 시작됐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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